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GPU 현금흐름 투자상품으로 변신
엔비디아·월가 714조원 자금 동원…규제 문턱도 낮아져
엔비디아·월가 714조원 자금 동원…규제 문턱도 낮아져
이미지 확대보기AI 데이터센터가 벌어들이는 임대료와 컴퓨팅 사용료를 기반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위험 수준별로 나눠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금융구조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의 기본적인 기능이 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서로 다른 위험과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데 있다며 AI 인프라 역시 이런 '증권화'의 대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16일(이하 현지시각) 분석했다.
AI 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 규모가 수천억달러를 넘어서면서 기술기업의 자체 현금이나 일반 회사채만으로 투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블룸버그는 이같이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증권화의 기본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데이터센터와 같은 자산에서 앞으로 발생할 임대료와 사용료 등 현금흐름을 하나의 구조 안에 넣고 이를 담보로 증권을 발행한다.
안정성을 선호하는 투자자에게는 현금흐름을 먼저 받을 수 있는 선순위 채권을 주고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는 손실 위험이 큰 후순위 증권을 사는 방식이다.
같은 데이터센터가 만들어내는 현금흐름을 투자자의 위험 선호도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잘라 판매할 수 있는 셈이다.
차이는 AI 데이터센터가 단순한 금융채권이 아니라 실제 건물과 서버, 전력·냉각설비를 운영하면서 계속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 금융을 편의상 '증권화'라고 부르지만 법적인 의미의 전통적인 자산유동화증권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SEC "데이터센터는 전통적 ABS 아니다"
이 구분은 최근 미국 금융당국의 판단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29일 로펌 레이섬앤드왓킨스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일정한 구조의 데이터센터 증권은 미국 증권거래법상 자산유동화증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통적인 ABS의 기초자산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자동차대출처럼 일정 기간 원리금이 상환되면서 결국 현금으로 소멸하는 '자기청산형 금융자산'이다.
반면 데이터센터는 발행한 채권의 만기가 끝난 뒤에도 시설 자체가 그대로 남아 운영된다. 추가 고객을 유치하고 임대료를 받고 새로운 계약을 맺으면서 계속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SEC가 데이터센터 자체를 전통적인 ABS의 기초자산과 다르게 본 이유다.
이 판단으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데이터센터 금융에는 기존 ABS에 적용되던 일부 위험보유와 공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될 여지가 생겼다.
일반적으로 ABS 발행자는 부실 위험을 전부 투자자에게 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신용위험의 일정 부분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데이터센터 구조에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AI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이전보다 적은 규제비용으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5년 만에 3조원서 22조원으로
AI 투자 확대와 함께 데이터센터 증권화 시장은 이미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미국 데이터센터 관련 ABS 신규 발행액은 2020년 24억달러(약 3조4291억원)에서 지난해 155억달러(약 22조1464억원)로 5년 만에 6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다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필요한 자금 규모가 워낙 커진 데다 보험사와 연기금 등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도 데이터센터의 장기 임대계약에서 나오는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AI 산업이 기술산업인 동시에 거대한 인프라 금융산업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엔비디아 714조원 계획도 같은 흐름
엔비디아가 최근 월가 대형 금융회사들과 내놓은 5000억달러(약 714조4000억원) 규모의 AI 인프라 금융 계획도 이런 흐름을 상징한다.
엔비디아는 아폴로, 블랙록, 블랙스톤, 브룩필드, 골드만삭스, KKR과 독립적인 AI 컴퓨팅 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고 장기간에 걸쳐 5000억달러 이상의 제3자 자본을 동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엔비디아가 돈을 전부 직접 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금융회사들이 각 프로젝트의 데이터센터와 GPU, 고객계약, 예상 현금흐름을 평가한 뒤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 컴퓨팅 자체가 하나의 투자 가능한 자산군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는 프로젝트에 따라 전체 사업가치의 최대 25%까지 자사 장비의 잔존가치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5000억달러 전체에 단순 적용할 경우 최대 1250억달러(약 178조6000억원)에 해당하지만 실제 지원 여부와 규모는 프로젝트별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핵심은 GPU를 단순히 몇 년 뒤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전자제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임대하고 재배치해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금융자산에 가까운 대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AI판 모기지 증권' 될까
이 같은 구조가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 데이터센터와 GPU가 장기간 예상한 만큼의 현금을 계속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AI 컴퓨팅 수요가 계속 늘고 데이터센터 가동률이 유지된다면 채권 투자자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AI 모델이 훨씬 적은 연산량으로 같은 성능을 내거나 차세대 반도체가 기존 GPU를 예상보다 빠르게 대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담보로 잡힌 GPU의 가치가 급락하거나 데이터센터 이용률이 떨어질 경우 이를 기반으로 발행된 증권의 안전성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증권화는 위험을 없애는 금융기법이 아니라 위험을 여러 투자자에게 나눠 이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과거 주택담보대출 증권화도 주택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투자상품으로 바꾸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기초자산의 위험을 잘못 평가하고 복잡한 구조로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전염경로 가운데 하나가 됐다.
AI 데이터센터 금융이 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AI 산업의 성패에 대한 같은 낙관론이 데이터센터, GPU, 임대계약, 사모신용, ABS와 기관투자자 자금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면 기술산업의 위험이 금융시장으로 전달되는 경로 역시 넓어질 수 있다.
◇AI 투자전쟁, 금융공학 경쟁으로 확대
AI 경쟁의 초점은 지금까지 누가 더 좋은 모델과 더 빠른 반도체를 확보하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수천억달러 단위로 커지면서 이제는 누가 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조달하느냐도 경쟁력의 일부가 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월가의 자산운용사와 사모자본을 끌어들이고,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현금흐름을 증권화하며, 보험사와 연기금이 AI 인프라의 최종 자금 공급자로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SEC의 최근 판단으로 데이터센터 금융의 규제 장벽까지 낮아졌다.
AI 붐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투자자들이 AI에 투자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엔비디아와 빅테크 주식을 사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 임대료와 GPU 사용료를 기반으로 한 채권과 구조화상품을 통해서도 AI 산업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자금 수요가 월가의 금융공학과 만나면서 'AI 증권화'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