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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교체는 옛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AI가 온다… 0.1W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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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교체는 옛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AI가 온다… 0.1W의 기적

전기 없이도 학습하고 판단하는 초저전력 칩, 스마트 시티와 의료 혁명 예고
HBM·GPU 열풍 너머의 신대륙, 배터리 없는 에지 AI의 자립이 시작됐다

2023년 2월 17일에 촬영된 이 사진에서 반도체 칩은 인쇄 회로 기판에서 볼 수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3년 2월 17일에 촬영된 이 사진에서 반도체 칩은 인쇄 회로 기판에서 볼 수 있다.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은 그동안 더 빠른 연산, 더 많은 코어, 더 넓은 메모리 대역폭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거대 언어 모델을 구동하는 대형 GPU(그래픽 처리 장치, 수천 개의 코어로 복잡한 인공지능 연산을 병렬로 처리하는 고성능 반도체)와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산업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전력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업계의 시선은 정반대 방향인 초저전력의 극한을 향하고 있다.

미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 기업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관련 전문 매체인 IEEE가 최근 공동으로 개최한 글로벌 기술 포럼을 계기로, 외부 전원이나 대형 배터리 없이도 AI를 구동하는 하드웨어 가속기 기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변 환경에서 얻은 미세한 에너지로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른바 배터리 없는 '에지 AI(온디바이스 AI,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데이터를 즉각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술)'칩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STM32U3, 전력 효율의 한계를 돌파한 HSP의 등장

이번 기술 혁신의 선봉에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공개한 STM32U3 시리즈가 있다. 이 제품은 초저전력(ULP) 마이크로컨트롤러에 하드웨어 시스템 프로세서(HSP)를 통합했다. 기존 신경망처리장치(NPU)가 고성능 추론에만 집중했다면, HSP는 연산 과정에서 CPU를 깨우지 않고도 데이터를 처리하는 자율 제어 능력을 갖췄다. 불필요한 데이터 이동을 제거하고 전력 소모를 마이크로와트(uW) 단위로 낮춘 이 기술은 얼마나 빠른가가 아닌 얼마나 적은 에너지로 생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에너지 하베스팅, 버려지는 에너지가 지능이 된다


이번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에너지 하베스팅 환경에서 구현되는 AI 연산 능력이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주변의 빛, 열, 진동, 심지어 공중에 떠다니는 전파(RF)에서 미세 전력을 수집하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이 전력으로 센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조차 벅찼으나, 초저전력 가속기 덕분에 디바이스 내부에서 즉각적인 AI 분석이 가능해졌다. 배터리 없이도 24시간 작동하는 지능형 센서가 탄생한 셈이다. 이는 유지보수가 불가능한 오지나 교체가 까다로운 신체 이식형 기기에서 압도적인 효율을 발휘한다.

스마트 시티와 초소형 의료 기기의 판을 바꾸다


글로벌 전문가들은 이 기술을 에지 AI의 자립을 실현하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본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수만 개의 센서가 배터리 교체 없이 수년간 소음이나 진동, 환경 변화를 실시간 분석한다면 관리 비용은 혁명적으로 줄어든다. 의료 분야 역시 피부 부착형 패치나 이식형 센서가 외부 충전 없이 환자의 이상 징후를 실시간 탐지함으로써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AI가 클라우드라는 탯줄을 끊고 스스로 독립하는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중심 보도의 그늘을 벗어나야 할 때


국내 보도는 여전히 화려한 데이터센터용 GPU와 HBM 점유율에만 매몰되어 있다. 물론 이는 산업의 중요한 축이지만, 일상 사물의 지능화를 이끄는 초저전력 기술은 그 파급력 면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전력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배터리 의존도를 없애는 기술은 AI를 거대한 서버실에서 꺼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로 확장시킨다. 에지 AI의 독립적인 구동은 미래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에지 AI의 진정한 자립, 그 서막이 올랐다


인공지능 산업은 현재 두 갈래로 진화하고 있다. 한 축은 초거대 모델을 향한 무한 경쟁이며, 다른 한 축은 전력 소모를 0에 가깝게 줄여 어디서나 작동하는 편재형 지능을 만드는 길이다. 초저전력 하드웨어 가속기의 등장은 후자의 승리를 예고한다. 전원이 충분한 곳에서만 강력한 AI가 아니라, 에너지가 희박한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지능이 우리 일상을 지배할 날이 머지않았다. 배터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에지 AI의 진정한 자립이 시작되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