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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항의 문화칼럼] 현대인들이여, 감성지수를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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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항의 문화칼럼] 현대인들이여, 감성지수를 높여라

최근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은 감성지수가 높은 인재를 선호한다. 감성지수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뜻한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인간적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일본IBM은 감성지수를 바탕으로 직속상관뿐 아니라 동료와 부하 직원도 평가작업에 참여하는 방식을 관리직의 인사고과에 도입했다. 이처럼 감성지수는 여러 기업에서 인재를 뽑는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많은 현대인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은 배제한 채 앞만 바라보며 달린다. 그들의 문화는 ‘인스턴트 문화’다. 웹툰, 짤(편집된 동영상) 등 1-2분의 짧은 만화와 영상을 즐겨 보고 짧게 웃고, 쉽게 잊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다시 달린다. 벅참, 포근함, 떨림, 따뜻함...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느낄 기회는 점점 “good or bad”로 단순하게 굳어간다.

이럴 때, 내 온몸의 감각을 열어주고 감성지수를 높여줄 만한 뭔가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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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야금 연주자 곽은아 교수의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 공연을 보았다. 진양조로 느리게 시작해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휘모리에 이르는 일반적인 구성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점점 빨라지는 것은 장단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내 심장박동도 휘모리의 속도감만큼 빨라져 있었다.

음악이 시작해서 끝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살면서 느낀 온갖 감정이 재현되었다.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처럼 일반적인 감정은 물론이고 내가 잊고 지냈던 낯선 감정까지 온갖 감정이 다 밀려들었다.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픈가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찌릿찌릿했다.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가 하면,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죽음 직전이 되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고 한다. 연주가 끝났을 때 내가 꼭 그랬다. 인생을 아주 빠른 속도로 되돌아 본 느낌이었다.

기起(밀고) - 경耕(당기고) - 결結(맺고) - 해解(푼다)

우리의 민속음악엔 ‘기경결해’라는 것이 있다. 음악의 템포를 빠르게 몰아가거나, 점점 느리게 풀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의 정점을 향해 각 악기의 역량을 발휘해 극적으로 표현하거나 긴장감을 완화시켜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맛보게 해준다. 이런 ‘기경결해’는 관객들에게 정신적 포만감을 안겨준다.
완연한 봄이다. 많은 공연장에서 다양한 국악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한번쯤 죽어가는 감성지수에 심폐소생술 한다는 기분으로 ‘산조’ 한자락 들으러 연주회장으로 발걸음 해보는 건 어떨까?
이주항 국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