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뱅가드 조사 결과 13억 원 이하 은퇴 자산가 40% 의무 인출 전까지 원금 동결
- JP모건, 적립 자산을 월급처럼 쪼개 받는 보장 소득형 금융 상품 공급 확대
- 400조 원 돌파한 한국 퇴직연금도 적립 치중 벗어나 유연 인출 모델 구축 시급
- JP모건, 적립 자산을 월급처럼 쪼개 받는 보장 소득형 금융 상품 공급 확대
- 400조 원 돌파한 한국 퇴직연금도 적립 치중 벗어나 유연 인출 모델 구축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고령층 은퇴 자산가들이 금융시장 하락 우려와 의료비 부담 탓에 100만 달러(약 13억 4900만 원) 이하 계좌 자산의 40%를 전혀 인출하지 않는 소비 동결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자산 감소에 따르는 불안감으로 은퇴 계좌 사용을 꺼리는 고령층이 늘자, 미국 대형 금융사들은 유연 인출형 금융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평생 모은 자산을 쓰지 못하는 미국 가계의 지출 절벽 문제는 사적연금 중심의 인출 모델 설계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 금융시장에도 구조적 개선 과제를 던진다.
30년 저축 습관이 부른 소비 동결
2026년 10월 3일(현지시각) 배런스 보도에 따르면,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제도의 보편화로 근로자가 연금 자산을 직접 굴리게 되면서 원금 손실 불안이 은퇴 후 소비 억제로 연결되고 있다. 평생 자산을 모으는 훈련을 거친 은퇴자들이 은퇴 뒤 지출 주체로 전환하지 못하는 구조다. 금융시장 급락 공포와 장기 간병비 부담, 오랜 세월 굳어진 절약 습관이 복합 작용해 지갑을 닫게 만든다.
시카고의 밥 라들로프스키(75)와 소피 라들로프스키(73) 부부는 사회보장연금과 기업연금으로 매달 약 8000달러(약 1079만 원)를 받으면서도 100만 달러(약 13억 4900만 원)가 넘는 은퇴 자산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밥 라들로프스키는 "죽기 전에 돈을 다 쓰겠다는 경쟁은 맞지 않는다"며 "남은 자산은 자녀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10명 중 4명 원금 묶어둬 월가 유인책 가동
수백억 원대 자산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 집단에서도 소비를 꺼리는 태도는 뚜렷하게 관측된다. 미네소타와 플로리다를 오가는 존 슐타이스(79)는 은퇴 후 자산이 세 배로 불어나 약 3000만 달러(약 404억 7000만 원)를 보유했으나, 연간 지출은 40만~50만 달러(약 5억 3960만~6억 7450만 원)에 그친다.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가 지출보다 빠르지만 생활 수준을 과도하게 끌어올릴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일반 은퇴자는 자산을 묶어두는 쪽에 가깝다. 자산운용사 뱅가드 투자전략그룹의 켈리 한 은퇴 연구 책임자가 100만 달러(약 13억 4900만 원) 이하 은퇴자를 조사한 결과 40%는 세법상 정해진 의무 최소 인출 시점까지 퇴직 계좌에서 한 푼도 꺼내지 않았다.
자금 잠김이 장기화하자 제이피모건은 적립 자산 일부를 정기 급여로 바꾸는 '스마트리타이어먼트 평생소득' 상품을 내놨다. 목돈을 영구히 묶어두는 기존 종신보험형 연금과 달리 가입자가 원하면 남은 적립금을 다른 투자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거나 인출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였다. 마이클 콘래스 제이피모건 자산운용 최고 은퇴 전략가는 "쓰는 단계가 되자 지출에 대한 불안이 작동한다"며 "보장 소득형 상품에 근로자를 자동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절약 성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재무 어드바이저 수전 엘서는 고객들이 돈을 쓰는 즐거움보다 보유 자체에 오는 심리 안정을 중시한다고 평가했다.
한국 퇴직연금 시장 인출기 설계 비상
미국 금융시장에서 확인된 은퇴 자산 동결은 한국 퇴직연금 사업자들에게 인출기 맞춤 설루션 구축이라는 당면 과제를 제시한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 퇴직연금 적립금은 400조 원을 돌파했으나 여전히 8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려 있다. 가입자가 은퇴한 뒤 자산을 계획적으로 분할 인출하는 상품 체계가 미흡해 퇴직 급여를 일시금으로 수령하거나 단순 예금 형태로 묶어두는 비율이 높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규모 은퇴 국면에서 체계적인 인출 모델이 부재할 경우 실질 자산 가치 하락과 노후 소비 절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기관들의 분석이 이어진다. 미국 금융권이 원금 손실 공포를 완화하면서 정기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하이브리드 연금 상품을 공급하듯, 한국 시장에서도 월지급식 타깃데이트펀드나 분할 인출 신탁 같은 전문 설루션 공급이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다.
은퇴 자산의 안정적인 소비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금융투자업계의 상품 다변화와 함께 연금 수령 시 세제 혜택을 정교화하는 정부 차원의 제도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 원금 훼손 불안을 낮추는 연금 상품이 시장에 안착하는지 여부가 향후 퇴직연금 시장의 구조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