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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유 확보 전쟁, '호르무즈 봉쇄'에 전 유럽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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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유 확보 전쟁, '호르무즈 봉쇄'에 전 유럽 비상

중동발 공급망 붕괴로 수급난 가중… 항공료 급등·무더기 결항 현실화
수급 불균형 장기화 전망에 '에너지 안보' 차원 대응 전략 시급
런던 개트윅 공항.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런던 개트윅 공항. 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럽 항공업계의 목줄을 죄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하고 있다.

CNBC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29일(현지시각),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지 두 달째 접어든, 유럽 내 항공유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달 초 "유럽의 항공유 재고가 수주 내 바닥날 수 있다"라고 경고했으며,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전례 없는 '연료 확보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공급 자체가 끊기는 '실물 위기'로 번지며 글로벌 항공 산업의 체력을 시험하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되고 있다.

중동 공급선 75% 증발… "카고 하나에 국가 간 입찰 경쟁"


유럽 항공유 시장은 현재 유입 통로가 막히며 물리적 고갈 위기에 직면했다. 소시에테제네랄(SocGen)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하루 평균 항공유 수요는 약 160만 배럴이다.

이 중 110만 배럴은 역내에서 자체 생산하지만, 부족분인 50만 배럴은 수입에 의존해 왔다. 문제는 이 수입량의 75%(하루 약 37만 5000배럴)를 차지하던 중동발 물량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사실상 끊겼다는 점이다.

베네딕트 조지 아거스(Argus) 유럽 제품 가격 책임자는 지난 27일 CNBC '스쿼크 박스 유럽'에 출연해 "미국과 나이지리아 등으로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있으나 중동 물량을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현재 유럽은 싱가포르, 호주 등과 모든 화물(Cargo)을 놓고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이 새로운 공급처로 급부상하며 대유럽 수출량을 하루 20만 배럴까지 늘렸으나, 수치상으로 보면 여전히 중동발 결손분인 하루 약 17만 5000배럴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특히 항공유 자급률이 낮은 영국(수입 의존도 65%) 등은 타격이 더욱 심각하다.

"비싸도 구하면 다행"… 항공료 인상과 노선 감축의 악순환


항공사들은 치솟는 연료비와 물리적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에어프랑스-KLM은 최근 연료비 급등을 이유로 장거리 왕복 노선 이코노미석 요금을 100유로 인상했다.

오늘 기준 환율(1유로 약 1.17달러 환산 시)로 계산하면 티켓당 약 15만 원(약 108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또한 미국·캐나다·멕시코 노선은 70유로(약 12만 1150원), 단거리 노선은 왕복 10유로(약 1만 7300원)씩 요금이 올랐다.

루프트한자(Lufthansa)는 지난주 연료 절감을 위해 약 2만 편의 항공편을 선제적으로 취소했다. 이를 통해 절감한 연료만 4만 톤(t) 이상이다.

금융권과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헤지(위험 분산) 계약만으로는 이번 위기를 버티기 어렵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마이크 헤이그 원자재 연구 책임자는 보고서에서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경영의 문제지만, 연료가 아예 없는 것은 실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응 역량에 따라 항공사별 희비는 갈리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올해 소요량의 80%를 위기 이전 가격으로 헤지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헝가리의 저비용 항공사(LCC) 위즈에어(Wizz Air) 역시 여름 시즌 물량의 70%를 확보했다고 발표했으나, 모닝스타 분석가들은 위즈에어의 연료 마진 버퍼가 상장사 중 가장 낮아 돌발 변수에 취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에너지 안보가 좌우할 항공업계 재편 시나리오


이번 사태는 항공사들에게 탄력적인 노선 운영과 에너지 공급망 확보라는 숙제를 던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항공유 부족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자본력이 약한 중소 항공사들이 도태되고 시장이 대형사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단순히 운임에 유류할증료를 얹는 방식으로는 소비 위축을 피하기 어렵다. 영국항공(BA) 등을 보유한 IAG 대변인은 "연료 가격 상승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며 정부 차원의 슬롯(항공기 이착륙 시간대) 유연성 부여 등 정책적 지원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여부가 향후 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유럽 항공사들은 고가 매입과 노선 축소를 반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전망이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유럽발 항공 대란은 이제 현실이 됐다.

한국 항공업계 역시 고유가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라는 파고를 넘기 위해 단순 헤지 전략을 넘어선 범국가적 에너지 안보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