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임기 9개월 앞당겨 종료…프랑스 대선 앞두고 후임 선출 착수
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이란발 에너지 충격 대응…통화정책 연속성 주목
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이란발 에너지 충격 대응…통화정책 연속성 주목
이미지 확대보기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내년 2월 조기 퇴임한다.
당초 내년 10월까지인 8년 임기를 약 9개월 앞당겨 마무리하기로 하면서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이 차기 중앙은행 수장 선출에 나서게 됐다.
라가르드 총재는 29일(이하 현지시각) ECB 통화정책이사회와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의장에게 내년 2월 7일 사임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라가르드 총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두 차례의 에너지 충격 등 잇따른 경제위기를 겪은 끝에 임기를 조기 종료하기로 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2019년 11월 취임했으며 ECB 역사상 첫 여성 총재이자 경제학자 출신이 아닌 첫 총재다.
ECB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21개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으로 금리 조정과 물가 안정, 유럽 주요 은행에 대한 감독을 담당한다.
◇프랑스 대선 앞두고 후임 선출…마크롱 영향력 주목
라가르드 총재의 조기 퇴임은 유럽의 민감한 정치 일정과 맞물려 있다.
내년 봄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승리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차기 ECB 총재를 선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ECB 총재는 유럽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와 선출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
라가르드 총재가 내년 2월 물러나면 마크롱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후임 총재 인선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최종 인선이 유럽 주요국 사이의 정치적 타협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정 국가가 차기 ECB 총재 선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의 조기 퇴임 가능성은 지난해부터 제기됐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가 라가르드 총재가 다보스포럼을 개최하는 WEF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방안을 고려했다고 밝히면서 거취를 둘러싼 관측이 확산했다.
라가르드 총재도 올해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ECB 총재직을 맡을 당시 임기가 8년이 아니라 5년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혀 조기 퇴임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 공식 발표로 조기 퇴임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차기 총재가 누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코스타 의장은 라가르드 총재의 퇴임 결정에 따라 후임 선임 절차를 즉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 거쳐 이란발 물가 충격까지
라가르드 총재의 재임 기간은 유럽 경제가 잇따른 위기를 겪은 시기와 겹친다.
그는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의 뒤를 이어 2019년 11월 ECB를 이끌기 시작했다.
취임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하면서 유럽 경제는 급격한 침체 위험에 직면했다.
ECB는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유럽에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10%를 넘어섰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 과정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하고 급격한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연속적인 금리 인상을 주도했다.
이후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면서 ECB는 2024년 중반부터 금리 인하에 나섰다.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말 ECB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돌아왔다.
NYT는 라가르드 총재가 취임 초기 의사소통 방식과 관련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잇따른 경제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에 다시 금리 인상
라가르드 총재는 올해 초만 해도 ECB의 통화정책 여건이 안정적인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 가까워졌고 금리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에너지 가격이 다시 상승하고 물가 압력이 커지자 ECB는 금리 인상에 나섰다.
NYT는 ECB가 이번 이란 전쟁에 따른 물가 충격에 대응해 금리를 올린 첫 주요 중앙은행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라가르드 총재는 퇴임을 앞두고 다시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 사이에서 어려운 정책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ECB의 통화정책이사회는 집행이사회 구성원과 유로존 21개국 중앙은행 총재 등 모두 27명으로 구성된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라가르드 총재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협의 중심의 방식으로 정책 결정을 이끌어 왔다고 설명했다.
차기 총재는 이같은 정책 결정 체계를 이어받아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가 압력에 대응해야 한다.
◇기후변화·AI까지 중앙은행 역할 확대
라가르드 총재는 기존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관리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ECB의 주요 정책 과제로 다뤘다.
이같은 접근은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유럽 정부들이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에 신속히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회원국 사이의 경제적 통합을 강화하고 유럽 시장의 규모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유럽 경제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과제로 지목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8월 유럽이 첫 번째 디지털 혁명에서 상당 부분 뒤처졌다며 AI를 중심으로 한 두 번째 디지털 혁명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프랑스 재무부 장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했으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역사상 첫 여성 총재로 8년 동안 재직했다.
프랑스 정부에 합류하기 전에는 국제 법률회사 베이커맥켄지에서 일했고 1999년 이 회사의 첫 여성 대표가 됐다.
여성의 진출이 제한적이었던 여러 분야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이력을 갖고 있으며 잇따른 경제위기를 겪은 자신의 경력을 두고 스스로를 '위기의 여인'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ECB 지도부 연쇄 교체…차기 통화정책 방향 변수
라가르드 총재의 조기 퇴임은 ECB 지도부의 대규모 인사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ECB에서는 올해 새로운 부총재가 취임했다.
내년에는 필립 레인 수석이코노미스트를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된 집행이사회에서 추가로 2명이 물러날 예정이다.
라가르드 총재까지 교체되면서 ECB의 핵심 정책 결정 인력이 상당 부분 바뀌게 되는 것이다.
NYT는 이같은 지도부 교체가 유럽 경제의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후임은 유로존의 물가 안정뿐 아니라 에너지 가격 변동과 경제성장 둔화, 유럽 경제의 경쟁력 강화 등 여러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된다.
특히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후임 총재 인선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라가르드 총재의 조기 퇴임 결정으로 ECB는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동시에 이란 전쟁으로 다시 높아진 물가 압력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