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 가둔 암흑, 극좌단체 '불칸' 소행… "전후 최악의 인프라 테러" 속수무책
베를린 시정부, 9월 선거판 뒤흔들 '안보 무능론' 확산
독일 의회 '국가기반시설 보호법(KRITIS)' 입법 속도… '내부의 적' 조준
베를린 시정부, 9월 선거판 뒤흔들 '안보 무능론' 확산
독일 의회 '국가기반시설 보호법(KRITIS)' 입법 속도… '내부의 적' 조준
이미지 확대보기폴란드 동방연구소(OSW)와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주요 외신은 지난 18일(현지시각) 이번 사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에서 겪은 가장 긴 전력 중단 사태"라고 보도했다. 극좌 테러 단체 '불칸그룹(Vulkangruppe)'이 주도한 이번 사보타주(파괴 공작)는 시민 10만 명을 암흑 속에 가두며 독일 에너지 안보 시스템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내부의 적'이 끊어낸 에너지 동맥… 도시 기능 마비
사건은 지난 3일, 베를린 남서부의 케이블 교량이 화염에 휩싸이며 시작했다. 이 방화로 4만5000가구와 2200여 개 기업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피해는 주거지에 그치지 않았다. 병원과 74개 요양 시설의 비상 전력이 고갈되며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중환자와 노약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독일 수사 당국은 이번 테러의 배후로 극좌 무정부주의 단체인 '불칸그룹'을 지목했다. 이들은 지난 2024년 3월에도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독일 기가팩토리 인근 송전탑을 방화해 공장 가동을 멈춰 세운 전력이 있다. 당시 이들은 "거대 자본과 환경 파괴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카밀 프리마크 OSW 전문위원은 이번 보고서에서 "독일 안보 당국이 그동안 러시아나 중국 등 외부 위협에만 함몰돼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사태는 고도로 훈련된 내부 극단주의 세력이 국가 핵심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는 물리적 전쟁 없이도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하이브리드 위협'이 현실화했음을 시사한다.
'골든타임' 놓친 관료주의… 분노한 민심, 선거판 흔든다
사보타주가 안보에 구멍을 냈다면, 늑장 대응은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정전이 100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베를린 시정부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다.
가장 시급한 비상 발전기 확보는 늦어졌고, 난방이 끊긴 주택과 요양원에서 떨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대피소 마련조차 지체됐다. 결국 독일 연방군 병력 40여 명과 민간 구호단체가 현장에 투입되고 나서야 혼란은 겨우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행정 난맥상은 즉각 정치권의 '뇌관'이 됐다.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의 리더십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오는 9월 치러질 선거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프란치스카 기피 베를린시 경제장관(상원의원)이 "피해 시민들의 호텔 숙박비를 시 예산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獨 'KRITIS' 법안 급물살… 인프라 요새화(要塞化) 나선다
독일 연방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 보안 체계를 밑바닥부터 다시 짜고 있다. 핵심은 현재 연방의회에서 논의 중인 '사회기반시설 보호법(KRITIS-Dachgesetz)'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에너지, 통신, 교통 등 국가 핵심 인프라 운영자에게 강도 높은 '위험 평가'와 '물리적 보안 조치'를 강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이 통과되면 각 연방 주는 중앙 통제 기구를 새로 만들어 인프라 보호를 전담한다.
독일 정부는 연방 시민보호재난지원국(BBK)을 컨트롤 타워로 지정해 사고 보고 체계를 하나로 묶고 대응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단순한 시설 복구를 넘어, 테러 발생 시 즉각 가동할 대체 네트워크와 복원력(Resilience)을 확보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전 세계에 던지는 경고가 묵직하다고 평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전력망(Grid) 같은 기반시설은 언제든 가장 취약한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지금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국가 방어망을 '요새'처럼 쌓아 올리는 과정에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