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선대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1987년 삼성을 물려받은 후 5년간 그룹 전반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렇게 5년이 흐른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전 세계에서 일하던 삼성 임원들을 모두 집결시킨 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과 함께 신경영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의 최고 기업인 삼성을 글로벌 삼성으로 변모시킨 이건희 선대 회장의 독설을 살펴봤다.
△ "2등 정신은 버려라"
신경영 선언 4개월 전인 1992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방문한 이건희 선대 회장은 한 유통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외면당하고 있던 삼성전자 제품을 발견했다. 즉시 현지 사장단을 호출한 이 선대 회장은 당시 최고라고 찬사받던 일본 가전제품과 삼성 제품을 그 자리에서 비교했다. 그리고 그룹 수뇌부에 "2등 정신은 버려라"고 질타했다.
△ “삼성전자의 문제점을 얘기하라”
삼성전자의 디자인을 맡고 있던 후쿠다 다이모 당시 고문은 1993년 6월 4일 일본 호텔방에서 이 회장에게 13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기록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를 접한 이건희 선대 회장은 곧바로 후쿠다 고문을 불러 1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날 독일행 비행기를 탄 후 다시 한번 후쿠다 보고서를 정독했다.
△ "다 불태워라"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선대 회장은 런던부터 도쿄까지 70여 일을 오가며 혁신을 주문했다. 당시 이건희 선대 회장은 양보다 질을 강조했다. 형편없는 품질의 제품을 많이 만들기보다 고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설파한 것이다. 이른바 '품질경영'이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면 이익은 지금보다 3~5배가 될 것"이라며 "질을 위해서라면 회사 문을 닫아도 좋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이수빈 당시 비서실장이 이건희 선대 회장에게 "질과 양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대량생산에 대한 미련을 보이자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간 일화도 유명하다.
또한 1995년 신경영 선언 2년 뒤에도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대한 품질 불량 논란이 잇따르자, 이건희 선대 회장은 시중에 판매된 15만 대의 휴대전화 전량을 수거한 후 그해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 회수된 휴대전화 전량을 불태웠다. 당시 불탄 휴대전화는 시가만도 5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4시가 되면 모두 회사에서 나가라”
이건희 선대 회장은 신경영을 통해 고품질의 제품 개발을 독려했다. 당시만 해도 삼성 직원들은 아침 8시 출근 후 야근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자리를 지킨다고 품질이 좋아지지 않는다"면서 "오후 4시가 되면 모두 회사에서 나가라"고 주문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삼성전자만의 '조기 출퇴근제'가 시행된 것이다. 이 제도는 현재 '자율출근제(8시간 근무하면 퇴근하는 제도)'로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