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부족한 순간 피크수요 보완…에너베뉴, 30년 수명 니켈수소 배터리로 시장 공략
이미지 확대보기전기자동차 보급 확대의 핵심 인프라인 급속충전소에서 자동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못지않게 충전소 옆에 고정해 사용하는 배터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여러 대의 전기차가 동시에 급속충전을 시작하면 전력망에서 순간적으로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지만 기존 전력망 연결 용량만으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충전소에 별도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 이용자가 적을 때 전기를 저장하고 차량이 몰릴 때 방전하면 대규모 전력망 증설 부담을 줄이면서 순간적인 충전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포브스는 전기차 급속충전망을 확대하려면 차량에 탑재되는 배터리뿐 아니라 충전소 주변의 고정형 배터리 기술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각) 분석했다.
미국에서 설립돼 중국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배터리 스타트업 에너베뉴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너베뉴는 우주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니켈수소 배터리 기술을 지상용 에너지저장장치에 적용하고 있다.
◇급속충전기 늘려도 전력망 부족하면 무용지물
고출력 급속충전기를 설치한다고 해서 곧바로 여러 차량을 동시에 최고 속도로 충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전기의 최대 출력에 맞춰 대형 변압기와 전력 케이블을 설치해야 하고 충전소 외부의 전력망 연결 용량까지 늘려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전력망 증설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포브스는 300㎾급 급속충전기 8대를 갖춘 충전소를 예로 들었다.
8대가 동시에 최대 출력으로 가동되면 순간 전력수요는 2.4㎿에 달한다.
그러나 충전소가 전력망에서 끌어올 수 있는 전력이 600㎾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1.8㎿를 다른 곳에서 공급해야 한다.
이 부족분을 30분 동안 보완하려면 손실을 제외하더라도 약 900㎾h의 저장용량이 필요하다.
고정형 배터리는 차량이 적은 시간에 천천히 충전한 뒤 여러 차량이 몰릴 때 저장된 전력을 빠르게 내보내 이런 차이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전력망 자체를 항상 최대 충전수요에 맞춰 구축하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발생하는 피크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고정형 배터리가 전력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차량이 하루 종일 끊임없이 충전되는 충전소라면 전력망에서 들어오는 평균 공급량도 결국 전체 충전수요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배터리에 저장한 전력을 모두 사용한 뒤에도 차량이 계속 몰리면 전력망 용량이 부족한 만큼 충전속도를 낮춰야 한다.
◇중국 전기버스 충전소에서 실제 운용
이 같은 방식은 이미 중국 전기버스 충전소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 장쑤성 창저우 진탄의 전기버스 충전시설은 태양광 발전과 에너베뉴의 고정형 배터리를 결합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50개의 배터리 셀로 구성된 150㎾h 규모 에너지랙이 설치됐다.
운영사 타운가스스마트에너지에 따르면 이 설비는 하이거 전기버스 운행을 지원하기 위해 하루에 2~4시간씩 충전과 방전을 반복한다.
규모 자체는 대형 충전시설과 비교하면 크지 않다.
포브스는 영국 브레인트리에 있는 그리드서브 전기차 충전시설에는 6㎿h 규모의 배터리가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 사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서 ‘하루 동안 필요한 전력량’과 ‘특정 순간에 필요한 최대 전력’을 별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주에서 쓰던 니켈수소 배터리 지상으로
에너베뉴가 개발하는 수계 금속 셀(AMC)의 기반 기술은 니켈수소 배터리다.
니켈수소 배터리는 우주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용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관련 기술은 1970년대부터 개발됐으며 1980년대까지 통신위성에 사용됐다.
1990년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에도 니켈수소 배터리가 탑재됐고 최초 배터리는 교체될 때까지 19년 동안 작동했다.
다만 우주용 배터리를 그대로 지상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비용이 문제였다.
기존 기술에는 값비싼 백금 촉매가 사용됐다.
에너베뉴는 스탠퍼드대 이추이 교수 연구실에서 나온 기술을 토대로 고가 귀금속 사용을 줄이고 니켈 기반 합금을 활용해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AMC 한 개의 저장용량은 3㎾h다. 긴 강철 압력용기 내부에 수계 전해질과 니켈·수소를 이용한 가역적인 전기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저장한다.
수소는 밀폐된 셀 안에 머물기 때문에 외부에서 수소 연료를 계속 공급해야 하는 연료전지와는 다르다.
◇30년·3만회 목표…아직 장기 실증은 숙제
에너베뉴는 AMC의 설계수명을 30년, 충·방전 가능 횟수를 3만회로 제시하고 있다.
충전과 방전을 자주 반복하는 급속충전소에서는 배터리를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다.
안전성도 주요 판매 포인트다.
회사는 물을 기반으로 한 불연성 전해질을 사용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열폭주 화재 위험을 없앴다고 주장한다.
운용 가능 온도도 영하 40도에서 영상 60도까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장수명 주장이 실제 상업 현장에서 30년간 입증된 것은 아니다.
에너베뉴는 2020년에 설립됐기 때문에 현재 판매되는 제품이 실제로 30년 동안 사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회사에 따르면 4세대 셀은 최대 1만회의 시험 주기를 거쳤으며 이를 토대로 다양한 운용환경에서 장기 성능을 모델링했다.
포브스는 우주산업에서 니켈수소 배터리가 장기간 사용된 전력이 기술적 가능성을 뒷받침하지만 현재 상업용 제품의 장기간 현장 운용 자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리튬인산철보다 비싸고 공간도 더 필요
에너베뉴 배터리가 모든 고정형 저장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헤닝 라트 에너베뉴 최고경영자(CEO)는 일반적인 4시간용 배터리 저장장치를 구축한다면 현재로서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인정했다.
에너베뉴의 AMC는 생산규모가 아직 작아 초기 투자비용이 LFP보다 높고 같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더 넓은 공간도 필요하다.
충·방전 과정에서의 셀 단위 왕복효율도 약 87%로, 최대 95% 수준에 이를 수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낮다.
에너베뉴가 내세우는 것은 초기 구매가격이 아니라 장기간 사용하는 동안 들어가는 전체 비용이다.
회사는 긴 수명과 많은 충·방전 횟수, 낮은 유지관리 부담을 통해 균등화 저장비용(LCOS)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배터리를 싸게 사는 것보다 수십 년 동안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얼마나 많은 전력을 저장·방출할 수 있느냐가 고정형 배터리의 경제성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중국 생산 확대…데이터센터까지 겨냥
에너베뉴는 지난 24일 중국 창저우에 대량생산라인을 가동했다.
초기 연간 생산능력은 250㎿h이며 2027년에는 1GWh, 2028년에는 수GWh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제품도 통신시설과 분산형 비상전원용 30㎾h 시스템에서 실내용 108㎾h 시스템, 150㎾h 에너지랙, 컨테이너형 저장장치까지 확대하고 있다.
중국 북부 유전용으로 11㎿h 규모의 공급계약도 확보했다.
회사는 현재 전력회사와 극한환경 시설, 상업·산업용 건물, 데이터센터 등을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비상전력뿐 아니라 AI 연산량 변동에 따라 순간적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고정형 저장장치의 또 다른 잠재시장으로 꼽힌다.
다만 고출력 데이터센터용으로 연구 중인 차세대 셀은 아직 초기 개발단계이며 상용제품은 아니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포브스는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급속충전 수요도 커지지만 모든 충전소의 전력망을 최대 순간수요에 맞춰 확장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시대의 배터리 경쟁이 차량 안에 들어가는 배터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급속충전소 옆에서 전력망의 순간 부하를 흡수하는 고정형 배터리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