나스닥 2% 오를 때 아시아 기술주 6% 급등… “저평가된 노다지 잡아라”
엔비디아·빅테크 투자 763조 원 폭탄… 메모리 반도체 ‘공급 절벽’ 현실화
제조사들 “과거 학습효과로 증설 신중”… 반도체 슈퍼사이클 장기화 예고
엔비디아·빅테크 투자 763조 원 폭탄… 메모리 반도체 ‘공급 절벽’ 현실화
제조사들 “과거 학습효과로 증설 신중”… 반도체 슈퍼사이클 장기화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 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 시각) 아시아 기술주가 매력적인 기업가치와 실적 호전 기대감에 힘입어 미국 나스닥을 압도하는 상승세를 보인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AI 인프라 구축 경쟁이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지만, 과거 불황의 트라우마를 겪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제조사는 설비 증설에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반도체 슈퍼사이클(대호황)’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저평가된 ‘노다지’ 아시아…이익 증가율 미국 3배
올해 초 글로벌 증시의 승자는 단연 아시아다. 블룸버그 집계를 보면 아시아 기술주 지수는 연초 이후 약 6%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지수가 2% 오른 것과 견주면 3배에 이르는 성적이다.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등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은 투자자에게 아시아 비중 확대를 주문하고 나섰다.
이러한 자금 이동의 배경에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과 ‘이익 성장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인이 자리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아시아·태평양 IT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6.3배다. 반면 나스닥100지수는 25배에 이른다. 미국 기술주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성숙한 금광’이라면, 아시아 기술주는 아직 채굴할 금이 많은 ‘저평가된 광산’이라는 평가다.
딜린 우 페퍼스톤그룹 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위험 대비 보상이 가장 큰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미국 기술주는 이미 가격이 높지만, 아시아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면서도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고 분석했다.
실적 전망치 격차는 더 크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분석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동안 한국 기술기업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79%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만 역시 36% 성장이 점쳐진다. 이는 나스닥 기업의 이익 증가율 전망치인 2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주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잠정 실적을 발표했고, 대만 TSMC 역시 매출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AI가 빨아들이는 메모리…“없어서 못 판다”
주가 상승의 근본 동력은 폭발하는 수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세대적 수급 불일치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엔비디아와 AMD가 내놓는 최신 AI 가속기는 막대한 양의 고성능 D램과 낸드플래시를 필요로 한다. 엔비디아가 최근 ‘CES 2026’에서 공개한 루빈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이전 세대인 블랙웰보다 메모리 대역폭이 3배 가까이 넓다.
데이터 저장장치 수요도 덩달아 춤을 춘다. 번스타인의 마크 뉴먼 분석가는 낸드플래시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합친 데이터 저장장치 출하량이 향후 4년 동안 해마다 평균 19%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0년 평균 성장률인 14%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공급 쇼크’에도 증설 주저하는 제조사들
통상적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수요가 넘치면 기업들은 공장을 늘려 공급을 확대한다. 하지만 이번 사이클은 다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설비 증설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2023년에 겪었던 사상 최악의 불황이 남긴 트라우마 탓이다. 당시 수요 급감으로 이들 기업은 조 단위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메모리 기업들이 과거의 급격한 가격 변동에 덴 탓에 이번 호황에는 공급을 조절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웨스턴디지털에서 분사한 샌디스크는 매출이 44% 급증할 것으로 보이지만, 설비투자는 18% 늘리는 데 그칠 계획이다. 데이비드 고켈러 샌디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열린 UBS 콘퍼런스에서 “장기 공급계약 없이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다”면서 “수요처가 3개월 단위가 아닌 장기적인 약속을 해야 우리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공급 제한은 결국 가격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모건스탠리의 조 무어 연구원은 “수요가 이처럼 견조한 상황에서 공급이 제한되면 상승 사이클은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부상과 지정학적 긴장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기술주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는 AI 투자 축소 가능성과 지정학적 긴장이 꼽힌다. 싱가포르 유니언방케프리베의 베이-선 링 전무는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과 빅테크 기업들의 AI 지출 축소 여부가 아시아 반도체 기업의 최대 변수”라고 지적했다.
중국 기술기업의 약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의 AI 모델 ‘딥시크’가 효율적인 개발 방식을 제시하며 주목받았고, 콰이서우(Kuaishou)의 동영상 편집 AI 모델도 인기를 끌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중국 테크기업들의 이익성장률이 올해 ‘매그니피슨트 7’을 추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6년 글로벌 증시는 ‘AI 수익화’가 실제로 가능한지 증명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게리 탄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AI는 수년 동안 이어질 글로벌 성장 동력”이라면서 “하드웨어와 인프라를 장악한 아시아 기술 생태계가 이 흐름의 최전선에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자들은 이제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숫자로 증명되는 실적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가 쥐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의 열쇠가 2026년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인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