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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 개발 스타트업의 '현실 장벽'... 프랑스 나아레아 파산이 던지는 핵발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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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 개발 스타트업의 '현실 장벽'... 프랑스 나아레아 파산이 던지는 핵발전 경고

용융염 원자로 꿈꾸던 6년의 실험 종지부... 연료 수급 불균형·자금 절벽이 부른 붕괴
보조금 168억 원도 역부족, 3조 3,690억 원의 벽 앞에 무너진 '원자력 르네상스의 꿈'
소형모듈원자로(SMR) 열풍이 전 세계를 달구는 사이, 가장 앞선 것처럼 보였던 기업 하나가 조용히 무너졌다. 프랑스 정부의 공공 보조금까지 손에 쥐었던 원자력 스타트업 나아레아(Naarea)가 설립 6년 만에 법원이 청산을 명령한 것이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소형모듈원자로(SMR) 열풍이 전 세계를 달구는 사이, 가장 앞선 것처럼 보였던 기업 하나가 조용히 무너졌다. 프랑스 정부의 공공 보조금까지 손에 쥐었던 원자력 스타트업 나아레아(Naarea)가 설립 6년 만에 법원이 청산을 명령한 것이다. 이미지=제미나이3
소형모듈원자로(SMR) 열풍이 전 세계를 달구는 사이, 가장 앞선 것처럼 보였던 기업 하나가 조용히 무너졌다. 프랑스 정부의 공공 보조금까지 손에 쥐었던 원자력 스타트업 나아레아(Naarea)가 설립 6년 만에 법원이 청산을 명령한 것이다. 이 사태는 SMR'에너지 미래'로 선언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00여 개 개발사에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기술보다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국내외에서 SMR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26(현지시각) 보도한 나아레아 청산 과정은 SMR 산업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보조금 144억 원의 함정... 정부 의존이 부른 '돈맥경화'


나아레아는 2030년대 초 초소형 원자로의 상용화를 목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1,000만 유로(168억 원)의 공공 보조금을 확보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 프로젝트 완수에 필요한 금액은 20억 유로(33,690억 원)에 달했다. 장뤽 알렉상드르 나아레아 최고경영자(CEO)FT"프랑스 정부가 2023년 초기 보조금 지급 이후 추가 지원을 미뤘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전격 조기 총선을 선언하면서 촉발된 정치적 혼란이 정부 결정을 사실상 동결시켰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와 사업 파트너로부터 9,000만 유로(1,510억 원)를 선 조달했으나, 전체 목표의 4.5%에 불과했다. 민간 투자자들은 정부의 명확한 참여 신호 없이는 추가 자금을 집행하지 않았다. 알렉상드르 CEO"국가를 너무 신뢰한 것이 치명적 실수였다"라고 토로했다.

4세대 원자로의 약점... 부식 내성 재료와 플루토늄 12톤의 벽


기술적 문제도 큰 부담이었다. 나아레아가 선택한 방식은 기존 수냉식 원자로 대신 소금을 고온으로 녹인 액체(용융염)를 냉각재 겸 연료 용매로 활용하는 4세대 원자로였다. 설계상 안전성은 뛰어나지만, 섭씨 700도 이상의 고온 용융염이 배관과 구조물을 빠르게 부식시킨다는 문제를 해결할 소재 연구가 아직 성숙 단계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더 치명적 약점은 연료 확보였다. 프랑스 정부가 비공개로 진행한 실사에 따르면, 나아레아의 원자로 단 한 기를 가동하는 데 연간 약 12톤의 플루토늄이 필요하다. 이는 서방 세계 최대 규모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인 라헤이그(La Hague) 공장이 1년 동안 처리할 수 있는 플루토늄 전체 물량과 맞먹는다. 더욱이 이 물량은 프랑스 국영 전력공사(EDF)가 이미 선점한 상태여서, 신생 스타트업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에너지 컨설팅 기관 콜럼버스 컨설팅의 니콜라스 골드버그 전문가는 "새로운 원자로를 설계에서 상용화까지 이어가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난제"라며 "검증된 설계도 없이 꿈만으로 투자를 모집하는 구조 자체가 근본적인 위험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인수자마저 등 돌려... 법원, 청산 명령


지난해 9월 파산보호를 신청한 나아레아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폐기물 처리 전문기업 에네리스(Eneris)는 지난달 인수를 전격 철회했다. 에네리스는 "실사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은 법적·기술적 결함이 다수 확인됐고, 기술 개발 자체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법원은 에네리스 측에 인수를 강제하는 대신 나아레아의 공식 청산을 명령했다.

미국도 예외 없다... NuScale 좌초와 Oklo의 연료 딜레마


나아레아의 실패는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세계 최초로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 인증을 획득하며 SMR 선두주자로 평가받던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의 유타주 프로젝트는 2023년 말 철수했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금리 상승이 건설 비용을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발주처가 계약을 해지했다.

오픈AI CEO이자 오클로 이사회 의장 샘 알트먼이 투자한 오클로(Oklo)는 또 다른 연료 난제와 씨름 중이다. 이 회사의 소형 원자로는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현재 이를 상업적으로 안정 공급할 수 있는 국가가 사실상 러시아뿐이어서 공급망 구축이 요원한 상태다.

난관 속에도 꺼지지 않는 SMR의 불씨... AI 시대가 부른 전력 혁명의 최전선


그럼에도 SMR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안정적 전력 확보가 에너지 산업 최대 화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 재가동 계약을 체결했고, 구글과 아마존도 소형 원자력 전력 도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2024년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설비 용량이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돼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SMR은 대형 원전 대비 건설 기간이 짧고 부지 제약이 낮아 도심 인근 데이터센터 전용 전원으로 주목받는다. 나아레아의 실패는 '어떤 SMR이냐'의 문제이지, 'SMR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검증된 기술 기반과 안정적 연료 공급망을 갖춘 사업자에게 시장의 문은 오히려 더 넓게 열리고 있다.

이 사건을 보고 한국 원전·SMR 산업 생태계가 주의해야 할 지점은


한국은 2030년 표준설계 인가를 목표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개발에 4,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나아레아의 붕괴는 기술력만큼이나 핵연료 수급 안정성과 장기 재원 확보가 선결 과제임을 분명히 한다.

두산에너빌리티·한국수력원자력이 해외 SMR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으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전무한 한국의 연료 자립도 한계는 나아레아가 직면했던 플루토늄 절벽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정부 주도 초기 지원이 민간 자본 유치로 이어지는 '마중물 전략'이 지속되지 못하면, 한국의 SMR 역시 설계 도면이 상용화 계획서로 굳어버리는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기술 경쟁과 동시에 국제 핵연료 공급망 외교를 병행해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에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