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재고·비축유·우회 수송이 막아온 충격…재고 감소·송유관 중단에 완충장치 약화
이미지 확대보기중국의 원유 수입 축소와 각국의 비축유 방출,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원유를 운반하던 우회 수송로가 그동안 국제유가 급등을 억제했지만 이 같은 완충장치가 동시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송유관 중단과 홍해 항로 불안, 걸프 국가들의 외교협상 무산 등이 겹치면서 세계경제가 에너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빠르게 줄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각) 분석했다.
국제유가는 최근 배럴당 110달러(약 15만2000원)에 접근했다.
◇중국 수입 축소가 유가 급등 막아
NYT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제유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원유 구매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부 관리 출신인 데이비드 골드윈은 NYT에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이 지금보다 더 높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원유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전쟁 이후 원유 비축을 확대하는 대신 기존 재고를 사용하면서 국제시장에서 원유 매입을 줄였다.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도 비축유를 방출해 국제유가 상승을 억제했다.
그 결과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80%가 향하는 아시아도 당초 우려했던 심각한 공급 부족을 대부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NYT는 이런 방식이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석유 재고는 수십 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우디 동서 송유관도 최근 드론 공격 이후 가동을 멈췄다.
◇“2027년까지 배럴당 80~100달러”
골드윈은 국제유가가 적어도 2027년까지 배럴당 80~100달러(약 11만1000~13만8000원)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상승은 연료 가격에 그치지 않고 비료와 식품, 운송비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닐 시어링 캐피털이코노믹스 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운송로의 혼란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석유 재고가 매우 낮아진 상황에서도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적으로 다시 열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ADB는 아시아 지역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3.0%에서 올해 5.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어링은 유럽과 영국, 미국의 물가상승률도 적어도 내년 중반까지 3.5~4%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높은 물가는 각국 중앙은행에 추가 금리 인상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과 가계의 차입비용이 증가하고 경제성장도 둔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이미 경기침체 경계선에 놓인 독일 같은 경제에는 추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정제 시스템도 한계…러시아 공급까지 감소
원유 부족만 문제가 아니다.
IEA는 최근 전 세계 정유 시스템이 ‘한계까지 압박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에서 정제된 석유제품 공급까지 줄어들면서 휘발유와 경유 등 제품 가격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IEA에 따르면 공격 여파로 러시아의 정제능력은 향후 18개월 동안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경유 수출 금지도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미국에서도 경유 가격 상승이 정치적 문제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높은 경유 가격을 문제 삼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정유시설을 공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골드윈은 미국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유 수출을 금지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수출 금지는 단기적으로 미국 내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정유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이게 만들어 세계 공급을 더 압박할 수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미국산 경유 의존도가 높은 중남미 국가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산유국도 충격…저소득국은 식량난 우려
에너지 수출국도 이번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주요 LNG 수출국인 카타르 경제가 올해 8.6%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 경제도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에너지 충격이 가장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큰 곳은 저소득 국가들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에너지와 비료를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수입 에너지와 비료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식량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 정전이나 생산 중단은 대부분 피했지만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훨씬 높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 관세 인상과 엘니뇨에 따른 식량 불안, 각국의 막대한 재정적자까지 동시에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는 연료 가격 상승 충격을 줄이기 위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채권시장으로 번지면서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달 30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세계 금융시장에 부담을 줄 정도로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NYT는 미국 경제가 지금까지 중동발 에너지 충격의 직접적인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지만 주요 교역국들의 비용 상승이 계속되면 결국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골드윈은 “어느 시점이 되면 모든 교역 상대국이 높은 가격에 시달리고 식품과 운송 비용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경제의 중력 법칙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