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토리아 호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불과 36년 만에 탄생한 원양 정기선이었다. 당시는 원양 정기선이 전 세계의 여행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선박은 초기에 SS 미국, 큐나드의 엘리자베스 여왕, SS 안드레아 도리아 등과 같은 유명세를 가진 선박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대서양을 횡단했다.
최초의 이름은 스톡홀름이었다. 이 선박은 많은 사건을 겪었다. 556인승 원양 정기선 스톡홀름은 1948년부터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해오다 역할을 변경하여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크루즈 시대의 초창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1만6144톤 규모의 아스토리아 호는 최근에 알려지지 않은 폐차장에서 철스크랩으로 판매되었다고 재활용 전문 외신매체가 최근 보도했다.
아스토리아 호는 숱한 스토리를 안고 있다. 이 선박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맹위를 떨치던 1944년 스웨덴과 뉴욕시 사이에 정기여객 서비스를 제공하던 스웨덴 아메리칸 라인에 의해 주문되었다. 대서양 횡단 여행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아스토리아 호는 북대서양의 흔한 빙산을 깰 수 있는 강화된 기능을 선박에 장착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여객선 역할을 했다. 첫 항해는 1948년 2월에 시작되었다. 8년 후 1956년에 스톡홀름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이탈리아 원양 정기선인 3세 안드레아 도리아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사고는 매사추세츠 주 낸터킷 해안에서 발생했다. 두 선박은 안개가 낀 상태에서 반대 방향으로 증기를 내뿜었다. 두 선박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안드레아 도리아호는 결국 전복되어 침몰했고, 두 선박의 승객과 승무원 51명이 사망했다. 타이타닉호 침몰 이후 최악의 해양 재해 중 하나로 기록된 사고였다.
그러나 이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14세 소녀의 생존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사고 당시 안드레아 도리아의 침대에서 자고 있던 14세 소녀 린다 모건은 찢어진 선실에서 스톡홀름 갑판에 던져져 승무원에게 발견되었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던 한 자매는 사망했고, 옆방에 있던 소녀의 의붓아버지도 사망했다. 그녀는 ‘기적의 소녀’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고 후, 수리를 마친 선박은 유람선으로 개조됐다. 두 번째 삶을 시작한 것이다. 이 선박은 1960년 동독 정부로 이전되어 ‘사람들의 우정’이란 뜻의 ‘볼커프런더샤프트(Volkerfreundschaf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동독인을 위한 크루즈 선박이 되었지만 운영이 시원치 않아 여러 크루즈 회사로 팔렸다. 이렇게 63년을 지나오면서 내부 시설이 현대적으로 변경되고 이름도 수차례 바뀌었다.
아스토리아란 이름을 얻은 것은 2016년부터였다. 영국 노선의 크루즈&마리타임 보야지를 위한 항해를 지속했다. 불행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완전히 운항 사업을 접어야 했다.
2021년 아스토리아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암호화폐 억만장자 브록 피어스가 유람선으로 사용할 의도로 인수한 것이다. 결과는 허무하게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피어스가 유람선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쩌든 이 선박은 75년 동안 서비스를 유지해왔다.
대부분의 현대 유람선은 30년의 수명을 위해 설계되었고, 그보다 일찍 퇴역하고 폐기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스토리아호는 75년 동안 유람선 서비스를 진행해온 역사적인 선박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화려한 유람선의 형체를 철 스크랩으로 해체하게 된 것이다. 생명체가 흙으로 돌아가듯이 철강으로 만든 선박은 다시 철의 재료로 회귀한 것이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