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패러다임이 전 세계 거시 경제와 산업 지형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반도체가 AI 시대의 '원유'라면, 그 원유를 가동해 거대한 연산 능력을 뿜어내는 데이터센터 서버는 시대의 '심장'이다. 이 심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며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슈퍼마이크로컴퓨터(Super Micro Computer) 즉 슈마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찰스 리앙(Charles Liang)이다 중국어 한자 원어는 梁見後이다.
찰스 리앙은 1956년 대만 남서부의 척박한 농촌 동네인 자이현(Chiayi, 嘉義縣)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싼 환경은 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먼 푸른 숲과 끝없이 펼쳐진 논밭이 전부였다. 그러나 리앙은 유년 시절 자연 속에서 체득한 '자원의 소중함'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감각을 평생 잊지 않았다. 이 소박한 시골 소년의 정서는 훗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슈마컴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 무기인 '그린 컴퓨팅(Green Computing)' 철학의 모태가 된다. 기술에 유독 총명함을 보이던 그는 국립대만과학기술대학교(National Taiw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전기공학과에 진학하여 엔지니어로서의 기초 체력을 다졌다. 대학 졸업 후 더 넓은 세상에서 아키텍처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텍사스대학교 알링턴 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rlington)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원 재학 시절 그의 관심사는 단순히 하드웨어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의료 기술과 컴퓨터 시스템의 결합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질병 진단을 돕는 의료용 전문가 시스템과 초기 형태의 'AI 프로세서' 칩 설계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이 가져올 하드웨어의 대전환을 직관적으로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석사 학위 취득 후 리앙은 실리콘밸리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칩스 앤 테크놀로지스(Chips and Technologies)와 선텍 인포메이션(Suntek Information) 등 당시 촉망받던 테크 기업에서 선임 설계 엔지니어 및 프로젝트 리더로 근무하며 서버 아키텍처 기술의 뼈대를 익혔다. 이후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하이엔드 메인보드 제조사인 '마이크로 센터 컴퓨터(Micro Center Computer)'에서 사장 겸 수석 설계 엔지니어로 재직하며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초기 형태의 경영 감각을 익히게 된다.
슈마컴이 델(Dell)이나 HPE 같은 굴지의 대기업들을 제치고 AI 시대의 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던 비결은 찰스 리앙의 무서운 '속도 경영'과 인적 네트워크에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른바 '대만계 마피아'로 불리는 강력한 인적 연대가 존재한다. 찰스 리앙과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 수십 년간 신뢰를 쌓아온 막역한 사이다. 두 사람은 엔비디아가 그래픽 칩셋을 겨우 만들던 초창기 시절부터 협력하며 서로의 성장을 도왔다. 이 단단한 동맹은 AI 시대에 접어들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칩(H100, B200 등)을 설계하면, 설계 도면과 샘플 칩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밀무역하듯 슈마컴의 연구소로 배달된다. 리앙의 엔지니어들은 이 칩이 정식 출시되기도 전에 이미 그에 최적화된 서버 아키텍처를 완성해 놓는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타임 투 마켓(Time-to-Market)'의 실현이다. 경쟁사들이 엔비디아의 칩을 받아보고 서버 기획과 설계에 들어갈 때, 슈마컴은 이미 완성된 완제품 서버를 들고 빅테크 기업들의 문을 두드린다. 제품 출시 주기를 최소 2개월에서 6개월 이상 앞당기는 이 압도적인 속도 차이는, 하루라도 빨리 AI 모델을 학습시켜야 하는 구글, 메타, 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슈마컴 앞에 줄을 서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찰스 리앙을 단순히 '수완 좋은 경영자'로만 평가한다면 그의 진면목을 놓치는 것이다. 그는 환경에 심각할 정도로 집착하는 '그린 엔지니어'다. 2004년, 리앙은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를 관람한 후 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아내와 임원들에게 "우리가 만드는 서버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게 둘 수 없다"며, 회사의 모든 기술 개발 방향을 '친환경 및 에너지 절감'으로 180도 전환할 것을 명령했다. 주변에서는 "서버 성능이 중요하지, 환경이 무슨 상관이냐"며 비웃었지만 리앙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한 파워서플라이와 메인보드 설계에 수년간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었다.
이 끈질긴 집착은 20년이 지난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진입장벽을 만들어냈다. AI 데이터센터는 수만 개의 GPU가 동시에 가동되며 상상을 초월하는 열을 방출한다. 기존의 선풍기를 돌려 바람으로 식히는 '공랭식' 구조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데이터센터가 뿜어내는 열을 식히는 데만 천문학적인 전력 요금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빛을 발한 것이 슈마컴의 '액체 냉각(Liquid Cooling, 수랭식)' 기술이다. 서버 내부에 냉각수가 흐르는 관을 직접 연결해 열을 식히는 이 시스템은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소비량을 최대 40%까지 낮추는 기적을 연출했다. 전기 굶주림에 시달리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슈마컴의 수랭식 랙 시스템은 이제 대체 불가능한 필수재가 되었다. 20년 전 기후 위기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이, 오늘날 전 세계 AI 서버 냉각 시장 점유율 1위라는 독점적 지위를 선사한 것이다.
찰스 리앙의 슈마컴은 철저한 '가족 중심 기업'이다. 아내 사라 리우는 회사의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살림을 도맡고 있고, 대만 현지에서 슈마컴의 서버 섀시와 주요 부품을 위탁 생산하는 핵심 협력사 '에이블컴(Ablecom)'과 '컴퓨케이스(Compuware)'는 리앙의 친형제들이 경영하고 있다. 이러한 수직 계열화와 가족 경영은 이사회 눈치를 보지 않는 번개 같은 의사결정과 강한 결속력을 낳았지만, 동시에 '폐쇄적 거버넌스'와 '회계 불투명성'이라는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슈마컴이 발표한 70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대규모 증자 뉴스는 찰스 리앙이 처한 현재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슈마컴이 전 세계 고객사로부터 접수한 AI 서버 주문 잔고는 무려 39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슈마컴의 1년 치 매출을 뛰어넘는 역대급 수치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폭발적인 주문이 리앙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Blackwell) 칩 등 서버에 들어갈 원자재 값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기도 전에 엄청난 선행 자금이 묶이는 '돈맥경화(Cash Burn)'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되어 단기 주가가 9% 급락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70억 달러의 수혈을 감행한 이유는, 오직 하나 '부품을 확보해 시장을 완전히 독식하겠다'는 리앙의 독한 계산이 깔려 있다.
가난한 대만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의 한계를 깨부수고 AI 인프라의 황제가 된 찰스 리앙. 그는 투박하지만 정교하고, 고집스럽지만 트렌드보다 수년은 앞서 나가는 기괴한 천재성을 지닌 인물이다. 과연 그가 대규모 자금 조달이라는 당면한 성장통을 극복하고, 델과 HPE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며 글로벌 AI 영토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