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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공급망 비상] HBM 쟁탈전에 중동발 헬륨 위기까지… 삼성·SK하이닉스 생산라인 '이중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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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공급망 비상] HBM 쟁탈전에 중동발 헬륨 위기까지… 삼성·SK하이닉스 생산라인 '이중 압박'

카타르산 헬륨 수입 64.7% 의존… 호르무즈 해협 차단되면 반도체 냉각 공정 직격탄
엔비디아, 루빈 GPU에 HBM4 288GB 장착… 2026년 말까지 메모리 생산량 '선점 완료'
DDR4 16GB 현물가 전년 대비 2,352% 폭등… 노트북 소비자 가격 최대 40% 인상 전망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에너지·자원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수송 기능이 위축됐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에 탑재할 HBM를 싹쓸이하면서 메모리 시장 전체가 수급 대란에 빠졌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에너지·자원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수송 기능이 위축됐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에 탑재할 HBM를 싹쓸이하면서 메모리 시장 전체가 수급 대란에 빠졌다. 이미지=제미나이3
전쟁이 반도체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2019년 카타르 외교 분쟁 당시 헬륨 수급에 비상이 걸렸던 한국 반도체 업계가 7년 만에 다시 같은 악몽을 마주하고 있다. 이번에는 규모가 다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에너지·자원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수송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에 탑재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싹쓸이하면서 메모리 시장 전체가 수급 대란에 빠졌다. 두 가지 위기가 동시에 한국 반도체 산업의 목을 조이는 형국이다.

헬륨 64.7%를 카타르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점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헬륨 2116t() 가운데 1375t이 카타르산으로, 의존도가 64.7%에 이른다. 나머지는 미국(27.1%), 러시아(6.2%), 중국(1.7%) 순이다. 헬륨은 반도체 웨이퍼 냉각 공정에서 온도를 급속 제어하고,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내부의 초고진공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가스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이를 완전히 대체할 물질은 없다.

문제는 카타르의 헬륨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카타르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는 이란의 공습으로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피해를 입은 뒤 고객사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가스월드에 따르면 헬륨 현물 가격은 최근 1주일 사이 35~50% 급등했다. 미국 화학회(ACS)"전 세계 헬륨 공급량의 3분의 1이 시장에서 사라졌다""갈등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정상화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롬 역시 위험 요소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쓰이는 브롬은 국내 수입의 97.5%를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헬륨, 브롬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14개 품목에 대해 긴급 수급 점검에 들어갔다.

삼성·SK하이닉스, 단기 방어력은 있지만…


업계의 즉각적인 생산중단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SK하이닉스는 로이터를 통해 "오래전부터 다양한 공급망과 충분한 헬륨 재고를 확보해 왔으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업계 최초로 개발한 '헬륨 재사용 시스템(HeRS)'을 일부 생산라인에 적용 중이다. 이 시스템을 전체 라인에 확대하면 연간 헬륨 사용량의 약 18.6%를 절감할 수 있다고 삼성 측은 추산한다.

그러나 분쟁 장기화 시 상황은 달라진다. 코른블루스 헬륨 컨설팅의 필 코른블루스 대표는 CNBC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봉쇄될 경우 전 세계 헬륨 공급의 25% 이상이 시장에서 빠질 것"이라며 "최소 2~3개월간 헬륨 생산이 중단되고, 공급망이 정상화되기까지 4~6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반도체업계의 헬륨·브롬 평균 비축량은 약 6개월분으로 알려져 있어, 분쟁이 반년을 넘기면 실질적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엔비디아의 HBM4 '입도선매'가 만든 메모리 지각변동


중동 리스크와 별개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이미 '전시(戰時) 경제'에 돌입했다. 진원지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Rubin)'이다. 금융 분석 플랫폼 TipRanks에 따르면 루빈 칩은 GPU 1개당 최대 288GBHBM4를 탑재한다. 일반 PC나 스마트폰이 8~12GB 메모리를 쓰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엔비디아는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생산 물량을 2026년 말까지 사실상 전량 선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서 "엔비디아는 상당 기간 HBM4의 유일한 고객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업계에서는 2026AI 가속기용 HBM 수요가 전년보다 약 70% 급증할 것으로 추산하지만, 3대 메모리 업체(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 모두 올해 HBM 생산 능력이 이미 매진된 상태다.

구글·오픈AI도 못 피한 메모리 전쟁… "소수 공급업체에 모든 게 달려 있다"


엔비디아의 독점적 구매력은 경쟁사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구글은 자체 AI 칩인 TPU(텐서 처리 장치)를 설계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HBM 역시 같은 공급망에서 조달해야 한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CNBC 인터뷰에서 "물리적 제약이 (AI) 배포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결국 소수 공급업체의 몇 가지 핵심 부품에 달려 있다"고 토로했다. 구글은 2026년 설비투자로 1750~1850억 달러(256~271조 원)를 책정했지만, 돈이 있어도 물량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IDC는 이번 메모리 수급 위기를 "유례없는 수준의 위기"로 규정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2026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약 80% 증가한 6500억 달러(95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공급 부족이 해소되기까지는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비자 지갑까지 덮친 메모리 대란… 노트북 가격 40% 인상 현실화


AI 반도체에 대한 메모리 쏠림 현상은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전이되고 있다. HBM 1개를 만드는 데 일반 DDR5 메모리 3~4개 분량의 실리콘 웨이퍼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훨씬 높은 HBM 생산에 설비를 집중한 결과,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 공급이 크게 위축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20261분기 기준 주류 스마트폰(8GB+256GB 구성)의 메모리 계약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200% 급등했다. 스마트폰 제조원가(BoM)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기존 10~15%에서 30~40%로 급격히 확대됐다.

노트북 시장의 타격은 더 크다. 트렌드포스와 Club386 보도를 종합하면, 통상 노트북 BoM의 약 15%를 차지하던 메모리·저장장치 비용이 20261분기에는 30%를 넘어섰다. 여기에 인텔이 보급형·이전 세대 노트북 CPU 가격을 15% 이상 인상한 데다, 2분기에는 중·고급형 플랫폼으로 인상을 확대할 예정이어서, 메모리와 CPU를 합산한 비용이 노트북 원가의 58%에 이를 전망이다. 900달러(132만 원) 수준 주력 노트북의 소비자 가격이 최대 40% 뛰어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닮은 듯 다른 구조… "이번엔 공급이 문제"


과거 반도체 업황 위기와 지금의 상황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수요 급감이 문제였다.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이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2026년의 위기는 정반대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이 물리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제약형 위기'. 이런 구조에서는 단기적으로 메모리 기업의 이익이 극대화되지만, 지정학적 변수가 생산 자체를 중단시키면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사라지는 극단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월가 투자은행(IB) 관계자는 "HBM 호황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역대급 실적을 안겨주고 있지만, 중동 분쟁이라는 변수가 터지면 생산 자체가 멈추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핵심은 '공급망 탄력성'K-반도체의 생존 방정식이 바뀌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일시적 가격 변동이 아니라, AI 시대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본다. 한 시장 분석가는 "투자자들은 이제 기업의 에너지·원자재 조달처가 얼마나 다변화돼 있는지, '공급망 탄력성(Resilience)'을 핵심 투자 지표로 삼아야 한다""AI 인프라 구축 속도가 늦춰지면 그동안 고평가를 받아 온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 반도체업계는 이미 공급망 재편에 착수했다. 삼성전자의 HeRS 기술, SK하이닉스의 다변화된 헬륨 조달 체계가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도 중동 의존도가 높은 14개 핵심 품목에 대해 대체 수입선 확보와 국내 생산 확대를 병행하는 '비상 수급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한일 수출규제 사태 이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가 가속화됐듯이, 이번 중동 위기는 K-반도체 기업들에게 에너지와 특수가스 공급원을 근본적으로 다각화하는 '자원 공급망 2.0'을 구축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HBM 패권을 쥐는 것이 수익의 열쇠라면, 그 열쇠를 돌릴 생산라인을 지켜내는 것은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K-반도체가 역대 최고의 호황과 최대의 위기를 동시에 건너야 하는 이유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