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경영칼럼] 아마존에 다니는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공유
0

[경영칼럼] 아마존에 다니는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김다혜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
김다혜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
'Gen-Z 기기괴괴'가 요즘 화제다. 그런 이야기가 돌 때마다 괜스레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는 내가 그보다 더한 신입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시작을 최강의 보수 조직 모 계열사 인턴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까만 정장을 입고 사장님 취임식에 참석할 때, 나는 혼자 노란색 원피스를 입곤 꾸벅꾸벅 졸았다. 리더들과 친해지고 나서는 퇴사할 때까지 그들을 모두 '언니'라고 불렀다. 물론 업무시간에도 '언니 제 자리로 와봐요!'라고 그들을 호출했다. 그들의 성대모사를 연습해서 눈앞에서 그들을 따라 하며 특유의 말투를 놀렸고,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고, 주말에 만나서 놀자고 말했다. 상무님이 점심 같이 먹자고 하면 "오늘 구내식당에 떡볶이 나와서 안 돼요." 하면서 거절하는 건 너무 자주 있는 일이었고. 아아! 그 시대에 블라인드가 없어서 망정이지, 있었다면 몇 번쯤은 오르락내리락했을 것 같아 아직도 아찔하다.

그중에 대미는 우리 팀이 잘못하고 있는 일을 정리해 팀장님께 보여드린 사건이다. 당시 나는 물류 포워딩이 끝나면 금액을 청구하는 일을 담당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계속해서 우리 팀에 결론적으로 마이너스인 조건으로 일해 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비스 금액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간 데이터를 엑셀로 정리했다. 다만, 이걸 사수에게 보여줄 생각을 못 하고 바로 팀장님께 보여 드렸다. 팀장님은 칭찬하셨고, 바로 과장님·대리님·사수를 진실의 방으로 소환하셨다. 한동안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들에게는 클라이언트 및 해외의 모든 법인과 연락해 서비스 금액을 조정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정말이지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 같다. 이 일이 있고 바로 내가 깨달았다거나, 행동 교정의 피드백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장님·대리님·사수로부터 아무런 응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팀에 기여했다는 생각으로 하하호호 즐겁게 회사를 다녔고 행복하게 인턴십을 마무리했다.
찾아가서 감사를 드리고 싶을 만큼, 나의 선배들은 정말 인격자들이었다. 아마 내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셨던 것 같다. 지금은 '사회화'되어 절대 하지 않는 일이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사회화'되어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생길 여지만 만들어져도 피하느라 바쁘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K-정신을 체화한 결과 중의 하나가 회의 시간을 포함해 '물어야 할 질문을 묻지 않는 것'이다. 회의 시간에 궁금한 점이 있어도 혼자 속으로 추측하고 넘어간다든지, 끝나고 나 혼자 구글링해서 알아본다든지, 또 타인의 업무결과를 받았을 때도 부족한 점에 대해 '어떤 이유로 이렇게 하셨을까요?'라고 의도를 묻기보다는 그냥 내가 내 방식대로 추가 정리해서 넘기곤 한다. 특히 나는 시각적인 정보는 빠르게 받아들이는 반면, 청각적인 정보는 잘못 받아들이거나 늦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되묻고 싶을 때가 많은데도 '나만 못 알아들었을 거야. 그리고 이걸 티 내면 안 돼'라며 지나친다.

신형철 평론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이런 뉘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 믿는다고. 나는 이 구절을 종종 입안에서 곱씹는다. 나는 당연하게 A로 갔을지언정, 타인은 자연스럽게 B로 갈 수도 있는데, 나는 B로 간 타인을 '나빠서, 바보라서,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되묻지 않아왔다. 생각의 편리함만으로 뭉개 버릴 수 없는 가치가 숨어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질문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조직의 문화에서부터 '끝까지 묻기'로 넘어가는 일은 일견 어려운 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마존은 몇 가지 룰을 만들어 '끝까지 묻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우선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회의의 내용과 관련해 1페이지 혹은 6페이지의 글을 쓰게 한다. 이것을 1-페이저 혹은 6-페이저라고 부른다. 회의 주최자가 1-페이저 또는 6-페이저를 쓴 뒤에는 그의 매니저에게 첨삭을 받도록 한다. 이것을 바 레이징(Bar-raising) 과정이라고 부른다. 회의가 시작되면 이것을 읽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질문하고 싶은 것들을 미리 메모하여 순서대로 질문을 주고받게 한다. 그리고 바보 같은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심리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반대 의견도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과 비용의 최소화를 위해 더 높은 직급의 매니저들끼리 만나 이야기해 합의를 보도록 하는 '에스컬레이션 테크닉'을 활용하게 한다.

이전에는 '끝까지 묻기'와 같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교육이나 캠페인적인 것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우리 회의 시간에 ~해요'와 같은 Do & Don’t 포스터를 만들어 붙인다든지, 생각을 나누는 워크숍을 만들어 FT를 한다든지 같은 것이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강제하는 제도가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은 강하다. 그러한 제도는 개개인의 성격적인 특성이나 장단점을 뛰어넘어 행위하게 한다. 특히 나같이 어떤 사람에게 거절이나 요청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PM으로 기능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아무리 적극적이고 의견 개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의견을 내면 모난 돌 취급받는 곳에 있다면 그곳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내향적이고 의견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제도가 견인하는 조직문화가 잘 작동하는 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아마존에 다니는 내향적인 사람, 주목받기 싫어하는 PM의 하루를 상상해 보았다. 그의 일상 삶은 조용하게 나서지 않는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존에서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내외적으로 들끓으며 이리저리 튀는 하루였을 거라 상상했다. 우리의 조직도 개인의 특성과 행동양식을 뛰어넘어 행위하게 하는 문화를 가졌는지, 그러한 문화를 견인하는 시스템(제도)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김다혜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