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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애플 팀쿡(Timothy Cook) " 후계자= 존 터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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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애플 팀쿡(Timothy Cook) " 후계자= 존 터너스"

팀 쿡 애플 CEO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팀 쿡 애플 CEO /사진=로이터
애플의 사령탑 팀 쿡이 경영 후선으로 물러났다. 팀쿡은 무려 15년 동안 뉴욕증시 대장주 애플을 이끌어 왔다.

2011년 가을, 세상을 뒤흔들던 ‘불세출의 마법사’ 스티브 잡스가 무대 뒤로 영원히 퇴장했을 때, 월가와 전 세계 언론은 애플의 조종(弔鐘)을 울렸다. 상상력과 광기로 지탱되던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이제 평범한 기기 제조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이 지배적이었다. 그 거대한 제국의 지휘봉을 건네받은 이는 검은 터틀넥의 카리스마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던 인물, 남부 특유의 나직한 억양과 차분한 표정을 지닌 오퍼레이션 전문가 팀 쿡(Timothy Donald Cook)이었다.

그의 출발점은 화려한 테크의 중심지가 아닌, 앨라배마주 모빌의 흙먼지 날리는 소도시 로버츠데일이었다. 묵묵히 쇠를 깎던 조선소 노동자 아버지와 약국에서 일하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년은 침묵 속에서 성실함과 규율을 배웠다. 오번 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듀크대 푸쿠아 경영대학원에서 수석급 장학생으로 MBA를 마친 그는, 시스템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거대한 흐름을 통제하는 ‘공급망(SCM)’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IBM에서 12년간 잔뼈가 굵었고, 당대 PC 천하를 호령하던 컴팩(Compaq)의 부사장으로 안락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1998년 초, 파산 직전의 난파선 같던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그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모든 동료와 전문가들이 "망해가는 회사로 가는 것은 커리어의 자살"이라며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작은 방에서 잡스를 마주한 지 불과 5분 만에, 쿡의 머릿속 셈법은 완전히 멈춰 섰다. 훗날 쿡은 *"좌뇌와 우뇌가 속삭이는 모든 합리적 계산을 뒤엎고, 오직 심장의 직관에 따라 내린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회고했다. 번뜩이는 미적 감각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What)'를 세상에 던지는 독재적 천재 잡스와, 보이지 않는 글로벌 생산망을 조율해 '어떻게 손에 쥐여줄 것인가(How)'를 완성하는 실행의 거인 쿡. 성향도 기질도 극과 극이었던 두 남자는 서로의 결핍을 완벽히 메우며 현대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콤비가 되었다.
두 사람의 유대는 단순한 동업자를 넘어 영혼의 교감에 가까웠다. 췌장암으로 스러져가던 잡스는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권을 쿡에게 위임했고, 쿡은 병상의 잡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하겠다고 병원 검사까지 마친 뒤 제안하기도 했다. 잡스는 격노하며 쿡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그의 충정 어린 헌신에 깊이 눈시울을 붉혔다. 임종을 앞둔 잡스는 마침내 후계자로 쿡을 지목하며 역사에 남을 마지막 유언을 건넸다. "월트 디즈니가 죽은 뒤 디즈니 경영진은 매일 '월트라면 어떻게 했을까'만 고민하다 길을 잃었다. 팀, 절대 내가 어떻게 했을까 묻지 마라. 그저 매 순간 옳은 일을 하라(Just do the right thing)."

CEO 왕좌에 오른 쿡은 창업주의 유령을 흉내 내지 않았다. 그는 잡스가 깔아놓은 혁신의 뼈대 위에, 자신만의 무기인 '거대한 공급망의 예술'과 '과감한 글로벌 영토 확장'을 덧입혔다. 그 정점이 바로 대담한 중국 진출과 현지화 전략이었다. 쿡은 폭스콘을 필두로 한 중국 내 초정밀 제조 생태계를 구축해 생산 단가를 혁신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폐쇄적이던 거대 중국 소비 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서구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철수하던 중국 대륙에서, 쿡 특유의 유연한 실용주의 외교와 철저한 현지 맞춤형 전략은 애플을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압도적 1위로 올려놓았다. 공급망과 거대 시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틀어쥔 이 승부수는 애플을 단순한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글로벌 초격차 제국'으로 도약시킨 결정적 발판이 되었다.

쿡의 칼날은 내실에서도 빛났다. 아이팟과 아이폰의 수개월 치 부품 재고를 단 며칠 수준으로 증발시키는 마법을 부렸고, 인텔 칩에 의존하던 맥북의 심장에 자체 설계 칩셋인 '애플 실리콘(M 시리즈)'을 이식해 기술적 독립을 선언했다. 애플 워치로 인류의 손목과 건강을 장악했고,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꿨으며, 공간 컴퓨팅 비전 프로로 시선의 지평을 확장했다. 나아가 앱스토어, 애플페이,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로 이어지는 거대한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해 하드웨어 판매 주기에 흔들리지 않는 천문학적 캐시카우를 완성했다. 취임 당시 3,500억 달러였던 기업가치는 글로벌 금융 역사상 최초로 3조 달러를 돌파하며 10배 가까이 폭발했다.

그러나 쿡을 진정한 거인으로 만든 것은 재무제표의 숫자만이 아니었다. 2014년 10월, 그는 포춘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 중 최초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당당히 밝혔다. 사생활을 극도로 아끼던 은둔형 경영자였으나, 성 정체성 때문에 고통받고 방황하는 전 세계의 어린 영혼들에게 방패가 되어주기 위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동성애자로 태어난 것은 신이 내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다(I consider being gay among the greatest gifts God has given me)."*라는 그의 고백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테러 수사를 명분으로 아이폰 백도어를 열라는 미국 FBI의 서슬 퍼런 압박에 맞서 사용자 프라이버시를 끝까지 지켜냈고, 공급망 내 노동 인권과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선언하며 애플을 단순한 영리 기업을 넘어선 시대의 윤리적 나침반으로 세웠다.

15년간 쉼 없이 몰아친 대항해 끝에, 노련한 함장은 마침내 조타수를 내려놓고 이사회 총괄 의장으로 물러섰다. 그가 제국의 새 사령탑으로 낙점한 인물은 20년 넘게 애플 하드웨어의 뼈와 살을 깎아온 엔지니어 출신 수석 부사장 존 터너스다. 공급망을 극대화해 제국을 요새화했던 '시스템의 거장'이, 다가올 AI와 차세대 디바이스 시대를 맞아 다시 '기술과 만듦새의 장인'에게 지휘봉을 넘겨준 것이다.위대한 천재의 그늘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조용한 규율과 포용력으로 사과 제국의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일궈낸 팀 쿡. 그가 남긴 15년의 궤적은 세계 기업사와 경제역사에 아름다운 경영 승계의 교과서로 기록될 것이다.
세상을 바꾼 천재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지휘봉을 넘겼을 때 팀 쿡에게 넘겼을때 전 세계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의 미래에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팀 쿡(Timothy Donald Cook)은 이들에게 숫자가 아닌 실행력과 조용한 카리스마로 답했다. 그는 애플을 단순한 IT 기기 제조업체를 넘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글로벌 초거대 테크 제국으로 올려놓았다.

팀 쿡은 1960년 11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Mobile)에서 태어났다. 그 동네 작은 소도시 로버츠데일(Robertsdale)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소 노동자였다. 어머니는 약국에서 근무하며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을 꾸렸다. 남부의 보수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쿡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침착하고 근면한 학생이었다.

1978년 로버츠데일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그는 앨라배마의 오번 대학교(Auburn University)에 진학하여 1982년 산업공학(Industrial Engineering)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공학적 사고와 프로세스 최적화에 흥미를 느낀 그는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듀크 대학교 푸쿠아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으며 상위 10% 우수 졸업생에게 주어지는 '푸쿠아 스칼러(Fuqua Scholar)' 칭호를 받았다.

사회생활 초기 쿡은 컴퓨터 제조 및 유통의 물류·공급망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IBM이 그의 첫 근무지였다. 1982년부터 북미 제조 총괄 책임자로 일하며 글로벌 공급망 및 제조 공정의 효율화를 체득했다.인텔리전트 일렉트로닉스(Intelligent Electronics)에서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재직하며 도매 및 유통 네트워크를 관리했다. 컴팩(Compaq)에도 근무했다. 1997년 당시 PC 시장 1위 기업이던 컴팩의 기업 재료 담당 부사장으로 이직했다.안정적인 탄탄대로를 걷던 1998년 초, 파산 위기에서 복귀하여 애플을 재건하던 스티브 잡스가 쿡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당시 모든 주변인들은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로의 이직을 극구 만류했다.

쿡은 잡스와 대화를 나눈 지 불과 5분 만에 자신의 직관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1998년 3월 글로벌 운영 담당 수석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 of Worldwide Operations)으로 애플에 합류했다. 훗날 쿡은 이 순간을 회고하며 *"좌뇌와 우뇌의 계산을 모두 뒤엎고 직관에 따라 내린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잡스와 쿡은 성향과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으나, 그렇기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잡스가 번뜩이는 상상력과 미적 감각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What)'를 규정하는 비전가였다면, 쿡은 복잡한 글로벌 제조 생태계를 조율하여 '어떻게 구현하고 전달할 것인가(How)'를 완성하는 실행의 대가였다.

입사 직후 쿡은 애플의 자체 제조 공장들을 과감히 폐쇄하고 아웃소싱 체제를 구축했다. 수개월 치에 달하던 재고를 단 며칠 수준으로 줄이는 공급망 혁신을 단행했다. 쿡의 공급망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폭발적인 글로벌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잡스는 췌장암 투병 중이던 2004년과 2009년, 2011년 병가를 낼 때마다 회사의 전권을 팀 쿡에게 맡겼다. 쿡은 잡스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하겠다고 제안할 정도로 깊은 인간적 신뢰를 나눴다. 2011년 사망을 앞둔 잡스는 쿡을 차기 CEO로 공식 지명하며 다음과 같은 마지막 조언을 남겼다. "내가 어떻게 했을까 묻지 말고, 오직 옳은 일을 하라(Don't ask what I would do. Just do the right thing)."

CEO 취임 이후 쿡은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로 애플의 체질을 변화시켰다. 취임 당시 약 3,500억 달러 수준이던 애플의 기업가치를 2020년대 들어 사상 최초로 3조 달러를 돌파시켰다. 애플 워치(Apple Watch), 에어팟(AirPods),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 등 잡스 사후 독자적인 제품군을 연이어 시장 표준으로 안착시켰다. 애플 뮤직, 애플 TV+, 아이클라우드, 애플 페이, 앱스토어 등 서비스 생태계를 강화하여 하드웨어 주기 변동성을 방어하는 강력한 캐시카우를 구축했다.

팀 쿡은 또 인텔 칩 의존을 탈피하고 자체 설계 칩셋으로 Mac 라인업의 성능과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쿡은 환경 보호(100%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 공급망 내 노동 인권, 사용자 개인정보 보호(Privacy)를 기업의 핵심 가치로 천명했다. FBI의 아이폰 백도어 설치 요구를 거부하며 사용자 보안을 수호한 일화는 유명하다.

2014년 10월 30일, 팀 쿡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기고한 에세이를 통해 전 세계 주요 대기업 CEO 중 최초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식 선언했다."동성애자로 태어난 것은 신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I'm proud to be gay, and I consider being gay among the greatest gifts God has given me)." 그는 사생활을 극도로 아끼는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받거나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공개 커밍아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후 쿡은 인권 신장과 다양성 포용을 적극 지지하는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애플은 15년간 CEO로 재직한 팀 쿡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총괄 의장(Executive Chairman)으로 옮겼다. 쿡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으로서 글로벌 정부 정책 입안자들과의 소통 및 장기 전략을 지원할 예정이다. 팀 쿡의 뒤를 이어 애플의 사령탑을 맡을 인물은 존 터너스이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애플 제품 디자인 팀에 입사했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2021년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아이폰, 아이패드, 에어팟, 맥북 등 애플 핵심 하드웨어 설계를 20년 넘게 총괄해 왔다. 쿡이 터너스를 새 CEO로 뽑은 것은 공급망 중심의 쿡 체제에서 다시 엔지니어링과 제품 혁신 중심의 리더십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받는다. 쿡은 터너스에 대해 "엔지니어의 두뇌와 혁신가의 영혼, 그리고 명예와 진실성으로 이끌 심장을 가진 인물"이라며 절대적인 신뢰를 표명했다. 팀 쿡은 창업주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자신만의 규율과 포용력으로 애플을 인류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철저히 준비된 승계 절차를 통해 아름다운 리더십 전환의 모범을 보였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