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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자의 으랏차차] 강철의 본질을 담은 오프로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브리타니아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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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자의 으랏차차] 강철의 본질을 담은 오프로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브리타니아 블루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짙은 네이비 톤의 브리타니아 블루(Britannia Blue) 외장은 제법 헤비한 무게감을 전한다. 영국 해군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처럼, 이 차는 화려한 조명보다는 야전에서 진가를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광택을 최소화한 단단한 톤은 본질을 숨기지 않는 느낌이다.

도로 위에서 이 차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현대적 SUV’가 아닌 ‘전통 오프로더’의 향기다. 각진 차체, 노출된 도어 힌지, 직선 위주의 패널, 범퍼와 루프 레일의 실용적 배치까지 쓸모를 위한 디자인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걸 모방의 성공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전혀 불쾌하지가 않다. 랜드로버 디펜더가 조금 더 세련된 SUV로 진화한 지금, 오히려 옛것의 모습을 띠고 있는 이 차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만, 내면의 본질도 더 나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보닛 아래에는 BMW의 직렬 6기통 터보 엔진이 자리한다. 엔진 자체만으로 이미 전통을 등에 업는다. 가솔린 모델은 3.0L 직렬 6기통 터보 유닛으로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450Nm을 발휘한다. 이번 시승차다. 디젤 모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3.0L 직렬 6기통 터보 유닛으로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 550Nm를 발휘한다. 개인적으로는 디젤 모델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변속기는 ZF에서 공급한 8단 자동을 넣었다. 단순한 출력 수치 이상으로 ‘균형 잡힌 힘’을 제공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급가속에서 쏟아내는 응답성도 인상적이지만, 더 매력적인 건 중저속 영역에서의 ‘여유’다. 100km/h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약 8.6초(가솔린)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달려볼 일은 없다. 세팅 자체가 과격한 녀석이 아니다. 성격은 온순하다. 험로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함인 듯하다.
그레나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BMW 엔진만큼이나 섀시에 있다. 요즘 보기 힘든 박스 섀시(레더 프레임) 구조를 채택한 덕에 강성과 내구성은 동급 SUV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카라로(Carraro)에서 공급한 빔 액슬은 거친 노면에서도 흔들림을 최소화하며, 에이박(Eibach) 코일 스프링이 조합된 서스펜션은 험로에서 충격을 효과적으로 걸러낸다. 여기에 트레멕(Tremec)사의 2단 트랜스퍼 케이스를 채용해, 저속 오프로딩에서도 토크 손실 없이 안정적인 구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35도에 가까운 진입각과 36도에 달하는 탈출각, 264mm에 이르는 지상고, 최대 800mm 도강 능력은 수치상으로만 보아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실제로 주차장 진입로를 오르내릴 때조차, 일반 SUV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찰 없는 단단한 밀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일상 주행보다는 오프로더 본연의 태생적 강점을 극대화한 셈이다.

그레나디어의 강점은 실용성에서도 빛을 발한다. 최대 적재 용량은 약 2000L, 견인 능력은 3500kg, 윈치 출력은 1만2000파운드 이상이다. 이 수치는 캠핑 트레일러, 보트, 혹은 대형 카고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데 충분하다. 상용 SUV와 오프로더 SUV의 경계에서, 이 차는 명확히 ‘작업까지 가능한 오프로더’를 지향한다.

지난 주말 시승한 코스는 도심 주행과 일부 굴곡진 도로가 혼합된 환경이었다. 도심에서는 사실 운전이 힘들다. ‘빠른 SUV’가 아니라 ‘단단한 오프로더’라서다. 유턴에서는 한 번에 돌아나가는 일이 없다. 주차장에서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데는 애꿎은 노력도 필요하다. 오프로드를 위한 세팅이라 할 말은 없다. 트랙 자동차를 두고 공도에서 왜 이모양이냐고 불평할 수 없는 이유와도 같다. 대신, 직선 주행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이며 보이는 시야도 꽤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일반 SUV와는 달리, 이 차의 진가는 속도보다는 상황 대응력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포장 도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요철이나 배수구 단차를 통과할 때 차체가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서스펜션이 거칠게 압축되거나 반발하지 않고, 묵직한 바디와 프레임이 그대로 상황을 제어하는 느낌이다. 이런 안정감은 특히 오프로딩에서 절대적인 신뢰로 이어진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ZF 8단 변속기의 세팅이 고급감을 선사한다. BMW 특유의 부드러움을 그대로 계승했다. 다만, 차체 설계 특성상 120km/h를 넘는 고속 주행에서는 공기역학적 한계가 드러난다. 풍절음은 약간 나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준이다.

브레이크 페달의 감각은 생각보다 정교하다. 오프로드 SUV답지 않게 제동 초반부터 단단히 물어주는 느낌이 있어, 도심에서의 제동 안정성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인테리어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인테리어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실내는 ‘럭셔리’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기능주의 설계다. 호불호가 분명할 것이라는 얘기다. 12.3인치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에드 오토 연동 등은 작동되지만, 거의 대부분은 수동의 옛 감성을 가지고 있다. 센터페시아에 있는 수십 개의 토글 스위치와 다이얼은 군용 장비 같다. 대부분의 조작부는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된 것. 주요 기능은 직관적인 물리 버튼으로 제공된다.

또한, 바닥은 방수 소재로 마감돼 있어 진흙이나 흙탕물이 묻어도 세척이 간편하다. 실내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보다는 ‘현장에서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차량’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기능주의적 설계 속에서도 현대 SUV의 편의 장비를 간과하지 않았다. 실시간 4륜 구동 상태 모니터링 시스템과 오프로딩 전용 주행 보조 기능(경사각, 타이어 공기압 등 표시) 등으말한다. 다만, 최신 SUV에 비해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수준은 단순한 편이다. 자동 긴급제동, 차선 유지 보조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탑재했지만, 첨단 반자율 주행 기능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좋게 말하면, “운전은 사람이 한다”는 명확한 차량 철학이 작동한 것이다. 이네오스의 원칙은 차량을 운전하는 재미를 중시하는 사용자들에게 오히려 매력적인 포인트다.

일반 SUV에 비해 승차감은 단단한 편이다. 특히 17인치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를 장착한 시승차는 노면 정보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서스펜션의 세팅 자체는 의외로 세련돼, 오프로드 주행에서는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오히려 포장도로에서는 조금 거친 승차감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를 불편함이라기보다 “차와 함께 노면을 읽는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면 좋을 거 같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브리타니아 블루는 단순한 ‘SUV’라는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차량이다. 요즘 SUV들이 점점 세단화·도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이 차는 과감하게 ‘본질’로 돌아갔다. 각진 디자인, 박스 섀시, 영국 해군에서 영감을 받은 짙은 블루 톤의 도장, 그리고 BMW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힘까지.

물론 도심에서 완벽히 매끄러운 주행 질감을 원한다면 이 차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을 위한 기능”, “험로를 정복하기 위한 성능”이라는 오프로더 본연의 정체성에 집중한다면, 그레나디어는 어떤 지형에서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수많은 컬렉션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용도로 말이다. 가격은 1억 초반대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