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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프라 대전환] "1밀리초가 돈이다"… AI 시대, 텅 빈 도심 빌딩이 '황금알 데이터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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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프라 대전환] "1밀리초가 돈이다"… AI 시대, 텅 빈 도심 빌딩이 '황금알 데이터센터'로

시카고 거래소·베를린 공실 오피스 속속 전환
캔자스시티 인쇄공장은 35MW 즉시 가동 '변신의 귀재'
부동산 시장의 패배자였던 공실 빌딩이 AI라는 뜻밖의 동력을 만나 자산 가치를 탈환하는 중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떠받치는 '도심형 데이터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부동산 시장의 패배자였던 공실 빌딩이 AI라는 뜻밖의 동력을 만나 자산 가치를 탈환하는 중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떠받치는 '도심형 데이터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서울 도심 한복판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면? 소음과 전자파를 우려한 주민 반발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이미 현실이 됐다. 시카고 금융가의 낡은 거래소 건물, 독일 베를린의 텅 빈 고층 오피스, 미국 중서부 도시의 폐인쇄공장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떠받치는 '도심형 데이터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패배자였던 공실 빌딩이 AI라는 뜻밖의 동력을 만나 자산 가치를 탈환하는 중이다.

인쇄기 전력이 서버를 돌린다… 캔자스시티발 '전력 역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2006년 준공된 '캔자스시티 스타' 신문사 인쇄공장은 디지털 전환의 파고에 밀려 매각됐다. 당시 건립비 2억 달러(2880억 원)가 투입된 유리 외벽의 이 건물은 현재 AI 연산 허브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개발사 파트모스(Patmos)의 존 존슨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형 윤전기를 돌리기 위해 설계된 강력한 전력 설비가 그대로 살아 있어, 별도의 전력 확충 공사 없이 약 35메가와트(MW)를 즉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35MW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기준으로 약 28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것이 도심 데이터센터의 핵심 역설이다. 인쇄소·방송국·대형 유통물류센터처럼 과거 대규모 동력 설비를 갖춘 시설일수록 데이터센터 전환 비용이 낮고 전력 수급 속도가 빠르다. 현재 미국에서 신규 데이터센터용 전력 계통 접속을 신청하면 평균 대기 기간이 4~6년에 달한다는 점(국제에너지기구·IEA, 2024년 보고서)을 감안하면, 기존 전력 설비를 보유한 구도심 건물의 희소가치는 당분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1밀리초 전쟁'AI 추론이 부동산 지도를 바꾸다


데이터센터가 외곽이 아닌 도심으로 U턴하는 근본 이유는 'AI 추론' 수요 폭증에 있다. AI 추론이란, 학습을 마친 모델이 실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단계다.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인식해 브레이크를 밟거나, GPT가 질문에 즉시 답하는 장면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물리적 거리다. 데이터가 서버를 왕복하는 동안 발생하는 지연 시간은 광섬유를 써도 100킬로미터(km)당 약 0.5밀리초()가 추가된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의 팻 린치 데이터센터 솔루션 총괄은 블룸버그통신에 "자율주행·실시간 로봇 제어 분야는 1밀리초 단위의 속도 차이가 서비스 품질을 가른다""시카고, 덴버, 마이애미는 물론 맨해튼·런던·싱가포르 도심에 저지연 AI 추론 전용 데이터센터가 확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규모도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글로벌 AI 추론 인프라 투자 규모는 2024년 약 420억 달러(605800억 원)에서 20281100억 달러(1586700억 원) 이상으로 연평균 27% 성장할 전망이다.

시카고·베를린·미니애폴리스… 도심 전환 사례 일람


블룸버그통신의 27(현지시간) 보도와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과거 신문 인쇄소나 금융사 본사로 쓰이던 도심 빌딩들이 전력 인프라와 입지적 장점을 앞세워 테크 기업들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캔자스시티의 신문 인쇄공장이다. 개발사 파트모스(Patmos)는 과거 대형 인쇄기를 가동하기 위해 구축됐던 강력한 전력 설비를 그대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별도의 전력망 확충 없이도 35MW(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즉시 가동하는 효율성을 확보했다.

시카고에서는 도심 빌딩 전환을 통한 막대한 자본 이득 사례가 확인됐다. 한 민간 개발자는 옛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본사 건물을 1200만 달러(173억 원)에 매입한 뒤, 전력 용량을 확보해 데이터센터 개발사에 4000만 달러(577억 원)로 되팔았다. 불과 수년 만에 매입가 대비 3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1970년대에 지어진 웰스파고(Wells Fargo) 오피스 빌딩이 복합 데이터센터 시설로 재개발되고 있다. 통상 데이터센터는 혐오 시설로 인식되기 쉬우나, 이 프로젝트는 도심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현지 주민협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뚜렷하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럽 최대 상장 부동산사 중 하나인 어라운드타운(Aroundtown SA)이 공실 오피스 빌딩을 데이터센터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오피스 임대 수요가 줄어든 자리에 AI 인프라를 채워 넣어 기존보다 높은 임대 수익률을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도심 빌딩은 데이터 전송 지연을 최소화해야 하는 AI 추론 서비스에 최적의 장소"라며 "전력 수급이 가능하고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노후 빌딩들의 가치가 앞으로 더욱 치솟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모든 빌딩이 데이터센터가 될 수 없다… '3대 조건'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 콜리어스(Colliers)의 라울 사베드라 자문역은 전환 가능 건물의 3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고하중 바닥 구조다. 서버 랙과 배터리는 단위 면적당 하중이 일반 사무용 가구의 10배 이상이다. 제곱미터()당 최소 10~15킬로뉴턴(kN) 이상의 구조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충분한 층고다. 냉각 설비(CRAC·CRAH 유닛), 전력 배선 트레이, 소방 설비를 동시에 수용하려면 층고 4미터 이상이 통상적으로 요구된다.

셋째, 30~50MW 전력 확보다. 자체 전력 또는 유틸리티 업체와의 단기 확보 계약이 필수다. 30~50MW는 통상 미국 기준 24000~4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이 세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건물은 드물다. 그래서 인쇄소·방송국·은행 전산동처럼 처음부터 중장비와 안정적 전원 공급을 전제로 설계된 시설이 최우선 검토 대상이 된다.

한국판 '도심 데이터센터' 가능한가… 전력·규제·주민 '3중 벽'


이 추세가 한국에서도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 과제가 꼽힌다.

먼저 전력 계통 포화 문제다. 2024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수도권 전력 계통 과부하 지역에서의 100MW 이상 대규모 전력 시설 입지가 사실상 제한됐다. 이 때문에 30~50MW 규모의 '에지(Edge) 데이터센터'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에지 데이터센터는 대형 클라우드 센터와 최종 이용자 사이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중간 거점이다.

둘째, 구조 보강 비용이다. 1980~2000년대 건립된 국내 노후 오피스 빌딩 대부분은 ㎡당 하중 설계가 데이터센터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서울 성수동·구로·가산 디지털단지 일대의 노후 지식산업센터(구 아파트형 공장)나 폐점 대형 할인점 부지가 층고·하중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셋째, 주민 수용성이다. 안양·용인 등지에서 최근 잇따른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민원에서 보듯, 냉각탑 소음과 고압 전력선에 대한 인근 주민 반발이 사업 일정을 수년씩 지연시키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음 저감 설비와 전자파 측정 결과를 사전에 공개하는 투명한 소통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팬데믹이 만들어낸 도심 공실의 상처가 AI 인프라 수요라는 예상치 못한 치료제를 만났다. 하지만 이 기회가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 균등하게 열린 것은 아니다. 결국 '전력을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가 도심 데이터센터 경쟁의 최후 승부처다. 한국이 이 흐름에 올라타려면 수도권 전력 계통의 선제적 확충과 주민 수용성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