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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삼성을 월드베스트로 만든 이건희 선대회장의 ‘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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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삼성을 월드베스트로 만든 이건희 선대회장의 ‘독설’

이건희 선대 회장이 지난 2002년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이건희 선대 회장이 지난 2002년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다음 달 7일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단초가 됐던 이건희 선대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30주년을 맞는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1987년 삼성을 물려받은 후 5년간 그룹 전반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렇게 5년이 흐른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전 세계에서 일하던 삼성 임원들을 모두 집결시킨 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과 함께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후 삼성은 지금처럼 긴장감과 위기감이 팽팽한 기업으로 변신했다. D램·낸드플래시·TV·스마트폰·파운드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올라섰지만, 지금도 경쟁 기업들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초격차 전략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고 있을 정도다.

대한민국의 최고 기업인 삼성을 글로벌 삼성으로 변모시킨 이건희 선대 회장의 독설을 살펴봤다.

△ "2등 정신은 버려라"


신경영 선언 4개월 전인 1992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방문한 이건희 선대 회장은 한 유통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외면당하고 있던 삼성전자 제품을 발견했다. 즉시 현지 사장단을 호출한 이 선대 회장은 당시 최고라고 찬사받던 일본 가전제품과 삼성 제품을 그 자리에서 비교했다. 그리고 그룹 수뇌부에 "2등 정신은 버려라"고 질타했다.

△ “삼성전자의 문제점을 얘기하라”


삼성전자의 디자인을 맡고 있던 후쿠다 다이모 당시 고문은 1993년 6월 4일 일본 호텔방에서 이 회장에게 13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기록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를 접한 이건희 선대 회장은 곧바로 후쿠다 고문을 불러 1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날 독일행 비행기를 탄 후 다시 한번 후쿠다 보고서를 정독했다.
그로부터 3일 후 이건희 선대 회장은 전 세계에서 근무 중이던 1000여 명의 삼성그룹 핵심 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긴급 소집했다. 여기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신경영을 선언한 것이다.

△ "다 불태워라"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선대 회장은 런던부터 도쿄까지 70여 일을 오가며 혁신을 주문했다. 당시 이건희 선대 회장은 양보다 질을 강조했다. 형편없는 품질의 제품을 많이 만들기보다 고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설파한 것이다. 이른바 '품질경영'이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면 이익은 지금보다 3~5배가 될 것"이라며 "질을 위해서라면 회사 문을 닫아도 좋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이수빈 당시 비서실장이 이건희 선대 회장에게 "질과 양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대량생산에 대한 미련을 보이자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간 일화도 유명하다.

또한 1995년 신경영 선언 2년 뒤에도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대한 품질 불량 논란이 잇따르자, 이건희 선대 회장은 시중에 판매된 15만 대의 휴대전화 전량을 수거한 후 그해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 회수된 휴대전화 전량을 불태웠다. 당시 불탄 휴대전화는 시가만도 5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4시가 되면 모두 회사에서 나가라”


이건희 선대 회장은 신경영을 통해 고품질의 제품 개발을 독려했다. 당시만 해도 삼성 직원들은 아침 8시 출근 후 야근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자리를 지킨다고 품질이 좋아지지 않는다"면서 "오후 4시가 되면 모두 회사에서 나가라"고 주문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삼성전자만의 '조기 출퇴근제'가 시행된 것이다. 이 제도는 현재 '자율출근제(8시간 근무하면 퇴근하는 제도)'로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