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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개방 선언에 유가 11% '뚝'…파나마 운하는 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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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개방 선언에 유가 11% '뚝'…파나마 운하는 병목

이란 "조정항로 제한" vs 美 "봉쇄 유지"…엇갈린 메시지에 시장 반신반의
파나마 운하 3.5일 대기…LPG선 1척당 400만 달러 ‘새치기 비용’
파나마 항만을 지나는 선박.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파나마 항만을 지나는 선박. 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해소를 기대해 온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일단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완전 개방'을 선언한 이란과 이를 환영한 미국 사이에 통제 주체와 항로 조건을 둘러싼 해석이 엇갈리면서 원유·해운 시장의 경계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차단으로 공급이 틀어막히자 아시아가 눈을 돌린 파나마 운하는 17일(현지시각) 기준 3.5일 대기라는 기록적 병목을 안게 됐다.

유로뉴스가 17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과 NBC뉴스·PBS·블룸버그 보도를 종합하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 X에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 선박 통항이 휴전 잔여기간 완전 개방된다"고 선언했다.

수 분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열렸다고 방금 발표했다.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50일째로 접어든 시점에서 나온 첫 실질적 해빙 신호다.

'완전 개방'의 이면…이란 "조정된 항로로만"


발표문을 뜯어보면 온도차가 뚜렷하다. 아라그치 장관은 통항이 "이란 항만해양청이 공표한 조정된 항로(coordinated route)로 제한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세예드 모하마드 메흐디 타바타바에이 이란 대통령실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적의 근거 없는 주장"으로 규정하며 "조건부·제한적 개방은 오직 이란의 독자 행동이며, 상대방의 확고한 약속을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가까운 파르스통신은 "최고국가안보위원회와 협상팀의 이상한 침묵"을 지적하며 이 결정에 최고지도자 재가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영 타스님통신 역시 항행이 이란이 지정한 회랑으로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이란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호르무즈 해협에 깔린 기뢰를 제거 중이며, 다시는 해협을 무기로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이란의 폭격된 핵시설에서 공동 굴착을 통해 농축우라늄('핵먼지')을 모두 회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은 지난 13일 개시한 이란 항구 대상 해상 봉쇄는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전면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이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봉쇄가 계속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가 11% 급락·증시 최고치…시장은 '조건부 환영'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 PBS와 NBC뉴스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7일 하루 10.8~11.4% 급락해 배럴당 81.28∼83.85달러(약 11만 9302~12만 3075원)에 거래됐다.

3월 10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제 기준 유가인 브렌트유도 9~10.3% 빠지며 배럴당 89.13∼90.38달러(약 13만 825∼13만 2659원)로 내려앉았다. 난방유 선물은 10%, 도매 휘발유 선물은 5% 하락했다.

미국 뉴욕증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3월 말 저점 이후 증시 상승률은 11%를 넘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연 4.24%로 전날 4.32%에서 내렸다.

유럽 증시에서도 독일 DAX 지수가 2.2%, 프랑스 CAC 40이 2% 올랐다. 다만 시장 관계자들은 "개방 범위와 통제 주체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며 통항 정상화에 대한 확신은 유보하는 분위기다.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전쟁 개시 뒤 갤런당 4달러(약 5871원)를 넘긴 미국 휘발유 가격이 실제 내리기까지 6∼8주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쟁 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원유·액화천연가스(LNG)는 세계 공급량의 5분의 1에 해당했다.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뒤 통항이 90% 이상 막히면서 하루 약 1000만 배럴이 증발했다.

이 중 84%가 아시아행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에 남은 항공유 재고가 6주분"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파나마 운하의 '풍선효과'…LPG선 1척당 400만 달러 새치기


블룸버그가 지난 1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호르무즈 차질의 반작용은 지구 반대편 파나마 운하에서 터져 나왔다.

페르시아만발 원유·가스·비료·화학 공급이 막히자 아시아 수입국들이 미국 멕시코만으로 방향을 틀면서 파나마 운하 대기 시간이 3.5일로 늘어났다. 2023∼2024년 가뭄 이후 가장 심각한 혼잡이다.

싱가포르 선적 LPG선 '가스 비르고호'(중국 완화화학 운영)는 텍사스산 화물을 싣고 지난 15일 운하를 통과하면서 우선 통항권 경매에서 400만 달러(약 58억 7120만 원)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3월 초 100만 달러(약 14억 6780만 원) 미만에서 4배 가까이 뛴 금액이다. 일반 통항료(척당 수십만 달러) 외에 얹는 웃돈이다.

파나마 운하청은 이 수치를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경매가는 운하가 설정한 요금이 아니라 연료 가격·화물 긴급성·수급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일시적 시장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운하청은 16일 기준 102척이 예약을 확보했고 25척이 예약 없이 대기 중이라고 밝혔다. 2026 회계연도 상반기 통항 선박은 6288척으로 1년 전보다 3.7% 늘었다. 하루 통항량도 당초 전망을 웃도는 36∼38척으로 올라왔다.

한국 경제, '미완의 개방'에 촉각


한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95% 안팎에 이르는 만큼 호르무즈 변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는 한국 관련 선박 26척이 40일 넘게 발이 묶여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4일 "특사가 이란 측 고위 인사들과 접촉해 선원·선박 안전과 통항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란에 50만 달러(약 7억 3390만 원) 상당 구호 물품 지원과 함께 선박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7일 2026년 4월 최근경제동향을 발표하며 에너지 수급 변수를 점검했고, 같은 날 한국 유조선이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우회로를 통해 원유를 싣고 통과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개방이 이란 통제 하의 조정항로로 제한된다면 실질 물동량은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렵다"며 "오는 22일 2주 휴전 종료 이후 연장 여부가 단기 시장의 최대 변수"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약 11만 7424원)에서 100달러(약 14만 6780원)로 오를 경우 한국 연간 원유 수입 비용이 10조 원가량 늘어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2차 대면 협상은 다음 주말께 열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제유가·해운 운임의 5월 방향은 이 협상 결과와 휴전 연장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