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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LCK 개막날 터진 '1000억원 적자' 논쟁, 책임은 모두 라이엇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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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LCK 개막날 터진 '1000억원 적자' 논쟁, 책임은 모두 라이엇 몫인가

리그 구성원 간 신뢰 붕괴가 무엇보다 위험

사진=이원용 기자
사진=이원용 기자
게임 팬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 리그 첫날이 명승부와 응원의 장이 아닌 책임 공방과 비판의 장으로 얼룩졌다. e스포츠 구단들이 원작 개발사이자 운영 주체인 라이엇 게임즈에 구단들의 만성적인 경영난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전반기 리그 개막을 약 3시간 앞둔 17일 오후 2시경, 한국e스포츠협회(KeSPA)에 출입 매체로 등록된 곳의 기자들에게 익명으로 '지속 가능한 LCK를 위한 공동 입장문'이란 제목의 문건이 전달됐다.
자신들이 LCK 소속 10개 팀 중 일부라 밝힌 이들은 "LCK가 2020년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 후 3년 동안 10개 게임단은 1000억원 이상의 누적 적자를 보고 있으나, 라이엇은 이를 개선할 구체적 계획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했다"며 "리그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LCK가 적극적으로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LCK 전담 인력 투자 확대·커미셔너 신임권 공유 △리그 사업 구조 합리적 개선 △타 프로 스포츠 대비 적은 LCK의 경기 수 문제 대응 △훈련 환경 개선을 위한 게임 기능 상 문제 해결 △LCK IP 기반 확장적인 사업 모델 기획·실행 등 다섯 가지 요구 사항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요구했다.

입장문이 익명으로 작성된 이유에 대해선 "LCK 팀들 모두가 변화의 방향성에 큰 이견이 없었으나, 절차와 방식 등 차이가 있어 참여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 "개별 프로게임단의 입장 표명은 리그로부터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와 산하 LCK 사무국은 이에 대해 다음날인 18일 LCK 경기가 열린 시점까지 별다른 공식 입장문을 내놓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이에 관한 문의에 "구단들의 입장문에 대해 확인 중에 있다"며 직접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 e스포츠 만성 적자, 라이엇에서도 인정한 '모두의 문제'


존 니덤 라이엇 게임즈 글로벌 e스포츠 총괄. 사진=트래비스 개포드(Travis Gafford) 유튜브 채널이미지 확대보기
존 니덤 라이엇 게임즈 글로벌 e스포츠 총괄. 사진=트래비스 개포드(Travis Gafford) 유튜브 채널

LOL e스포츠 구단들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업계에서 상식으로 취급된다. 라이엇의 존 니덤(John Needham) 글로벌 e스포츠 총괄이 지난해 7월 공개적으로 "당사는 100개 이상의 프로 구단을 비롯한 업계인들이 비즈니스적 불확실성으로 겪는 어려움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프랜차이즈 제도는 이러한 재정적 적자를 모두 힘을 합쳐 이겨내 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2020년 당시 가입비로 100억원을 책정하고 5년간 20억원씩 분할 납부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리그 매출 전체에서 각 팀당 5%, 모두 50%를 매년 팀들에게 분배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정훈 LCK 사무총장은 프랜차이즈 도입 당시 "LCK는 수익성이 좋은 리그인 만큼 4년 차 정도에는 흑자 전환 내지 수익 달성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도입 후에도 LCK 구단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LCK가 지난 3년 동안 분배한 수익은 모두 10억원에 미치지 못했으며, 그 마저도 매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프랜차이즈 도입 3년차, 브리온의 메인 스폰서 프레딧이 네이밍 스폰서를 중단했다. 2023 시즌 중반 OK저축은행이 새로이 후원을 결정할 때까지 브리온은 메인 스폰서 없이 운영됐다.

같은 해 샌드박스 네트워크는 아예 구단 자체를 매각, 새로운 모기업 포바이포(4by4)가 인수했고 올해 들어 구단명을 피어엑스(FearX)로 바꿨다. 브리온과 피어엑스(당시 리브 샌드박스)는 2023년 하반기 시즌 최종 성적 7위, 8위로 나란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LCK 사무국도 할 말은 있어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현장의 모습. 사진=LOL e스포츠 공식 유튜브 채널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현장의 모습. 사진=LOL e스포츠 공식 유튜브 채널

시청자들은 대체로 LCK 사무국보단 구단들의 편을 드는 모양새다. 앞서 사무총장이 '4년 내 수익 달성'을 전망했음에도 리그 분배 수익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올해 스프링 스플릿 들어 구단별 팬 미팅이 '경기장 공간 부족'을 이유로 중단하는 등 사무국 조치에 관한 불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라이엇을 향한 비판 중에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근거들도 제시되고 있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익명의 입장문에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가 2022년 3864억원의 매출을 거둬들였으며 이 중 922억원은 로열티, 927억원은 배당금 명목으로 본사로 이전됐고 이를 제외한 영업이익도 996억원에 달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참고용 외부 자료로 제시됐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매출의 대부분은 LCK가 아닌 라이엇이 한국에 서비스하는 LOL과 '발로란트' 등 게임에서 발생한 매출로 LCK가 이들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계량하긴 어렵다. 로열티와 본사 배당금 역시 계약에 의한 결과일 것인 만큼 한국 지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라이엇과 LCK 사무국이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 손을 놓고 있진 않다. 올해 LCK에는 주전 선수 5인의 연봉에 상한선을 두고 이를 초과한 팀에 사치세를 부과하는 균형 지출 제도, 이른바 '샐러리 캡'을 도입했다. 선수의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지정 선수 특별 협상 제도' 또한 준비하고 있다.

오랜 기간 LCK를 관전해왔다 밝힌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매 경기 몇만 장 단위 입장권을 파는 프로 스포츠 팀들도 대부분 적자 운영을 하는 것이 현실인데 e스포츠는 오죽하겠나"라며 "적자의 원인이 대체로 세계적인 연봉 협상 경쟁에 따른 인플레이션일 텐데, 라이엇이 샐러리 캡 제도 도입 이상으로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리그 구성원 사이 신뢰 붕괴가 가장 큰 위험


2024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스플릿에 참여한 10개 구단 로고. 사진=LCK 사무국, 한국e스포츠협회이미지 확대보기
2024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스플릿에 참여한 10개 구단 로고. 사진=LCK 사무국, 한국e스포츠협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1000억원 적자 논쟁에 있어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보단 이러한 논쟁이 리그 개막일에 벌어졌다는 것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LCK 구단들이 '리그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익명 입장문이 주는 불신감을 감수했다는 점, 라이엇 게임즈와는 별개의 주체인 KeSPA의 미디어 목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LCK의 구단들과 리그 사무국, 라이엇 사이에 깊은 골이 파인 것이 아닌지 우려될 정도다.

심지어 LCK를 대표하는 구단 T1의 조 마쉬 대표는 입장문 공개 후 3시간 만에 X(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다른 9개 팀에 이번 문건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며 "T1은 공식 문건 발표를 대신해 LCK 측과 비공개로 대화를 나눴다"고 선언했다.

LCK 소속 구단과 라이엇 간의 갈등을 넘어 구단들조차 의견 차이를 내며 '동상이몽'하고 있는 것이 LCK의 현주소다.

구성원 사이의 깨진 신뢰가 LCK 공동체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프로게이머 지망생들, 팬심을 갖고 지켜봐온 시청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e스포츠 팬들은 불과 2개월 전에도 '오버워치' 프로 리그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 이른바 '롤드컵'은 단 1개월 간의 대회만으로 20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LCK에서 3년 동안 이어진 1000억원의 적자는 리그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 붕괴에 비하면 작은 문제일 수도 있다. 리그와 구단들이 하루 빨리 대화의 물꼬를 트고 무너진 신뢰를 쌓기 위한 진정성 있는 소통에 나서길 기원한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