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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희‧최기호 73년 동행 영풍그룹, 이젠 제 갈길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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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희‧최기호 73년 동행 영풍그룹, 이젠 제 갈길 가나

한화그룹이 고려아연 유상증자 참여하자 장씨 일가 고려아연 지배 사들여
2019년 순환출자 해소 당시 황금비율 무너져…장씨 일가 지배력 강화돼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 전경. 사진=고려아연유튜브이미지 확대보기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 전경. 사진=고려아연유튜브
영풍그룹 총수일가들이 고려아연을 놓고 지분경쟁을 벌이면서 장병희·최기호 창업주 이래 70여년 넘게 이어왔던 공동경영에 금이 가고 있다. 최씨 일가들이 경영을 맡고 있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그룹을 주요주주로 끌어오자, 장씨일가들이 지주회사인 ㈜영풍과 계열사들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영풍그룹의 본격적인 계열분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쏟아내고 있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달 31일 장중한때 68만3000원까지 주가가 치솟으면서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 주가가 주춤거리고 있지만 여전히 주당 60만원대 이상으로 강세를 유지 중이다. 지난 7월13일 장중 44만1000원가지 주가가 내려가면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단 두 달 만에 주가가 40% 이상 오른 셈이다.
고려아연 주가가 급등한 것은 그룹의 지배회사인 ㈜영풍이 고려아연이 주식을 급작스레 취득하면서부터다. 영풍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와 에이치씨는 지난달 30일 공시를 통해 고려아연 주식 6402주(전체 지분 중 0.03%)를 사들인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고려아연의 지분을 사들인 코리아써키트와 에이치씨가 사실상 영풍그룹의 두 가문 중 장씨 일가인 장형진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리아써키트는 ㈜영풍이 전체 지분의 39.8%를 보유 중이며, 에이치씨는 장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에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8월5일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를 주요 주주로 끌어들였다. 한화H2에너지USA는 고려아연 보통주 99만3158주를 4700억원에 인수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기존 보유분이던 지분 1.18%에 더해 총 6.88%를 보유한 고려아연의 주요주주로 떠올랐다.

재계에서는 고려아연을 경영하고 있는 최씨 일가가 한화그룹을 백기사로 포섭하면서 장 회장 측이 고려아연 지분매입이란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윤범 부회장을 비롯한 주축으로 한 최씨 일가들이 고려아연을 필두로 영풍그룹에서 분가할 것이란 후문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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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풍그룹 결별설은 지난 2019년부터 불거져왔다. 당시 영풍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 해소 압박으로 7개에 달하던 그룹 내 순환출자 구조를 모두 해소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70여년 지켜왔던 영풍그룹 두 가문의 황금비율이 깨친 것이다. 당시 장형진 전 회장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서린상사가 보유하던 ㈜영풍 지분 10.3%를 1330억원에 사들였고, 반대로 고려아연 지분을 매각했다.

그 결과 지주회사격인 ㈜영풍의 지분율(법인 제외)은 장씨 일가가 31.19%로 높아졌고, 최씨 일가는 13.06%로 낮아졌다. 황금비율을 지켜왔던 두 가문의 지배력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실제 고려아연을 보면 영풍그룹 두 가문의 지분차이가 상당히 벌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일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영풍과 특수관계인(장씨일가) 들로 전체 지분의 31.34%를 보유 중이다.

반면 최윤범 부회장을 비롯한 최씨일가들과 우호지분은 14.79%에 불과해 장씨일가 대비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최씨일가 입장에서는 사실상 독립적으로 경영해왔던 고려아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장씨일가가 부담스러울 것이란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영일선에 나선 3세들의 행보도 계열분리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장형진 회장의 아들인 장세준 코리아서키트 사장은 ㈜영풍의 지분 16.8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코리아서키트 등 영풍그룹 내 전자계열사들을 이끌고 있다. 코리아써키트는 2019년 연결기준 매출액이 5434억원이었지만, 2020년에는 9021억원, 지난해에는 1조424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해마다 두 배에 가까운 매출신장율을 기록한 것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사진=고려아연이미지 확대보기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사진=고려아연
최윤범 부회장의 고려아연 역시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지난 2020년 연결기준 매출액이 7조5819억원에 달했으며, 지난해에는 9조976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5조5126억원의 매출액을 낸 만큼 연매출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풍그룹의 양대 축인 장씨일가와 최씨일가가 각자 맡은 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공동경영체제 유지보다는 계열분리에 따른 독자경영을 선호할 것이란 게 재계의 분석이다.

고려아연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영풍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주목된다.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에서 계열 분리되기 위해서는 ㈜영풍이 보유한 주식 518만6797주(지분 26.11%)를 최씨일가에 넘겨야 한다. 2일 종가 기준으로만 3조2000억언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고려아연은 6월말 기준 보유한 8000억원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이다. 계열분리에 앞서 고려아연이 ㈜영풍이 보유한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면 최씨일가의 지분율도 상승하면서 계열분리를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결국 고려아연 계열분리의 키를 쥐고 있는 이는 ㈜영풍과 장 회장이다. ㈜영풍과 고려아연 측은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와 관련 “고려아연의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영풍과 장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최씨일가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최근 추가로 고려아연 지분을 늘린 점을 보면 당장 계열분리를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