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中 덤핑 고속도로 될라"… '핑루 운하' 개통에 아세안 '기대와 불안' 교차

글로벌이코노믹

"中 덤핑 고속도로 될라"… '핑루 운하' 개통에 아세안 '기대와 불안' 교차

中 건국 이래 첫 인공 수로… 남서부 내륙서 통킹만 직통 연결해 연간 물류비 50억 위안 절감
베트남 쭝응우옌 커피 등 직수출 기대감 속… 올 8개월간 對中 무역적자 이미 2,293억 달러 달해
상하이·광저우 우회 없이 中 공산품 동남아 직격… 전문가 "일방통행 막고 내륙 소비시장 뚫어야"
중국 남부 광시 장족 자치구의 핑루 운하가 9월 16일 공식적으로 개항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남부 광시 장족 자치구의 핑루 운하가 9월 16일 공식적으로 개항했다. 사진=로이터

중국 정부가 727억 위안(약 14조 4,000억 원)을 투입해 1949년 신중국 건국 이래 최초로 건설한 대규모 인공 수로 '핑루(平陸) 운하'가 이달 정식 개통되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 사이에 거대한 경제적 기대감과 함께 심각한 무역 불균형 심화에 대한 공포가 동시에 번지고 있다.

총연장 134.2㎞에 달하는 핑루 운하는 바다가 없는 중국 남서부 내륙(충칭·쓰촨·구이저우)의 내륙 수로를 광시좡족자치구 주도인 난닝(南寧)을 거쳐 남중국해 통킹만(베이부만) 친저우(欽州)항까지 직통으로 잇는 초대형 물류 프로젝트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기업들은 이 운하를 통해 농산물과 원자재를 중국 서부 내륙 거대 소비시장으로 환적 없이 직수출할 수 있는 지름길이 열렸다며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기록적인 무역적자를 기록 중인 대중국 무역 구조 속에서, 이 운하가 중국산 과잉 공급 기계와 저가 공산품이 동남아 전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일방통행 덤핑 고속도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9월 28일(현지시각) 홍콩 영자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최근 난닝에서 열린 연례 중국-아세안 엑스포(CAEXPO)에 참가한 동남아 정부 관료와 수출 기업인들은 핑루 운하 개통에 따른 통상 득실을 면밀히 저울질하고 있다.

베트남 커피선 난닝까지 논스톱… "5,000톤급 선박 통항, 연 50억 위안 절감"


운하 개통으로 가장 즉각적인 물류 혁신 혜택을 기대하는 곳은 동남아 농식품 및 소비재 기업들이다.

중국 전역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급격히 확장 중인 베트남 최대 커피 브랜드 '쭝응우옌 레전드(Trung Nguyen Legend)'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베트남 농장에서 수확한 생두와 분쇄 원두는 육로 트럭이나 홍콩·광저우 등을 경유하는 복잡한 연안 해운을 거쳐야 해 잦은 운송 지연과 비용 상승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핑루 운하 개통으로 베트남 남부 메콩델타의 중심 항구 칸토(Can Tho)에서 출발한 대형 해상 화물 바지선이 바다를 거쳐 환적(작은 내륙선으로 옮겨 싣기) 없이 중국 난닝 물류 허브까지 직행할 수 있게 됐다.

황웨이창(Huang Weiqiang) 쭝응우옌 난닝 지역 총괄매니저는 "대형 해상 바지선이 화물을 옮겨 실을 필요 없이 중국 내륙 심장부까지 직진할 수 있게 됐다"며 "물류 병목 해소가 중국 내 매출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에 따르면, 2022년 8월 착공해 조기 완공된 핑루 운하는 최대 5,000톤급 선박이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국 내륙 화물이 기존처럼 동부 해안의 양쯔강 하구(상하이)나 주장 삼각주(광저우)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남쪽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됨에 따라, 운송 거리가 최소 560㎞ 이상 단축되고 연간 50억 위안(약 1조 원) 이상의 물류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된다.

對中 적자 이미 2,293억 달러… "중국산 저가 부품 유입 가속화" 불안


그러나 경제적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짙은 통상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6년 1~8월 누적 기준 아세안의 대중국 수입액은 5,46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5.8% 폭증했다.

반면 아세안의 대중국 수출액은 3,167억 달러에 그쳐, 불과 8개월 만에 2,293억 달러(약 307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대중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아세안 수출업계는 핑루 운하가 개통되면서 중국 남서부의 거대 중공업·제조업 기지(충칭 자동차, 쓰촨 화학·전자 등)에서 생산된 저가 공산품과 부품들이 더욱 저렴하고 빠르게 동남아 항구로 쏟아져 들어올 것을 경계하고 있다.

태국 투자청(BOI) 광저우 사무소 관계자는 "운하는 양방향 무역 통로가 되어야 하며, 베이징이 공언한 수입 확대 약속이 실제로 지켜져야 한다"며 "태국산 두리안, 쌀, 전자부품이 중국 서부로 들어가는 길도 넓어져야 하지만, 반대로 태국 내 중국계 제조사들이 중국 본토로부터 기계와 저가 부품을 들여오는 통로만 넓혀 무역 비대칭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날의 검"… 상하이·광저우 넘어 '3억 서부 내륙' 뚫어야 산다


통상 전문가들은 핑루 운하가 동남아 경제에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아세안이 단순 소비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선제적 통상 전략을 주문했다.

싱가포르 아태혁신협력센터(APICC)의 앨리스 찬(Alice Chan) 전무이사는 "아세안 전체가 핑루 운하의 파급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 협정을 지렛대 삼아 운하의 편익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쏠리지 않도록 제도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말레이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의 파르 킴 벵(Phar Kim Beng)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광시와 중국 남서부의 거대한 물자가 통킹만으로 진입하는 순간 아세안 시장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며, 핑루는 중국의 새로운 남부 경제 동맥이 될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아세안은 이 회랑이 중국산 밀어내기 수출의 일방통행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진정한 돌파구는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3억 인구 규모의 중국 서부 내륙 시장에 아세안 기업들이 직접 진출하는 데 있으며, 이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기업들은 상하이와 선전 중심의 해안가 시각에서 벗어나 거대한 서부 경제 공간을 공략하는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하의 출구에 위치한 14년 역사의 중국-말레이시아 친저우 산업단지 등 물류 거점들이 외국계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핑루 운하의 본격 가동은 중국 남서부와 동남아시아의 경제적 통합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밀착시키는 동시에 양측 간의 무역적자 불균형을 둘러싼 통상 마찰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