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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율·가동률까지 제출하라…美 과도한 요구에 삼성·SK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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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율·가동률까지 제출하라…美 과도한 요구에 삼성·SK 당혹

반도체보조금 신청 세부지침 통해 반도체 기업들 영업기밀 상당수 요구
영업기밀 유출 가능성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보조금 신청' 신중 모드
장비 수출제한 세부지침도 내달 공개예정…결국 심사과정 협상 택할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반도체 제조시설 울프스피드사를 시작으로 3주간의 '인베스팅 인 아메리카' 투어를 시작했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반도체 제조시설 울프스피드사를 시작으로 3주간의 '인베스팅 인 아메리카' 투어를 시작했다. 사진=AP/뉴시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미 정부가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반도체공장 보조금을 지급받는 기업들에게 사실상 영업기밀에 해당되는 정보들을 추가로 요구하는 것으로 확인돼서다.

이에 일부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는 미 정부의 보조금 지급 신청을 포기하고 북미지역에서 추진하던 사업을 종료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당장 31일부터 시작되는 보조금 신청 역시 상당수의 기업들이 유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에 대한 세부지침과 사례를 공개했다. 해당 세부지침에는 보조금 신청에 나선 기업들의 수익성 지표를 포함해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과 수율 전망 등을 포함하도록 요구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수익 지표에) 세부 항목별 생산전망과 연도별 변화에 대한 명시적인 세부사항도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부지침을 살펴보면 먼저 생산라인과 관련해서는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웨이퍼별 수율 △가동률 △연도별 생산량 △판매단가 등이 제출서류에 포함됐다.

소재와 관련해서는 △사용되는 소재·소모품·화학품 △소재별 비용 등이 포함됐으며, 공장운영과 관련해서는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비 △유형별 고용인원 등도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미 상무부가 반도체지원법 세부지침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미 정부가 보조금을 미끼로 반도체기업들의 영업기밀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도 "상무부가 선을 넘은 것 아니냐"며 과도한 요구에 대해 성토하는 분위기다.

먼저 수율의 경우 반도체 기업들의 핵심지표로 전 세계 어떤 반도체기업들도 공식적인 수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과 소재, 소모품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미 상무부에 제출한 영업기밀이 글로벌 경쟁사에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 상무부는 "(반도체보조금을 받기 위한) 세부지침은 말 그대로 지침일 뿐, 신청기업들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 미 상무부는 지난 2021년 자동차 반도체 대란 당시 대만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재고량과 고객사 정보 등 26개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했지만, 기업들은 기밀에 해당된다며 관련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반도체지원법 세부지침은 2년 전 업무협조 요청 성격에 강했던 당시와 달리 수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이 조건으로 달려 있다. 당장 미 정부의 보조금을 기대하고 사업확대에 나선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무부의 세부지침을 무조건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셈이다.

게다가 미 정부는 이번 반도체지원법 세부지침과 더불어 다음달 중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한 새로운 규정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조치는 지난해 10월 발동한 행정명령으로, 적성우려국가에 첨단 반도체 장비의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 상무부가 과도한 영업기밀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장 무조건적인 자료제출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면서 "향후 보조금 신청 및 심사과정에서 기업들의 내부기준에 맞춰 제출서류의 수위를 협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