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인물] 하워드 러트닉 "911 불사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인물] 하워드 러트닉 "911 불사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사진=로이터

역사상 가장 참혹한 테러로 기록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빌딩 북쪽 타워 101층부터 105층에 본사를 두고 있던 글로벌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Cantor Fitzgerald)는 문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뉴욕 본사 직원의 70%에 달하는 658명이 단 한 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다. 그 안에는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의 친동생과 수십 년을 함께한 죽마고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업의 존속은 커녕 물리적, 인적 기반이 완전히 소멸한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워드 러트닉은 그러나 살아남았다. 그는 눈물을 삼키며 회사를 재건했다. 월가의 전설적인 ‘불사조’로 거듭났다.

러트닉은 금융계의 거물을 넘어 미국의 무역과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부의 핵심 권력자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권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거쳐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며 미국 최전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이끄는 전략가로 우뚝 선 것이다. 비극적인 운명의 장난 속에서 살아남아 끝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낸 인물이다.

하워드 윌리엄 러트닉(Howard William Lutnick)은 1961년 7월 14일,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제리코(Jericho)에 위치한 평범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다. 어머니는 조각과 회화에 조예가 깊은 예술가였다.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러트닉은 지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는 듯했다. 그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어머니가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79년, 하버포드 대학교(Haverford College)에 갓 입학한 신입생 시절에는 아버지마저 의료 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러트닉과 그의 형제들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의 잠재력과 불행을 안타깝게 여긴 하버포드 대학교 측은 러트닉에게 학비 전액 장학금을 제안하며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학교 측의 이 인도주의적 결정을 계기로 러트닉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훗날 자산가가 된 이후 모교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하며 학교 역사상 최대 기부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부모의 부재라는 극단적인 결핍 속에서도 그는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고, 1983년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대학을 졸업한 1983년, 하워드 러트닉은 월가의 유력 금융서비스 기업인 캔터 피츠제럴드에 채권 브로커로 입사했다. 당시 회사의 창립자였던 버나드 캔터(Bernard Cantor)는 젊은 러트닉의 남다른 명석함과 동물적인 비즈니스 감각, 그리고 지독할 정도의 워커홀릭 성향을 눈여겨보았다. 버나드 캔터는 아들이 없었기에, 자식처럼 따른 러트닉을 전폭적으로 신임하며 자신의 멘티로 삼아 경영 전반을 전수했다.

러트닉의 승진 가도는 파죽지세였다. 그는 탁월한 실적을 바탕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입사 불과 8년 만인 1991년, 30세의 나이로 캔터 피츠제럴드의 사장(President)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이어 1996년에는 이사회 의장(Chairman)까지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회사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러트닉 경영의 핵심은 ‘기술 혁신’에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목소리 기반의 전화 중개(Voice Brokerage) 방식이 가진 한계를 직시하고, 중개인이 필요 없는 혁신적인 전자거래 시스템인 ‘이스피드(eSpeed)’를 개발하여 금융 시장에 전격 도입했다. 이 과감한 디지털 전환은 캔터 피츠제럴드를 전 세계 국채 거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점적 위치로 끌어올렸으며, 훗날 9·11 테러라는 미증유의 재앙 속에서 회사가 기술적으로 연명하고 빠르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물리적 토대가 되었다. 이후로도 그는 보이스 중개 부문을 분리해 BGC 파트너스(BGC Partners)를 설립하고, 2011년에는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인 뉴마크(Newmark)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외연 확장을 지속하며 글로벌 금융 및 부동산 시장의 거물로 군림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뉴욕의 하늘은 맑았다. 캔터 피츠제럴드의 임직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최상층부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다. 이 평화는 오전 8시 46분,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아메리칸 항공 11편 여객기가 북쪽 타워 93층에서 99층 사이를 그대로 들이받으면서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피격 지점은 캔터 피츠제럴드 사무실 바로 아래층이었기에, 본사 전 직원은 타워 상층부에 완벽히 고립되었다. 화염과 유독가스, 그리고 끊어진 계단으로 인해 단 한 명도 아래로 내려올 수 없었다. 건물 안에 있던 658명의 직원은 끝내 전원 사망했다. 여기에는 러트닉의 친동생인 게리 러트닉(Gary Lutnick)과 그의 가장 친한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워드 러트닉이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장남의 유치원 등원' 때문이었다. 그날은 그의 아들 카일 러트닉(Kyle Lutnick)이 유치원에 처음으로 등원하는 날이었다. 러트닉은 아들의 손을 잡고 등원 길을 함께한 뒤 조금 늦게 출근하는 중이었다. 그가 탄 차가 세계무역센터 인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첫 번째 타워는 불타고 있었고, 그가 타워 로비 문턱에 다다랐을 무렵 남쪽 타워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는 날아오는 잔해와 자욱한 먼지 폭풍 속에서 주차된 차량 아래로 몸을 숨겨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살아남은 러트닉 앞에는 참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 사무소 인력의 70%가 증발했고, 회사의 핵심 데이터와 인프라도 전소되었다.

그는 런던 지사와 전자거래 시스템 '이스피드'의 서버를 기반으로 눈물겨운 재건 작업을 시작했다. 남은 직원들은 죽은 동료들의 몫까지 하루 20시간씩 일하며 시장을 지켰다. 결국 회사는 기적적으로 회생했고, 러트닉은 약속을 완벽히 이행했다. 그는 '캔터 피츠제럴드 구호 기금(The Cantor Fitzgerald Relief Fund)'을 설립하여 총 1억 8,000만 달러(약 2,4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조성해 유족들에게 지급했다. 이 드라마틱한 생존과 재건 스토리를 통해 그는 월가에서 '9·11 극복의 상징'이자 절대 무너지지 않는 불사조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하워드 러트닉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인연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의 고위 비즈니스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은 뉴욕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서 친분을 쌓았다. 특히 2008년 러트닉이 트럼프가 진행하던 유명 리얼리티 TV 쇼인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 카메오 및 심사위원 역할로 출연하면서 이들의 대중적, 사적 연대는 더욱 공고해졌다.

한때 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이기도 했던 러트닉은 트럼프와의 교류를 통해 점차 공화당의 핵심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트럼프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막강한 자금줄 역할을 담당했다. 대선 정국이었던 2024년 여름, 러트닉은 자신의 햄프턴 자택에서 트럼프를 위한 대규모 고액 모금 행사를 주최하여 단 하룻밤 만에 1,500만 달러(약 200억 원)의 선거 자금을 모으는 저력을 과시했다. 트럼프는 2024년 8월, 러트닉을 백악관 정권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러트닉은 월가에서 쌓은 방대한 인맥과 인사 검증 노하우를 활용하여 차기 행정부의 내각 및 고위직 후보 명단을 작성하는 ‘헤드헌터’이자 사실상의 인사 권력을 쥐게 되었다.

러트닉은 거시 경제와 금융 정책을 관장하는 재무장관(Secretary of the Treasury)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정권 인수팀 내부에서 추천 인사들 간의 치열한 계파 갈등과 이견이 표출되면서 국면이 전환되었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자신의 핵심 대선 공약인 '관세 폭탄'과 '미국 제조업 부활'을 가장 저돌적으로 실행할 적임자로 러트닉을 선택했다. 2024년 11월 19일, 도널드 트럼프는 하워드 러트닉을 미국 상무장관(Secretary of Commerce)으로 지명했다. 러트닉은 강력한 무역 보호주의론자다. 그는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적 기반 산업의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된 원인이 불평등한 무역 협정에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중국을 향한 고율 관세 부과는 물론, 동맹국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 관세 도입을 통해 미국의 제조 역량을 강제로 회복시키는 최전선 사령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하워드 러트닉의 삶은 가혹한 비극에 맞서 인간의 의지가 어디까지 버텨내고 부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서사시다.

청소년기 부모의 연이은 사망이라는 개인적 비극을 딛고 월가 정상에 올랐으며, 9·11 테러라는 국가적 재앙으로 동생과 직원의 대부분을 잃은 뒤에도 회사를 기적적으로 재건해 냈다. 슬픔에 매몰되는 대신 냉철한 비즈니스 감각과 책임감으로 유족과의 약속을 지켜낸 그의 모습은 오늘날 그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서사적 자산이 되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