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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뿌리, '게임 영상 혐오 표현' 논란 끝에 뿌리째 뽑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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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뿌리, '게임 영상 혐오 표현' 논란 끝에 뿌리째 뽑혔나

공식 사과문 소셜 미디어 게재 하루 만에 공식 사이트 폐쇄
손해배상 소송전 가능성도…"승패 가리기 쉽지 않을 것"

스튜디오 뿌리 로고. 사진=스튜디오 뿌리 페이스북이미지 확대보기
스튜디오 뿌리 로고. 사진=스튜디오 뿌리 페이스북
11월 말 국내 게임업계를 '혐오 표현' 논란으로 달궜던 스튜디오 뿌리의 거취에 게이머들의 이목이 쏠린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가 폐쇄된 가운데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 등 유수의 업체들과 계약 문제로 법정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튜디오 뿌리의 공식 홈페이지는 27일 오후 기준 '404 - 파일 또는 디렉터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표시가 뜨며 접속이 불가능하다. 26일 오후 4시 경 "불쾌감을 느끼게 할 콘텐츠들로 인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한 후 하루만의 일이다.
뿌리는 2015년 설립된 이래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게임즈, 네오위즈, 님블뉴런, 스튜디오비사이드 등 다양한 국내 게임사들의 파트너로서 애니메이션형 게임 홍보 영상을 전문 제작해오던 업체다. 그러나 그간 공급해오던 영상에 남성혐오적 표현 '메갈손'을 삽입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의혹에 앞서 언급한 원청 게임사들은 일요일인 26일 새벽부터 줄줄이 사과문을 올리고 논란이 일어난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비공개 조치했다. 뿌리의 홈페이지는 당일 '트래픽 초과', 즉 접속량 과다로 인해 마비됐다.
뿌리 측 또한 26일 오후 4시 경 공식 X(트위터)를 통해 뒤늦게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해당 사과문에서 '문제가 되는 손동작은 의도하고 넣지 않았으며 이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애매한 해명이 포함돼 논란에 불을 지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공식 홈페이지가 폐쇄됐다. 기업 정보 플랫폼 잡데이터(Job Data)에는 스튜디오 뿌리 직원 48명 전원이 최근 퇴사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회사가 공중분해되고 경영진이 잠적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스튜디오 뿌리의 현황을 나타낸 차트. 최근 직원 전원이 퇴사한 것으로 표시된다. 사진=잡데이터(Job Data)이미지 확대보기
스튜디오 뿌리의 현황을 나타낸 차트. 최근 직원 전원이 퇴사한 것으로 표시된다. 사진=잡데이터(Job Data)

스튜디오 뿌리의 혐오 표현 논란을 게임업계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기업의 게임 속 캐릭터들이 본사 의도와 달리 '혐오 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손짓을 함으로서 게임 IP의 브랜드 가치가 실추된 것은 물론, 관련 논란에 대한 게이머들의 해명 요구도 이어지고 있기 떄문이다.

한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는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넥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넥슨의 향후 행보가 이번 사건의 향방, 나아가 영상 제작 파트너사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튜디오 뿌리 '혐오 표현' 논란의 시발점은 넥슨의 대표작 '메이플스토리' 업데이트 예고 영상이었다. 이 게임은 물론 '던전 앤 파이터'와 '블루 아카이브' 등 다른 대표 IP들의 총괄 프로듀서(PD) 명의의 사과문이 발표되고 영상 비공개 조치 등이 취해졌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총괄 PD는 26일 긴급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문화에 반대한다", "혐오 표현이 게임 문화를 유린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적극적 조치를 취할 것을 시사했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성 단체들은 이에 대해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 '사상검증'이라며 28일 오전 경기도 판교 넥슨 코리아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에 나설 전망이다.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혐오 표현을 걸러낸 것을 두고 일각에서 '사상 검증'이라며 게임사들의 잘못이라 꼬집는데, 게임사는 검증이 아니라 당연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남성은 물론 여성을 혐오한 표현이나 특정 지역, 인종, 종교 등을 혐오한 표현도 모두 걸러내고 후속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스튜디오 뿌리가 공개한 공식 사과문. 사진=스튜디오 뿌리 X(트위터)이미지 확대보기
스튜디오 뿌리가 공개한 공식 사과문. 사진=스튜디오 뿌리 X(트위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애니메이션제작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을 체결한 원사업자나 수급사업자가 위반을 통해 상대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때문에 넥슨을 비롯한 게임사들이 뿌리와 관계자들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며 민형사상 소송전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관해 익명을 요구한 현직 변호사에게 질의하자 "표준계약서 기준으로만 작성했다면 특정 기간 동안 매출 자료를 공개하고 실질적 손실을 입혔는지 입증할 필요가 있어 실제 승소로 나오는 것은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라며 "다만 외주 계약서에 '계약 위반시 일정 액수를 배상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면 보다 쉽게 배상을 받을 수는 있다"고 답변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손해배상 예정 액을 정했다면 어렵지 않게 배상을 받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았다면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도급 전문 업체일 경우 계약서에 따른 계약해지만으로 당장의 매출과 현금 흐름에 있어 큰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보인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게임사 직원은 "게임사 입장에서 스튜디오 뿌리의 입장문과 지금까지의 행보는 면피, 책임회피로 보일 수밖에 없고 이는 신뢰, 신용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파트너 계약 전문 기업으로선 이미 치명상을 입은 셈"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대형 게임사는 물론 중소 게임사 중에도 이번 계약으로 인해 피해를 본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크고 작은 기업들과의 계약 상 잡음으로 당장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회사가 향후 국내 게임업계에서 다른 계약처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