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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팍스 실리카냐, 中 WAICO냐"… 동남아, 미·중 AI 전쟁에 '선택 강요'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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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팍스 실리카냐, 中 WAICO냐"… 동남아, 미·중 AI 전쟁에 '선택 강요' 직면

美 '팍스 실리카(20개국)' vs 中 'WAICO(30개국)'… 아세안 내 동맹 쪼개기 가속
싱가포르·필리핀은 美 진영, 말레이·인니·베트남은 中 진영 합류… 양자택일 압박 고조
데이터센터·해저케이블 안보 자산화… "공급망 배타적 분열 시 기업 활동 치명타"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AI 블록을 주도하며 국가들의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AI 블록을 주도하며 국가들의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과 중국이 자국 중심의 인공지능(AI) 표준과 공급망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세력 포섭전'을 벌이면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이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최전선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양측 모두와 경제적·안보적 협력을 유지하려던 동남아 국가들이 어느 한쪽 진영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역내 안보 질서는 물론 데이터센터, 반도체 부품, 해저 케이블 등 핵심 비즈니스 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균열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월 18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 싱가포르발 심층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자국 주도의 다자간 AI 협력 기구를 출범시키고 동남아 주요국들을 포섭하기 위한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2025년 12월 AI, 반도체 및 핵심 광물 공급망 안보를 결합한 '팍스 실리카(Pax Silica)' 이니셔티브를 공식 출범시켰으며, 일본과 영국 등 서방 동맹을 포함한 20여 개 경제국을 결집시켰다.
이에 맞서 중국은 올해 7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를 계기로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를 창설한 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중심으로 회원국을 30개국 이상으로 빠르게 확장했다.

아세안 쪼개진 선택… 싱가포르·필리핀은 '美', 말레이·인니·베트남은 '中'


동남아 주요국들의 소속은 이미 양분된 양상이다. 아세안 내 친미 성향이 강한 싱가포르와 필리핀은 미국 주도의 '팍스 실리카'에 합류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는 중국 주도의 'WAICO' 창립 회원국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최근 베트남까지 중국 진영에 전격 가세했다.

두 연합체는 지향점부터 판이하다. 미국의 팍스 실리카는 첨단 칩 제조 장비 통제, 고성능 AI 가속기 및 전력 인프라,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배타적 공급망 안정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중국의 WAICO는 AI 알고리즘 거버넌스와 국제 표준 제정을 앞세워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신흥 개발도상국(글로벌 사우스)의 규범 주도권을 장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워싱턴과 베이징의 압박 수위가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미국 행정부 내부 문건 초안을 인용해, 워싱턴이 동남아 국가들을 향해 AI 분야에서 확실한 편을 정하도록 강요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발 선택 압박 극심"… 싱가포르, 中 가입 초청에 '국익 저울질'


미국 진영에 먼저 발을 들인 싱가포르는 거대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9월 9일 중국으로부터 WAICO 가입 공식 초청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조세핀 테오 싱가포르 디지털개발정보부 장관은 의회 질의에서 "특정 이니셔티브 참여 여부는 실질적인 공통 이익과 기존 협력 체계를 어떻게 보완하는지, 그리고 싱가포르의 국가적 실익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엄격히 결정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유라시아 그룹 GZERO 서밋 아시아'에서도 미·중 기술 분할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찬헝치 전 주미 싱가포르 대사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대부분의 선택 압박은 미국 측에서 강하게 들어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많은 국가들이 미국이나 중국의 독점적 공간에 갇히지 않고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3의 공간(Third Space)'을 갈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마리 팡에스투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 역시 "최근 팍스 실리카 측에서 '우리에게 가입하면 다른 연합(WAICO)에는 절대 가입할 수 없다'는 식의 배타적 기류가 감지된다"며 "신흥국들이 이러한 제로섬 선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호운용성 막히면 'AI 철의 장막'… 현지 진출 기업들 '발동동'


전문가들은 AI 모델,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대륙 간 해저 통신 케이블이 단순한 상업적 인프라를 넘어 국가 주권과 군사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격상된 점을 지적한다.

현재 양대 블록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국가는 카자흐스탄이 유일하다. 아세안 역내 국가 간 분열이 고착화될 경우, 회원국들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아세안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 기반의 역내 통합 AI 규범 수립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리밍장 싱가포르 S. 라자라트남 국제학대학원(RSIS) 부교수는 닛케이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두 블록이 이론적으로는 공존할 수 있지만, 지정학적 대립이 심화되면서 기술 라이선스, 벤더 조달, 국경 간 데이터 이동, 상호 투자 제한을 요구하는 '상호 배타적 생태계'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의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했다. 동남아에 반도체 및 정밀 부품 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인 한 일본 대기업 고위 임원은 "현재 미국계 고객사와 중국계 고객사 양쪽 모두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며 "만약 AI 공급망이 완전히 단절되어 거래처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면 생산 라인을 둘로 쪼개야 할지, 사업을 축소해야 할지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