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량특집'은 역사가 깊은 한국 전통 콘텐츠이다. 언제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50년대 신문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납량특집 방송극을 6일에 걸쳐 방송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다. 이것을 토대로 추정해보면 무려 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에어컨이나 제대로 된 선풍기가 없던 시절 공포물은 물리적인 체온하락 효과를 일으키는 대체물 역할을 했다.
공포는 아마 인간의 심리를 가장 빠르게 흔들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만약 슬픈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서서히 쌓여가듯 천천히 밀려올 것이다. 순간적인 슬픔을 느끼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공포라는 감정은 느닷없이 몰아치는 태풍과 같다. 순간적으로 전신을 감싸 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뛰게 만든다. 이런 시간의 특이성 때문에 공포물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형식은 장편이 아닌 단편이다.
사실 단편은 장편 못지 않게 창작하기 어려운 형식이다. 분량의 한계성을 안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늘 소재의 고갈과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목할만한 옴니버스 공포 웹툰이 많이 등장했다. 어려운 도전을 이겨내고 납량특집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공포 웹툰을 소개하고자 한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기기괴괴>는 <소설가 K>, <절벽귀>등을 선보인 오성대 작가의 옴니버스 시리즈 웹툰이다. 다양한 소재를 특유의 내러티브와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냈는지 궁금할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을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기본기가 확실하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복선을 확실하게 회수하면서 반전도 이끌어낸다. 더군다나 에피소드가 끝나면 <장르파괴괴>라는 특별편을 편성해 완급 조절을 하는 센스도 갖췄다. 오성대 작가는 이런 실력을 인정 받아 영화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절벽귀>는 이미 영화로 제작됐고, <기기괴괴>의 에피소드인 <성형수>도 영화로 제작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피소드 중에서 <성형수>와 함께 <아내의 기억>, <상자 키우기>, <키베이루의 서재>편을 추천한다.
짬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미궁>은 아트토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라토 작가의 옴니버스 공포 웹툰이다. 매화 완결되는 짧은 이야기지만 독특한 작화와 연출로 충분한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미궁>이 더욱 우리를 무섭게 만드는 이유는 작가가 우리 주변의 친숙한 공간, 물건 등을 소재로 쓰기 때문이다. 1화인 <컬렉션>에서는 평범한 사무실을 소재로 썼고, 5화 <타이즈>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는 '옷'을 소재로 했다. 이 밖에도 SNS, 풍선, 다이어트, 클럽, 고양이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소재가 <미궁>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사용된다. 우리 주변의 일상이 공포의 현장이 되는 체험을 선사한다.
다음웹툰에서 연재 중인 <사컷 : 죽음의 소리>는 공포 웹툰 중에서도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매화를 4컷 만화 형식으로 제작해 총 3개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4컷 만으로 공포를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작가는 이 3개의 이야기가 이어지게끔 구성한다. 너무 짧은 분량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작가는 전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무서움을 느낄만한 포인트를 부각하거나 압축해 표현하는 것으로 훌륭하게 기승전결을 마무리한다. 언제 어떻게 공포 심리를 자극할지 예측을 할 수 없어 마지막 컷을 보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기가 두려울 정도이다.

김성인 짬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