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국민시인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라는 詩를 발표하여 파리의 ‘미라보 다리’에 유명세를 더했다.
“흘러간 세월도 지나간 사랑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지마는/
미라보 다리아래 센강은 흐르고/
나는 이 다리위에서 머물 것이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위에 있겠다고 했지만, <다리>의 작가 하트크레인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카리브 해’로 투신했다. 다리 위에서는 사랑의 힘 보다 악마의 유혹이 더 큰 모양이다.
라이프 스타일로 본 다리는 새로움을 만나게 해주는 통로이다. 수많은 통로 중에서 육지와 바다를 연결한 다리는 인간의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준다. 배로 건너야 했던 먼 바닷길이나 깊은 계곡을 육로와 간단하게 이을 수 있게 된 것은 철이란 새로운 소재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철로 만든 세계 최초의 다리는 ‘아이언브리지’이다. 1779년 영국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의 ‘세번강’(River Severn) 위에 세워진 ‘아이언브리지’는 산업혁명을 처음 일으킨 영국의 자존심이다. 지금도 이 다리를 보기 위해 연간 6만 명의 학생들과 6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단다. 주철로 만든 이 다리는 총길이가 42.7m(철제 부분 30.6m)의 아치 형태이다. 그동안의 다리는 석재나 나무로 만들었지만 건축가 프리처드는 처음으로 철을 소재로 ‘아이언브리지를 만들려고 했다.(1709년 영국 다비 1세가 코크스 용선법을 개발, 다비家에서 주철 생산함)
‘아이언브리지’의 건설이 본격화 된 것은 프리처드가 철의 명장 존 윌킨스에게 “철다리를 만들자”고 편지를 보내면서부터이다. 결국 프리처드(설계), 존 윌킨스(시공), 다비家 철공소(철 공급)의 3각 편대가 아이언브리지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다비 1세부터 추진됐던 철교 건설은 실패하고, 대를 이어 다비 3세가 3000파운드나 되는 막대한 재산을 투입하지만 공사는 갖가지의 어려움을 겪는다.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저러다 파산하고 말거야.”
사람들은 다비 3세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했다. 금값보다 비싼 철다리를 만든다고 사재를 쏟아 부었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첫 번째 큰 난관은 착공 두 달 만에 설계를 맡은 프리처드가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다비 3세는 설계를 대폭 수정하여 착공 2년(1777년 11월~1779년 5월)만에 겨우 아이언브리지를 완성 시킨다. 다리에 쓰인 주철은 모두 378톤이었다. 완성된 아이언브리지에 대한 평가는 칭찬보다는 혹평뿐이었다.
“鐵로 만든 최악의 형편없는 다리”라는 평가는 이제까지 석재나 목재로 만든 고딕풍의 멋진 다리만 보았던 당시의 편협한 시각 때문이었다. 아이언브리지의 주재료인 주철(鑄鐵)은 무쇠 솥과 같은 재질이며, 단단하지만 탄력성이 없어 복고풍의 멋진 디자인 연출은 한계가 있었다.
아이언브리지의 진정한 의미는 멋이 아니라 영국이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이 바로 鐵이라는 점이며, 이 철교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입했던 다비 3세의 열정적인 프런티어 정신에 있을 것이다.
아이언브리지의 등장 이후로 세계 각국에는 鐵로 만든 다리가 속속 등장한다. 세계 각국의 다리와 그 속에 담긴 스토리들은 역사를 대변하고 낭만을 이야기한다. 철강 산업이 영국보다 약 60년이나 뒤졌던 프랑스는 오히려 영국보다 鐵 구조물을 더욱 융성시켰다. 파리의 센강에 걸쳐있는 37개의 다리와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물들이다.
가장 오래된 퐁네프다리는 400년 된 작고 아름다운 다리이다. 이 다리를 소재로 한 영화 ‘퐁네프의 연인’에서는 노숙하는 남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과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이다. 엔딩은 퐁네프다리에 자물쇠를 채우면서 마무리 된다.
‘생 미셸 다리’는 소르본대학으로 향하는 예술가의 거리이며, ‘솔페리노 다리’는 오르세 미술관으로 안내하는 길목이다. ‘이에나 다리’는 나폴레옹(1806년)의 실각과 함께 건축과 파괴를 반복했던 다리이고 ‘알마 다리’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다리 밑 지하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주인공들이 만나는 첫 장면을 찍었던 ‘비라켕 다리’에는 전세계의 연인들이 찾아와 영화 장면과 똑같이 흉내 내는 장소로 이름났다. 파리 시내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센강 주변에서 왜 유럽인들이 그토록 낭만을 찾을까? 그 원인이 궁금했지만 필자가 바라본 센강의 풍광은 별로였다. 한강보다 훨씬 규모도 작고 콕 집어서 아름답다고 할 만한 다리도 보이지 않았다. 2014년 4월 필자와 같은 곳을 관광하던 한국의 70대 할머니가 미라보 다리위에서 던진 한마디는 쓴 웃음을 짓게 했다.
“뭔 다리가 이렇게 심심혀! 별일 없구먼... 내가 살아온 얘기는 책으로 써도 수 십 권은 될 것이요.”
할머니의 말씀과 유럽인들의 낭만적인 시각은 너무 달랐다.
독일의 라인강 위에 설치된 다리에도 전쟁과 얽힌 일화가 많다. ‘루덴도르프브리지’는 히틀러가 땅을 치고 후회했던 다리이다.
이 다리는 히틀러가 연합군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폭파를 명령했으나 실패했고, 연합군은 손쉽게 라인 강물을 발에 적시지 않고 독일로 진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다리이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다리’는 한국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최첨단 현수교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에 걸린 세 번째 교량은 현대건설의 기술력으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세계 최초로 사장교와 현수교 방식을 복합적으로 적용했다. 이 다리는 튀르키예의 유럽 지역 ‘사르예르 가립체’와 아시아 지역 ‘베이코즈 포이라즈쿄이’를 연결하고, 총 연장 2164m, 중앙 경간 1408m, 폭은 58.5m이다. 교량 위에는 왕복 8차선의 도로와 복선 철로가 놓여 있는데, 오래전 이 다리 위에서 타이거 우즈는 대륙을 뛰어 넘는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이벤트를 했었다.
현수교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골든게이트브리지’가 압권이다.
골든게이트브리지는 웬만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골든게이트브리지의 위용은 절로 감탄사를 튀어 나오게 만든다. 골든게이트브리지 초입에 세워진 조셉 B 스트라우스의 동상에는 이런 글이 새겨있다.

“다리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영원 합니다.”
“됐소! 건설자금은 우리가 대겠소.”
골든게이트브리지(이하 금문교로 표현)를 건설하겠다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 당사자들의 대범함과 결단력 뒤에는 US스틸과 베들레헴스틸이라는 든든한 철강기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20여 명의 철강인들과 함께 금문교를 방문했던 날은 날씨가 흐려 끝내 금문교의 화려한 속살을 보지 못했다. 겨우 다리 한쪽만 구름에 매달린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환상적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의 철제빔과 와이어 로프가 사용됐구먼, 일찍 알았다면 우리 제품을 몽땅 팔 수 있었는데...”
누군가 느닷없이 던진 허풍에 일행 모두는 웃고 말았다. 금문교에 사용된 엄청난 굵기의 와이어 로프는 상상을 초월했다. 금문교 입구에는 와어어 로프의 단면이 전시되어 있고, 그 구조를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가는 철선을 꼬아 어른 주먹 크기의 와이어 로프로 만들고, 이들을 다시 결합시켜 지름 2m 이상의 대형 로프로 만들어 현수교를 만든 것이다. 아이언브리지의 등장 이후로 강철 교량들은 해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갖가지 교량으로 만들어지고,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우대 받을 만큼 볼거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1세기의 교량들은 미학을 더하여 지구의 표면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이제 철의 미학은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의 현수교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고베의 아카시카이교
한국의 인천대교와 광안대교 등
조선 왕조를 설계한 삼봉 정도전은 “국가를 가진 사람은 다리를 놓아서 왕래를 통하게 하는 것이 王道政治의 일단이다”고 했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