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덩굴은 반상록성 덩굴식물로 꽃의 향기가 좋고 잎이나 줄기, 꽃까지 약재로 쓰이는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유익한 식물이다. 메꽃이나 나팔꽃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줄기를 감는 것과 달리 인동은 시계 방향으로 줄기를 감으며 뻗어간다. 잎겨드랑이에 한 쌍으로 달리는 꽃은 흰색으로 피었다가 수정이 되면 노란색으로 진다. 꿀을 찾는 벌들에게 꿀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 헛수고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인 듯싶다.
올봄엔 이상기온으로 인해 온갖 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화르르 피었다 지는 바람에 꿀을 채취할 시간이 모자라 벌의 숫자가 줄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름마저 빨리 시작되는 모양이다. 영국의 역사가 윌리엄 캠던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고 했지만 일찍 찾아든 더위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도 고통과 시련을 준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비싼 전기료도 문제거니와 고온 현상이 지속되면 생태계는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단순히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바람에 꽃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투정 부릴 정도가 아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봄이 와도 진달래꽃을 볼 수 없다면, 여름이 되어도 금은화를 볼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반칠환 시인은 ‘노랑제비꽃’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노랑제비꽃 한 송이가 피는 데에도 숲이,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듯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며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이라 착각하면 안 된다. 인간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두가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유례없는 폭염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거리에 나서면 담장마다 붉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나고 먼 산빛은 하루가 다르게 녹음으로 점점 짙어지고 있다. 모란이 진 뒤에 피어난 작약의 화려한 자태에 시선을 빼앗기고, 쥐똥나무 짙은 향기에 취하다 보면 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기후변화를 불러온 막중한 책임이 있는 우리에게 불평할 권리가 있기는 한 것인가. 저 여린 꽃들도 계절 따라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는데 폭염의 여름이라 해도 견디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기후변화를 불러온 막중한 책임이 있는 우리로서는 불평할 권리도 없다. 인동덩굴이 추운 겨울을 견디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듯 늘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 여름을 즐길 여유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