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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4회)] 녹슨 열차를 복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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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4회)] 녹슨 열차를 복원하는 이유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전시 중인 6·25전쟁 때 폭격으로 멈춰 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이미지 확대보기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전시 중인 6·25전쟁 때 폭격으로 멈춰 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2015년 6월, 국내 모 일간지 산업부 데스크를 맡고 있던 부장급 기자가 사직서를 내고 시베리아 횡단 르포에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거의 매일 동료 후배 기자들에게 카카오톡으로 현장 모습을 공유했다.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베리아 횡단은 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실크로드였다. 그 위에서 펼지는 이야기와 모험은 남다른 경험으로 남았다. 사랑과 야망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여행자가 아니었다. 철강 로드를 직접 밟아보고 느껴보는 기자였다. 철강제품의 물류 이동은 대부분 해상에서 이루어지지만, 시베리아 횡단 철도 인프라가 완성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거쳐 동구라파와 아프리카까지 이어질 수 있는 거대한 철의 실크로드는 세상의 비즈니스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문학 장르에서 철로와 증기기관차는 사랑과 이별의 상징이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 덮인 대지와 열차는 슬픈 이별을 강조한다. ‘해바라기’에서도 소피아 로렌의 쏟아질 듯한 눈물은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에 흘러내린다. 군 입대와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상경하는 시골소녀가 눈물 바람을 일으키는 장소도 열차 난간이다.

그는 철로와 열차를 통해 사랑과 이별, 모험과 도전을 경험한 기자였다. 그의 시베리아 횡단 르포는 그의 삶과 직업에 대한 고민과 결단을 담고 있었다.

국토분단의 상징도 있다. 경의선 장단역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화통은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 군수물자 수송을 담당하던 열차였다. 연합군이 개성역에서 황해도 한포역까지 올라갔다가 전세가 악화되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다 피폭된 열차이다. 그날이 1950년 12월 31일 늦은 밤이다. 열차는 경의선 장단역에서 멈춰섰다. 그 멈춰선 열차는 증기기관차였다. 검붉게 녹슬고 부식된 채로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 안에 방치되어 왔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유물을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문화재청이 나서서 남북분단의 뼈아픈 역사적 상징물로 지정하여 문화재로 등록했다.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은 철강회사 포스코였다. 사회공헌 활동으로 추진한 것이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의 화통은 길이 15m, 폭 3.5m, 높이 4m이다. 문화재청과 포스코는 2005년 9월 14일 화통 보존을 위한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식을 체결하고, 포스코는 보존처리 비용을 떠맡았다.
언론에 보도된 자료를 살펴보면 포스코는 철강 큰형님(?)다운 기업시민활동을 전개했다. 열차의 복원을 위해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이 나서서 복원 사업 중 기술부분을 맡았다고 한다. 시뻘겋게 녹슨 고철 덩어리를 역동적인 증기기관차로 다시 복원하는 일은 안병찬교수(경주대)가 맡았단다. 2006년 7월 비무장지대 현장 답사를 시작한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방치된 증기기관차의 모습은 흉측할 정도로 고철화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들었다. 고대 철기 유물보존 작업은 많이 해봤지만 녹슨 증기기관차는 ‘괴물’처럼 그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작업은 시작됐다. 안 교수는 무게 80톤의 차체를 받치기 위해 2㎝ 두께의 철제빔 30톤을 제작했다. 110톤의 쇳덩어리를 대형 기중기로 끌어 올려 트레일러에 싣고 직선거리로 4㎞떨어진 지금의 보존처리센터로 옮기던 때가 가장 힘든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증기기관차 해체 과정에서 안 교수는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어 절망하기도 했단다. 정확한 구조의 파악을 위해 안 교수는 2007년 1월 포항산업연구원 관계자, 일본 도쿄문화재연구소의 근대 문화유산 담당자와 함께 교토의 우메지 철도 박물관을 찾아갔다.

장단 기관차의 사진을 본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운행된 기관차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놨다. 증기기관차는 차체 앞쪽의 전륜(前輪), 크랭크로 움직이는 동륜(動輪), 뒤쪽 후륜(後輪)의 개수로 구분하지만 장단기관차는 힘이 좋아 산악 지형에서 운행된 ‘4-8-2식’ 모델로 판명됐다.

안 교수는 일본 통문각에서 나온 330쪽짜리 ‘최신기관차명칭도해’를 통독하면서 증기기관차의 구조에 눈을 떴다고 한다. 2010년에는 독일 베를린의 기술 박물관을 찾기도 했다. 차체의 녹 제거 작업을 본격화 한 것은 2008년 1월 23일.

1㎝ 두께의 철판에 엉겨 붙은 녹은 5㎝에 달했다. 땅속에 묻힌 곳, 열에 의해 변성된 곳, 갈라진 곳 등 갖가지 다양한 녹은 원형 복원작업을 더디게 했다. 안 교수는 부드러운 호두 껍대기 가루를 고압 분사하는 방식으로 표면을 복원시켰다. 40여개의 파이프가 들어있는 보일러실에서는 관통한 총탄구멍을 통해 고압의 방록액 스프레이를 뿌렸다. 차체의 녹을 벗겨내자 표면에 새겨진 글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련번호 24084. 동륜에는 일본 가와사키중공업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결국 경의선 장단역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화통은 194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 작업중 가장 마지막 작업은 기관차 차체 외부에 표면 보호 코팅액을 처리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이 작업을 거친 장단 증기기관차는 섭씨 65도, 영하 25도에서도 버틸 수 있는 전시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보존 처리된 증기기관차가 지금의 전시장에 설치된 장단리 증기기관차의 모습이다. 지금이야 철도차량공사에서 최신형 기관차를 떡 주무르듯이 만들어내고 있지만 증기기관차를 만들 수 없었던 당시 기술의 낙후성에 철강인의 가슴은 졸아든다.

다만 마지막으로 남북을 오갔던 열차. 그리고 1,020개의 총알 자국과 녹슬고 흉측한 모습을 복원 시켜 남북 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이 고스란히 느껴지게 한 포스코의 사회공헌 활동이 오래도록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란 점에서 커다란 위안이 된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