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유럽 “비자·마스터카드 의존 벗어나야…대서양 관계 악화 땐 결제망도 무기화 우려”

글로벌이코노믹

유럽 “비자·마스터카드 의존 벗어나야…대서양 관계 악화 땐 결제망도 무기화 우려”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사진=로이터

유럽이 비자와 마스터카드 같은 미국 결제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시급히 낮춰야 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결제 인프라가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르티나 바이머트 유럽결제이니셔티브(EPI)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은 국제 결제 솔루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며 “국경을 넘는 자체 결제 수단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결제 주권 확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최근 말했다.

EPI는 BNP파리바와 도이체방크 등 유럽 주요 은행과 금융회사 16곳이 참여한 컨소시엄이다.

◇ “국경 넘는 유럽 결제망 사실상 부재”

바이머트 CEO는 “각국에는 나름의 국내 결제 수단이 있지만 범유럽 차원의 대안은 없다”며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제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유로존 카드 결제의 약 3분의 2가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통해 처리됐다. 13개 회원국은 미국 결제 기업을 대체할 만한 자국 결제 수단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국가에 국내 결제망이 존재하더라도 이용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 대서양 관계 악화 땐 ‘결제 인프라 무기화’ 우려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가운데 유럽 당국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FT는 “유럽 내에서 미국 결제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대서양 관계가 심각하게 흔들릴 경우 정치적·경제적 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벨기에 사이버보안 당국 수장이 최근 “유럽은 인터넷을 잃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 역시 최근 연설에서 “깊은 통합은 의존을 낳았고 이는 파트너가 더 이상 동맹이 아닐 때 악용될 수 있다”며 “상호의존은 한때 상호 억제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통제와 압박의 수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 애플페이 대안 ‘베로’ 출시…민간 결제망 한계도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EPI는 2024년 애플페이의 유럽 대안으로 ‘베로(Wero)’라는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출시했다. 현재 벨기에·프랑스·독일에서 약 485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2027년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 결제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바이머트 CEO는 “지정학적 환경 변화로 결제 주권 문제가 더 이상 금융권 내부 논의에 그치지 않고 주류 의제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다만 민간 주도의 결제망 확대에는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ECB는 과거 민간 결제 프로젝트들이 규모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참여 주체 간 표준 합의가 쉽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디지털 유로 논쟁…“상황에 따라선 이미 늦을 수도”


ECB 집행이사인 피에로 치폴로네는 최근 “유럽 시민으로서 결제 시스템을 전적으로 우리 통제 밖에 두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유로는 2029년부터 발행될 예정으로 유로존 상점과 온라인 상거래에서 의무적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유로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만만치 않다. 일부 금융기관은 공공 주도의 결제 수단이 민간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회에서는 올해 안에 관련 표결이 이뤄질 예정인데, 찬반이 팽팽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머트 CEO는 디지털 유로의 도입 시점이 지정학적 긴장에 비해 늦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디지털 유로는 몇 년 뒤에나 현실화될 수 있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이후일 가능성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이미 너무 늦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