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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철강기업 생존 키워드 '탄소 중립'…기술혁신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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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철강기업 생존 키워드 '탄소 중립'…기술혁신 총력전

영국 리버티스틸, 전기로 메이커 잇단 인수…국내 업계, 고철 사용 확대

전기로 메이커를 속속 인수 합병하며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는 영국 리버티스틸. 사진=리버티 스틸이미지 확대보기
전기로 메이커를 속속 인수 합병하며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는 영국 리버티스틸. 사진=리버티 스틸
국내 철강 산업의 지형이 많이 달라졌다. IMF 시기에는 한보철강, 기아특수강, 삼미특수강, 강원산업 등 굵직한 철강기업들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내렸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됐다.

냉연과 강관제품을 생산했던 현대하이스코는 현대제철로 흡수됐다. 국내 최초로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던 유니온스틸은 동국제강에 합병됐다. 동부제철은 이름도 생소한 KG그룹으로 인수됐다. 냉연3사가 모조리 간판을 내리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봉형강 기업 두 곳의 경영권이 바뀌었다. 한국특강은 펀딩회사에 매각됐고, YK스틸은 대한제강으로 넘어갔다. 두 기업 모두 설비투자를 등한시했고 새로운 제품 개발에 미적거렸다. 물론 오랫동안 철강 경기가 하락세여서 경영 자금의 회전이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더 이상 비전을 찾을 수 없었다는 공통점을 드러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경영권이 바뀐 직후에 철강 경기가 크게 회복되었고, 경영 실적은 역대급으로 나타났다. 경영권을 인수한 오너들은 선물처럼 최대 이익을 거머쥐었다. 임직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반면에 경영권을 넘긴 이들은 “조금만 견뎠더라면”이란 탄식을 토했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는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세계를 제패했던 철강기업들의 부침의 역사를 소환해 보면 기술 혁신에 우물쭈물한 기업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에필로그(epilogue)를 읽게 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강기업 ‘르 크뢰조 제철소(Creuzot)’는 흑역사를 갖고 있다. 르 크뢰조제철소는 ‘이냐스 벵델’이 설립했다. 영국에서 코크스 제철법을 들여와 고생 끝에 영국과의 기술격차를 극복하고 ‘슈네데르 제철소’로 성장했다.

슈네데르는 프랑스산 제1호 증기기관을 제조했고, ‘슈네데르 대포(砲)’를 생산하면서 진가를 드높였다. 명성은 거기까지였다.

슈네데르가 자만에 빠져 멈칫하는 순간 ‘유지노’와 통합됐고, ‘아베드’(룩셈부르크)와 ‘아세달리아’(스페인)와 합병하여 ‘아르셀로’로 재탄생했다. 지금은 ‘아르셀로 미탈’이라는 다섯 번째 이름을 달고 있다.
이 기업의 현실적인 과제는 탄소 중립을 위해 전기로 가동 체제로 바꾸는 일이다. 엄청난 투자비용을 들여야 생존할 수 있다. 결국 기술혁신을 해야 생존한다는 말이다.

지금 프랑스의 철강 기업들은 특수강 제조메이커 몇 개 만 남았다. 대부분 다국적기업으로 전락했다. 철옹성 같았던 철강기업들이 기술개발을 등한시했을 때 몰락의 길로 내몰렸다는 사실은 철강역사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역사는 장난꾸러기 같이 짓궂다. 기후 중립 시대가 되면서 전 세계적인 해결과제가 등장하자 유럽의 철강기업들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지개 모습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과감하다 못해 공격적이다. 영국 리버티스틸이 대표적이다. 리버티스틸은 전기로 메이커를 속속 인수 합병했다. 인수 공장들은 체코, 루마니아, 이탈리아, 마케도니아, 룩셈부르크, 벨기에 6개국의 7개 공장이다. 사들이는 이유는 탄소발자국을 확실하게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유럽에서 발생하는 양질의 고철을 동남아 등으로 수출하는 대신 직접 철강재 생산을 위한 원료로 사용하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다. 철광석을 고철로 대신하겠다는 것은 고로설비를 전기로 체제로 바꾼다는 혁신이다.

유럽 내의 고철을 자급한다면 물류 이동을 극소화 시켜 탄소 발자국을 애초부터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리버티스틸의 과감한 M&A의 속뜻이다. 이 움직임은 탄소 중립과 연관된 선도적 태도이며, 성공여부에 따라 신의 한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철강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통해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로 가동 체제로 바꾸는 등의 작업에 착수했다. 사진=아르셀로미탈이미지 확대보기
철강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통해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로 가동 체제로 바꾸는 등의 작업에 착수했다. 사진=아르셀로미탈

리버티스틸은 아르셀로미탈, 타타스틸에 이어 유럽 3위, 전 세계 10위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탄소 중립시대에 알맞은 진화된 생존론을 펼치는 유럽의 철강 기업들이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국내 고로메이커들은 올해부터 적용되는 탄소 배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기로 설비를 증대하고 고철 사용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철 스크랩 사용은 엄청나게 증가될 것이다. 부수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도 기대가 된다. 철 스크랩 수급과정에서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 투명한 거래 질서가 잡힌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일부 철 스크랩 업자들은 고철을 입고할 때 먼지와 쓰레기를 함께 섞어서 납품해 왔다고 한다. 일부 업자들은 절친한 고철 검수자가 근무할 때만 고철을 납품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전기로 메이커의 본사 사무실에까지 모니터를 설치하고 철 스크랩 입고 상황을 감시 하겠는가.

양질의 고철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철을 길로틴셰어(칼)로 잘게 잘라야 한다. 먼지나 쓰레기 같은 부산물을 모조리 털어내는 청결 작업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된 고철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동안 배출된 대기오염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아직 철 스크랩의 자급자족을 이루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철 스크랩 수급을 위해 고로 메이커와 전기로 메이커가 한바탕 전쟁 치를 것 같다는 예감이 스친다.

기술의 급격한 변화 시기마다 철강 기업들의 부침이 발생했던 과거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탄소 중립시대에 어느 기업이 강자로 우뚝 설 것인지 관전 포인트가 된다.

분명한 것은 강자가 도전의 고삐를 늦출 때 경쟁기업은 더 크게 살아났다고 철강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