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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못 만든 5G칩…화웨이 ‘기린 9000s’에 속쓰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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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못 만든 5G칩…화웨이 ‘기린 9000s’에 속쓰린 이유

화웨이 메이트 프로 60. 사진=화웨이이미지 확대보기
화웨이 메이트 프로 60. 사진=화웨이

지난 8월 30일 화웨이가 자사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통해 선보인 자체 개발 칩 ‘기린 9000s’는 등장하자마자 반도체 업계의 화제로 떠올랐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체 기술로 7나노미터(㎚, 10억분의 1m)급 고성능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걸 기린 9000s 칩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 입장에서는 이 칩을 보면 볼수록 아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 애플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자사의 A 시리즈 프로세서에 자체 개발한 5G 모뎀을 통합하는 것인데, 그걸 화웨이가 기린 9000s를 통해 먼저 실현했기 때문이다.

애플도 아직 못 만드는 5G 모뎀칩


애플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과 로고가 선명한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같은 스마트 기기와 맥(Mac) 시리즈 컴퓨터다. 하지만 반도체 설계 및 디자인 분야에서도 애플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 중 하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 탑재되는 A 시리즈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마트폰용 CPU)는 매번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시점의 경쟁사의 AP 대비 2~3세대 앞서는 성능과 기능으로 애플 제품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맥 시리즈용 CPU도 과거에는 IBM, 인텔 등 타사 제품을 사용하다가 2020년 11월 첫선을 보인 ‘애플실리콘 M1’을 시작으로 자체 개발한 M 시리즈 칩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M 시리즈 역시 경쟁사 CPU 대비 뛰어난 성능과 우수한 전력 효율 등을 과시하며 애플의 반도체 설계 실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최신 스마트 기기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5G 통신 모뎀은 지지부진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018년 팀 쿡 CEO의 지시로 자체 통신칩을 개발하기 시작하며 수천 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했다. 심지어 한때 통신 칩을 직접 만들던 인텔의 모뎀 사업까지 인수하며 자체 기술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겨우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너무 크고, 발열이 심하며, 성능까지 떨어져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자체 5G 모뎀을 개발하면 아이폰 15부터 탑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발 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되자, 결국 최대 앙숙인 퀄컴과 오는 2026년까지 3년간 아이폰용 통신용 칩을 공급받는 계약을 맺으면서 아이폰 15 시리즈를 출시할 수 있었다.

지난 2017년부터 과도한 로열티 문제와 특허 침해 등을 이유로 퀄컴과 치열한 소송전을 치러왔던 애플 입장에선 굴욕인 셈이다.

바이두를 통해 유출된 화웨이 기린 9000s 칩의 기판 사진.  사진=바이두 갈무리이미지 확대보기
바이두를 통해 유출된 화웨이 기린 9000s 칩의 기판 사진. 사진=바이두 갈무리


자체 5G 모뎀에 AP와 통합까지 성공한 화웨이


화웨이는 현재 기린 9000s 칩에 대해 어떠한 기술적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이는 현재도 화웨이를 제재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기술 분석 기업 테크인사이츠가 역설계 과정으로 이 칩의 설계 구조와 기능 등을 분석하고 있고, 또 27일 중국 바이두에서 기린 9000s 칩의 다이 샷(기판 사진)이 유출되면서 점차 그 실체가 드러나는 중이다.

유출된 다이 샷에 따르면, 기린 9000s 칩은 ARM 기반 맞춤형 AP와 GPU를 중심으로, 큼직한 5G 모뎀과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ISP), 인공지능(AI) 기능을 위한 신경 처리 장치(NPU) 등을 하나로 통합한 시스템 온 칩(SoC, 여러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반도체) 형태의 반도체다.

다양한 기능의 반도체를 통합해 SoC로 만드는 이유는 성능 물리적인 크기 감소를 시작으로, 성능 향상과 전력효율 개선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A시리즈 및 M시리즈 칩도 모두 SoC다.

화웨이는 5G 통신 기술 분야에서 수많은 자체 기술과 특허를 보유한 세계적 강자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화웨이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2022년 글로벌 5G 장비 시장에서 28%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런 화웨이가 모바일 기기용 5G 모뎀칩까지 개발하고, SoC로 통합하는 데도 성공했다. 하드웨어 전문매체 탐스하드웨어는 이마저도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수년이나 늦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마침 중국에 불고 있는 ‘애국 소비’ 열풍에 힘입어 기린 9000s 칩을 탑재한 메이트 60 프로는 중국 시장에서 아이폰 15 시리즈의 최대 라이벌로 떠올랐다.

업계에는 애플 역시 수년 내로 자체 5G 칩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화웨이의 기린 9000s 칩과 이를 탑재하는 스마트 기기들, 그리고 그 후속 제품들은 당분간 자체 5G 칩이 없는 애플의 아픈 상처를 건드릴 전망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