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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효성가 형제 갈등’ 목격한 외로운 조석래 명예회장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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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효성가 형제 갈등’ 목격한 외로운 조석래 명예회장 빈소

30일 빈소 조문 시작, 전광판에 조현문 유족 명단에 없어
조현문 전 사장, 조문객 자격으로 부친 영정이 1분 묵념
형님 조문온 조양래 명예회장은 차남 조현식 회장만 대동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정오 즈음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빈소 전광판을 확인했다. 특1호실. 그런데 유족 명단에는 고인의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이름이 없었다.

전날 조석래 전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한 효성그룹 보도자료에는 유족 명단에는 조현문 전 부사장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부친의 장례식을 계기로 삼형제가 화해를 하는 게 아닐까하고 기대를 했었다.
장례식장을 내려와 효성 측 임원들에게 물어보니 “(회사로서는) 당연히 같이 게재했는데 (조현문 전 부사장이) 유족 명단에 빠진 것은 가족들이 결정한 것이라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29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부친의 마지막을 지켰던 장남 조현문 효성그룹 회장과 삼남 조현상 부회장은 이날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도 자리를 지켜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조문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조현문 전 부사장은 자리에 없었다. 경영권 승계를 놓고 형제간 갈등을 빚고 있는 ‘범 효성가’의 모습이 이곳에서 목격됐다. 그만큼 고인의 장례식은 외로워 보였다.

‘단 5분’ 부친 빈소 머물다 간 차남 조현문


조현문 전 부사장은 오후 2시께 빈소를 찾았다. 앞서 이 시간께 조문을 예고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도착 직전이었다. 머문 시간은 단 5분. 부친의 영정 사진 앞에서 1분 넘게 묵념을 한 뒤 형 조현준 회장과 짧게 대화를 나눈 후 자리를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5일 조현문 전 부사장의 강요 미수 혐의 재판에 함께 출석했던 동생 조현상 부회장과는 대화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슬픔에 잠겨 있었을 모친 송광자 여사와도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이 바로 빠져 나왔다.

기자들 앞에서 입을 꾹 다문 조현문 전 부사장은 “가족과 어떤 얘기를 나눴냐”, “다시 장례식장을 찾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유족이 아닌 조문객으로 조문한 만큼 남은 장례식 기간은 물론 발인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효성그룹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의 빈소를 조문 후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효성 형제의 난’을 촉발했던 조 전 부사장의 이름은 빈소 전광판에 공개된 유족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의 빈소를 조문 후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효성 형제의 난’을 촉발했던 조 전 부사장의 이름은 빈소 전광판에 공개된 유족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조석래 명예회장의 삼형제는 2012년까지만해도 ‘표면적으로는’ 사이좋게 부친 아래에서 효성그룹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해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효성 경영권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따르던 임원들이 사직하면서 갈등이 외부로 불거졌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 발생한 것이다. 갈등이 커지면서 조석래 명예회장이 조현준 회장의 손을 들어주자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13년 효성을 떠났고, 보유하고 있던 효성 계열사 지분도 모두 매각해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이탈하면서 마무리 되는 듯했다.

하지만,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14년 7월부터 조현준 회장과 주요 임원진의 횡령·배임 의혹 등을 주장하며 고소·고발했고, 조석래 명예회장에게도 책임을 씌우는 등 외부에서의 공격을 이어갔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그를 불러 화해를 추진했지만, 조현문 전 부사장은 이를 거부했고, 2017년, 조현준 회장은 조현문 전 부사장이 자신을 협박했다고 맞고소하기도 했다.

효성그룹 관계자들은 10년 넘게 이어진 형제간 갈등에 조석래 명예회장이 많이 힘들어했으며, 건강도 급속히 악화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방식대로 삼형제에게도 승계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은 장남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 효성을 물려줬고, 차남 조양래 명예회장과 삼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에게는 각각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의 경영을 맡겼다. 승계과정은 잡음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를 통해 재계는 ‘범 효성가’ 기업군이 탄생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승계를 하려니 고민이 생겼다. 2010년대까지 효성그룹 전체 매출 규모는 삼성과 현대, LG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삼형제에게 기업을 쪼개주면, 각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줄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효성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일화가 바로 효성의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설이었다. 자신은 물론 효성그룹도 사실 무근이라고 했지만 조석래 명예회장은 사석에서 ‘반도체를 해야 효성이 성장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삼형제에게 안정적으로 (효성을) 넘겨주기 위해서라도 인수를 하고 싶었다’는 뜻을 여러차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의 난 전까지만 해도 삼형제의 경영능력은 누가 앞선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비슷했고, 조석래 명예회장은 그런 삼형제의 능력을 더 보기 위해 후계자 선정을 미뤘다. 되돌아보면 그의 주저가 지금의 결과를 낳은 원인이 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차남과 외롭게 형님 빈소 찾은 조양래 명예회장


한편, 이날 오후 1시 20분께는 고인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그룹) 명예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1937년생으로 올해 87세인 조양래 명예회장은 건강에 대한 우려와 달리 빈소로 들어설 때는 조현범 회장의 부축 없이 혼자서 걸어갔다. 다만 고령인 탓에 취재진 등을 바라보는 눈빛은 초점이 흐려 보였다.

1시간 가량 머문 뒤, 조현범 회장의 손을 잡고 나서는 조양래 명에회장은 형을 떠나보낸 슬픔이 컸던 듯 다소 힘들어해 하는 모습이었다. 질문을 하기 위해 기자들이 달려들자 조현범 부회장은 “아버지가 귀가 잘 안들리신다. 질문은 저에게 해달라”고 했다. 조양래 명예회장은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어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조현범 회장은 “아버지(조양래 명예회장)가 막바지에 (고인을) 못 봐서 매우 슬퍼했고 얼굴을 아쉬워했다”며 “(고인이) 막바지에 정신적으로나 몸적으로나 많이 고생을 하셔서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좋은 곳에 가셔서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이 차남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과 함깨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이 차남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과 함깨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생을 마무리하는 말년에 형제간 갈등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조양래 명예회장으로서는 생전 형이 했을 고민을 많이 떠올렸을 듯하다. 한국앤컴퍼니그룹 형제의 난도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 차녀 조희원씨는 부친이 조현범 회장을 후계자로 결정한 것에 반발해 결정을 무효해 달라는 법적 소송과 주주총회 표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모자라 조현범 회장의 경영상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등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이 괴정에서 조양래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를 두고 성년후견인심판이 진행됐다.

아버지자 조문한 이날 조희경‧조현식‧조희원 남매는 큰아버지 빈소를 찾지 않았다. 조양래 명예회장이 더 초라해 보였디. 이들 남매는 다른 날 별도로 조문할 수도 있겠지만, 효성그룹 측에서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1966년 설립해 60주년을 앞두고 있는 재계 24위의 효성을 필두로 한 ‘범 효성가’는 3세로의 경영권 승계 괴장에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가족의 최고 어른인 조석래 명예회장은 떠났지만, 이후에도 두 그룹의 자식들의 갈등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범 효성가가 현재의 과정을 성장통을 보고, 상처를 빨리 매듭짓고 기업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