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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고속철 시장 개방 ‘철도주권’ 포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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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고속철 시장 개방 ‘철도주권’ 포기하나

136량 규모 평택오송선 등 입찰 공고에
경쟁 명분 스페인 탈고 참여 길 열어

현대로템이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동력 분산식 고속 철도 차량 KTX-이음. 사진=현대로템이미지 확대보기
현대로템이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동력 분산식 고속 철도 차량 KTX-이음. 사진=현대로템
국내 철도차량 산업이 정부의 무관심으로 또다시 외국 기업의 공세 위기에 처했다. 고객 편의를 우선한다는 측면에만 급급해 중앙‧지방 정부나 공기업이 스스로 외국 기업에게 시장 문호를 개방하면서 사달이 났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이를 완화해 스스로 시장을 퍼주고 있다며 산업계는 개탄하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르면 7일 평택오송선 EMU-320 고속차량 120량과 수원인천발 16량 등 총 136량 규모의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입찰 공고를 낸다. 이 사업에는 현대로템이 국내 기술로 개발한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HEMU-430XC’를 바탕으로 개발한 KTX-이음을 내세워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런데, 또 다른 국내 철도차량 업체인 우진산전이 외국 업체와 손을 잡고 입찰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파트너는 스페인 업체 ‘탈고(TALGO)다. 철도차량 업계는 입찰 공고 전 사전 공개규격 질의서에서 A사가 탈고와의 공동 입찰 참여 방법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사업 참여는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운행 중인 KTX와 SR 고속철도차량은 동력 집중식 고속차량이 운영되고 있는데,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은 이를 한 단계 개량한 차세대 주력 차량이다. 동력 집중식에 비해 열차의 가감속 성능이나 수송력, 유지보수 용이성, 국내 철도 환경에 대한 최적화 등 다양한 면에서 비교우위에 있다. 이번 입찰은 국내 개발한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인 KTX-이음이 대규모 입찰에 선정돼 실제 운항에서 안전성을 입증하면 해외 시장 진출 기대감도 높일 수 있으므로 수주가 확실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탈고의 참여로 상황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탈고가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코레일이 입찰 참가 자격을 완화하면서 비롯됐다. 코레일은 2020년까지 고속차량 발주 시 시속 250~300km 이상 최고 속력을 내는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등 구체적인 참여 자격을 마련해 왔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해당 규정을 삭제했다.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제작 경험이 없는 업체라도 일단 입찰에 들어와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탈고는 동력 분산식 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납품 실적이 있는 동력 집중식 고속차량도 납품 지연으로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업체가 KTX를 달리게 해선 안 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국내 업계는 코레일이 공기업인 만큼 입찰 자격 규정을 삭제해 준 것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철도차량 국제 입찰 절차를 통한 경쟁을 거쳐 진행되는 만큼 현대로템 단독 응찰에 따른 비판을 막기 위해 무리수를 썼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현대로템 단독 응찰에 따른 비판을 막기 위해 경쟁입찰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또한 우진산업은 그동안 현대로템의 국내 시장 독과점을 지적해왔던 업체라는 점에서, 탈고와의 협업을 통해 동력 분산식 고속철도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탈고는 한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뒤, 이를 기반으로 또 다른 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조달청에 고속차량 제조업체로 등록한 업체의 응찰을 모두 허용하고 있어서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고, 국제 입찰 시 한국과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WTO GPA)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입찰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는 규정을 준수했다고 설명한다.

코레일은 입찰에 참여한 업체를 대상으로 기술 평가를 시행하므로 기준이 미달한 업체는 탈락시킬 것이기 때문에 탈고의 응찰이 수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다만, 양사가 모두 기술평가에 합격한다면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하는 ’최저 입찰제‘를 준수하기 때문에 상황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국내 철도차량 업계는 “지난 과거에도 경쟁‧최저 입찰제로 인해 업계가 불안감에 휩싸였고, 정부에 이 같은 우려를 여러 차례 제기했으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영세업체가 96%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철도차량 부품산업은 입찰시장에서 정책적·제도적 지원과 보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버틸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