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 20% 통로 장악한 테헤란, 미·이 연합 공세에도 주변국 타격으로 역공
전쟁 장기화 시 내부 붕괴 자초... 한국 에너지·수출 기업 직격탄 우려
전쟁 장기화 시 내부 붕괴 자초... 한국 에너지·수출 기업 직격탄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경제 핵폭탄'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보유한 최강의 비대칭 카드다. 이 좁은 수로 하나가 막히면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UAE·쿠웨이트산 원유의 수출 경로가 사실상 차단된다. 현재 이란은 해협을 실질적으로 봉쇄한 상태이며,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전쟁 발발 이후 큰 폭의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에 "48시간 이내에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 시설을 전면 타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발동했다. 그러나 테헤란의 반응은 침묵과 추가 도발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 이란 익명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 "이번 침략이 침략자 스스로에게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이란 지도부의 의도를 전했다. 같은 소식통은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 동맹을 홀로 상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걸프 지역 주재 유럽 외교관들은 이란 지도부가 해협 봉쇄를 유지하면서 미·이 연합의 공세를 버텨내는 것 자체를 '단기적 승리'로 규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에너지 시장 전문가들 역시 해협의 지정학적 위력에 주목한다. 국내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해협이 닫히는 순간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공급 루트는 사실상 없다"며 "카타르 LNG까지 차질이 생기면 유럽과 동아시아의 에너지 위기가 동시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 지도부 피격에도 꺾이지 않는 결사 항전
이스라엘의 정밀 타격은 4주간 이란 지도부의 허리를 잇달아 꺾었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알리 라리자니 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을 포함해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대변인 알리 모하마드 나이니 등 핵심 인사 4명이 전사했다. 특히 라리자니는 서방과 물밑 접촉을 유지해 온 실용파 외교 채널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사망은 협상 재개의 가능성을 한층 옥죄는 결과를 낳았다.
미 국무부 이란 담당관 출신으로 현재 미동북아연구소(MEI)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앨런 에어는 이란 지도부의 전략 논리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들은 경제적 타격이 누적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손을 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직 충분히 비용을 높이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한, 판 키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란 정권이 내부에서 항전 의지를 유지하는 또 다른 동력은 '포위당한 것 같은 공포 심리'다. 외부로부터 공격받는 상황 자체가 이란 혁명 정권에게는 체제 결속의 구심점이 된다. 미·이 연합은 지금까지 이란 내 1만 5000개 이상의 목표물을 타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선 것으로 미 국방부는 집계하고 있다.
자국 피해를 이웃 국가로 전가하는 '확전 전략'
이란의 세 번째 카드는 주변 친미 산유국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란은 자국 에너지 기반 시설이 미·이 연합의 타격에 무너지자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의 에너지 거점을 역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란과 카타르가 공동 개발하는 세계 최대 가스전 사우스파스(South Pars) 인근 시설에 대한 공격을 전후해, 이란은 카타르 내 천연가스 처리 시설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히는 타격을 단행했다.
이란 측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해 이스라엘과의 이른바 '12일 전쟁' 당시 핵 시설이 피격당했던 선례를 거론하면서, 이번에는 섣불리 휴전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란이 내건 대화 재개 조건은 공격 중단과 전쟁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 그리고 불가침 보장이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조건을 의도적으로 제시해 협상 자체를 차단하는 전략으로 읽힌다.
'전쟁 승리'보다 두려운 것, 전쟁이 끝난 다음 날
전문가들이 이란의 장기 버티기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전쟁이 끝난 이후에 있다.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이자 전직 미 정보 당국 고위 관료인 루엘 마크 게레흐트는 "이란 지도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전쟁 중이 아니라 전쟁이 멈춘 직후"라고 지적한다.
수천 차례의 공습으로 전력망·수도·물류망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교전이 종료되면 정부는 기본적인 행정 기능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게레흐트는 "이란 내에서 정상 작동하는 시스템이 하나도 남지 않는 상황이 오면, 이는 새로운 민중 봉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테헤란 지도부가 실현 불가능한 승리 조건을 고집하며 전쟁을 끌고 가는 배경에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붕괴를 더 두려워하는 정권 생존 본능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란 전쟁이 세계 경제와 한국 투자자에게 던지는 세 가지 신호
첫 번째는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다. 장기 고유가 시대 개막을 가리킨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단순한 유가 급등을 넘어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 불가피하다. 사우스파스 가스전 타격은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에 직접적인 차질을 야기한다. 카타르는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를 공급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JP모건(JPMorgan Chase)과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봉쇄 장기화 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유가 충격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공급 충격의 지리적 범위는 훨씬 광범위하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지 못한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한국 경제의 '삼중 충격'이 눈 앞에 열린 것이다. 에너지·수출·공급망 드 3가지가 동시에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며, LNG 역시 카타르산 비중이 상당하다. 호르무즈 봉쇄는 에너지 수입 단가 상승, 무역수지 악화, 제조업 원가 압박이라는 삼중 충격을 동시에 가한다.
수출 측면에서도 직격탄이 예상된다. 중동 지역은 한국 건설·방산·플랜트 수출의 핵심 시장이다. 전쟁 장기화는 이미 수주한 프로젝트의 차질과 신규 수주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반사이익(LNG운반선 발주 급증 가능성)과 원자재 비용 상승의 교차점에 놓이게 된다.
원화 가치 하락 압력도 가중된다. 고유가 국면에서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외국인 자금 이탈이 동반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 운신 폭을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 번째는 시장에 주는 '공포 장세'의 기회와 함정이다. 전쟁 리스크가 지속되는 국면에서 투자자들은 두 가지 상반된 유혹에 직면한다.
단기적으로는 기회가 있다. 국내 정유주와 에너지 관련 ETF는 고유가 수혜 업종으로 부각될 수 있다. 방위산업주는 지정학 리스크 확대 국면에서 전통적으로 시장 대비 우위를 보인다. 글로벌 LNG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면 국내 조선 빅3(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의 수주 모멘텀이 재차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위기가 다가온다. 고유가의 역설은 경기 침체를 앞당긴다는 점이다. 에너지 비용이 소비 여력을 잠식하면 수요 둔화가 기업 실적 전반을 눌러 '고유가-저성장'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빠질 수 있다. 2026년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정책 방향성이 이 변수와 맞물리며 글로벌 유동성 환경의 불확실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전쟁의 결말이 어느 방향으로 귀결되든, 호르무즈 해협은 이미 21세기 지정학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재소환됐다. 한국 투자자에게 이번 사태는 분산 투자와 에너지 공급망 재편에 따른 수혜·피해 업종의 정밀한 옥석 가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임을 상기시킨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