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5 13:42
봄이 무르익고 있다.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십 리씩 깊어지는 봄은 이제 절정에 이른 듯하다. 산빛은 어느새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짙어지며 겨울빛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제 숲은 초록의 기운이 꽃의 붉은 기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속에 벼르던 진달래능선을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북한산 자락에 깃들어 살면서도 진달래능선의 진달래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진달래능선을 따라 산행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정작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봄엔 기회가 없었다. 북한산은 삼각산·삼봉산 같은 여러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봄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빛나는 산’이라는 뜻의 화산(華山2026.04.08 13:16
온통 벚꽃 천지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주말 오후 벚꽃 찬가와도 같은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꽃그늘마저 환한 우이천의 벚꽃나무 아래를 걸었다. 36만 그루의 진해 벚꽃 터널의 장관엔 못 미친다 해도 우이천의 벚꽃도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눈부시고 화사하다. 은빛 햇살 아래 뭉게뭉게 피어난 벚꽃은 세상을 더 환하게 밝혀주고, 하늘을 더 푸르게 만들어 준다. 벚꽃 나무 아래에 서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고, 두께가 느껴지지 않는 흰 꽃2026.04.01 13:25
하루가 다르게 봄빛이 짙어지고 있다. 도봉산 자락에 깃들어 산 뒤로 도봉산은 눈만 뜨면 보이는 산이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산이다. 정다운 이웃 같고 든든한 배후가 되어주는 산이라서 자주 찾는 산이기도 하지만 그 산 어딘가에 있다는 망월사는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 망월(望月)이란 말에 스스로 마음에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동안 생각만 했을 뿐 감히 망월사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올봄을 특별하게 기억할 궁리 중에 망월사를 떠올리곤 곧장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망월사역에 내려 산을 향해 걸으며 온몸으로 봄기운을 느낀다. ‘자연은 신이 갈아입는 옷’이라고 했던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처럼 자연2026.03.25 17:20
산수유가 피었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가 우연히 눈길이 닿은 곳에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날마다 지나는 골목이건만 어제는 꽃을 보지 못했는데 간밤에 꽃을 피운 것일까. 볕바른 담장 가에 까치발로 서서 핸드폰으로 산수유꽃 사진을 찍으며 내가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밤새 꽃이 피어난 거라고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의 말처럼 꽃은 제 안이 뜨거워져야 핀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꽃은 핀다. 산수유가 핀 걸 보니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산수유 가지에 꽃망울을 터뜨린 봄볕의 따사2026.03.18 12:57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1970년대 가수 박인희가 부른 ‘봄이 오는 길’의 일부다.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중 하나인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봄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인지, 우리가 봄을 찾아 나서는 것인지 가늠이 안 돼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한다. 야생화를 좋아하다 보니 겨울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일찍 피어난 복수초나 바람꽃 등을 찾아 잔설에 덮인 계곡을 헤매고 다니는 내게 봄은 늘 찾아 나서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찾아 나서든, 절로 찾아오든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높은 산엔 희끗희끗 눈이 남아있고 꽃샘바2026.03.11 14:18
철원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고향 포천과 잇닿아 있는 데다 군 생활 3년을 보낸 곳이라 익숙하나 마냥 친근할 수 없는 가깝고도 먼 고장이다. 직탕폭포, 승일교, 고석정, 순담계곡, 와수리, 육단리, 매월동 등 군복을 입고 있던 3년 동안 철원의 산야를 발바닥 아프게 돌아다녔다. 오죽하면 제대하면 철원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까. 하지만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햇볕 속에 된장 익어가듯 고통마저도 세월을 두고 삭히면 힘들었던 기억은 흐려지고 추억이란 당의에 싸여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시간의 물살에 씻긴 추억들은 그리움의 음표를 달고 다시 나의 소매를 그곳으로 슬쩍 끌어당긴다. 사회에 나2026.03.04 13:17
모처럼 시간을 내어 포천의 자랑인 직두리 부부송(夫婦松)을 만나러 갔다. 차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산빛이 한결 밝아진 듯하다. 우수가 지나면서 나무들이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올린 모양이다. 겨우내 칙칙하던 솔잎에도 생기가 돈다. 고향 친구들로부터 부부송에 관한 이야기는 진즉에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부부송을 만나러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무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인 소나무는 암수딴그루인 은행나무와 달리 자웅동주(암수한그루)라서 암수 구분이 없다. 그러니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0호로 지정되어 '부부송'이란 이름을 얻은 나무2026.02.25 13:23
우수(雨水) 지나니 개울물 소리가 한결 명랑해졌다. 입춘이 마음에 봄을 세우는 시기라면 우수는 봄기운이 물처럼 몸을 흐르기 시작하는 때라 할 수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도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하고, 선잠을 깬 버들강아지도 하나둘씩 고개를 내미는 것도 우수 무렵이다. 복수초를 보기 위해 홍릉수목원에 다녀왔다. 홍릉수목원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입춘이 막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우수가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간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지만, 복수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황금잔 같은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반겨주었다. 복수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2026.02.18 19:25
마음속에 봄을 들이던 입춘도 지나고 남녘에선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간간이 날아오는데 내가 사는 이곳엔 여전히 겨울이 깊다. 산책길에 꽃나무 가지에 눈길을 주어봐도 어디에도 봄빛이 스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가로변의 벚나무들도 여전히 겨울잠에 취해 있는 듯 물을 길어 올리는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좀 더 일찍 꽃을 볼 욕심으로 꽃나무 가지를 꺾어 화병에 꽂을까 생각하며 개나리 울타리를 서성이다가 꽃 피지 않는 나무라도 해거리 중일지 모르니 함부로 꺾지 말라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나서 빈손으로 돌아섰다. 봄을 생각하면 까닭도 없이 자꾸만 달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엔 시만 한 것도 없다. “꽃으로2026.02.11 13:20
살갗을 에는 바람이 맵차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속담이 헛말이 아니듯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한파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오전 내내 집안에 들어앉아 있다가 콧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볕 좋은 오후에 천변 산책에 나섰다. 솜털 외투로 꽁꽁 싸맨 백목련 꽃눈이나 담장의 개나리 가지를 살펴봐도 봄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볕바른 양지쪽 마른 풀 사이로 겨울을 잘 견딘 로제트 식물들이 푸른 빛을 찾아가고, 흐르는 물속에 초록 기운을 머금고 있는 한 뼘쯤 자라난 물풀들이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류구의2026.02.04 13:38
아침 산책길에 흰 눈에 반쯤 덮인 남천의 빨간 열매가 눈을 찔러왔다. 남아시아와 중국이 원산지인 남천은 상록관목이다. 한겨울에도 선홍색의 열매를 달고 있어 ‘겨울 정원의 보석’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화재나 액운을 막아준다고 여겨 집 정원이나 사찰 주변에 많이 심어온 나무다. 입춘을 코앞에 두고 밤새 눈이 내렸다. 눈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남천 열매를 보았으니 새봄엔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사람들은 건강과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기원하는 입춘첩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입춘첩을 붙이는 것은 우리 고2026.01.28 13:36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듯하다. 지구 온난화로 한겨울에도 좀처럼 빙점 아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겨울에 익숙해졌던 몸이 혹한의 추위 앞에서 잔뜩 움츠러들었다. 동장군의 위세가 드세긴 해도 마냥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바람도 쐴 겸 포천의 화적연을 찾았다. 국도를 벗어나 화적연을 찾아가는 도로는 반쯤은 채 녹지 않은 눈에 덮여 있었다. 화적연(禾積淵)은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휘돌아 나가며 연못처럼 보이는 곳에 볏단을 쌓아놓은 노적가리 형상의 바위가 솟아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볏가리소’다. 피서객과 캠핑족들이 붐비는 여름과 달리 강과 어우러져 고고한 풍광을 간직한 눈 덮인2026.01.21 13:39
나이 한 살 보탠 티를 내는 것일까. 달력 한 장 바꾸어 걸었을 뿐인데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꾸 삐걱거린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눈이 내렸는지 온 동네가 눈에 덮여 흰빛으로 가득하다. 동네 골목길을 돌아 둘레길로 이어지는 숲 들머리에 이르니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발자국을 따라 둘레길로 들어서니 잎을 떨구어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흰 눈꽃이 피어서 허룩하던 숲에 오히려 생기가 도는 듯하다. 밤새 아우성치던 골바람도, 숲속 빈터의 낙엽들도 흰 눈에 덮여2026.01.14 13:10
해가 바뀌고 첫 산행이다, 가볍게 시작하려고 택한 트레킹 장소가 안산 자락길이다. 출발지인 독립문역에 내리니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맵차다. 낮은 기온 덕분에 공기는 맑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활엽수들이 잎을 모두 떨군 실가지로 얼음장 같은 파란 겨울 하늘을 부지런히 비질하고, 덤불 사이로 몇 마리의 참새들이 발소리에 놀라 쳐다본다.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은 7㎞ 길이의 전국 최초 순환형 무장애 탐방로로 장애인·노약자·어린이 등 보행 약자는 물론 휠체어·유아차도 쉽게 숲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한강·인왕산·북한산·청와대 등 다양한 조망도 즐길 수 있다. 안산(鞍2026.01.07 14:12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선물 같은 새해를 맞아 우리는 저마다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새해 작은 꿈 하나 있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나서는 일이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별들은 언제 잠들고 일어나는지/ 그 짙은 어둠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누가 훔쳐 갔는지/ 꽃씨들은 눈 속에 살아 있기는 한지/ 산그늘은 왜 마을을 들러 가는지/ 가난은 어째서 평화로운지/ 잠시 마당을 서성이는 일이다// 오늘 밤은 별이 참 많네,/ 들어와 책상에 앉는 일이다” –김용만의 시 ‘꿈’ 일부신문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던 것은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서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로부터 수많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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