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힌 줄 알았던 미국 물가가 또 들썩거리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등 최근에 발표된 미국의 물가지수가 다시 상승률 확대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1월 미국의 CPI는 연간 3.1% 상승했다. 뉴욕증시 예상치였던 2.9%를 상회했다. PPI 상승률도 전월비 0.3%로 뉴욕증시 컨센서스 전망치 0.1%를 크게 웃돌았다. 미국의 물가지표가 예상치를 웃돌면서 금리인하 시점도 더 멀어지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뉴욕증시에서는 3월에 FOMC가 금리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보아왔다. CPI와 PPI 등이 예상 밖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3월 금리인하 기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5월 FOMC에서의 금리인하 기대도 많이 줄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6월 금리인하마저 어려울 수 있다.
미국이 금리인하 쪽으로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플레가 진정 기미를 보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나온 CPI와 PPI 등 미국의 물가지수는 글로벌 금리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셈이다. 미국 연준이 금융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제지표는 물가다. 물가지표 중에서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가장 중요하게 참고한다. 적어도 연준 FOMC 입장에서는 CPI와 PPI는 보조지표일 뿐 PCE를 보고 금리 동결이나 인하 여부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미국의 PCE 지수에 목을 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뉴욕증시는 물론 달러환율, 국채금리, 국제유가, 금값 그리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도 PCE 물가지수에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 연준(Fed) 당국자들은 금리인하의 전제 조건으로 인플레이션 둔화의 추가 증거 확인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Fed가 오는 5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90% 넘게 반영하고 있다. 한 달 전 9%대에서 급등했다. 6월 FOMC에서 0.25%포인트 이상 인하할 가능성은 68% 넘게 반영 중이다. PCE가 예상보다 뜨거운 것으로 나타나면 지난달 예상치를 웃돌며 매도세를 촉발했던 1월 CPI 및 PPI 때처럼 뉴욕증시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PCE는 Personal Consumption Expenditure의 약자다. 우리말로는 개인소비지출이다. 개인소비지출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물가를 측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PCE지수는 상무부에서 조사한다. 반면 미국 CPI는 노동통계국에서 조사해 매월 10~14일께 발표한다. CPI는 도시 소비자가 지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조사한다. 대상 품목은 그전의 실제 소비자 지출 비중에 따라 2년에 한 번씩 변경한다. 반면 PCE는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에서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발표한다.
CPI와 PCE의 가장 큰 차이는 품목별 가중치다. CPI는 과거 도시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그 비중에 따라 품목별 가중치를 정한다. 이에 반해 PCE는 과거 패턴과 상관없이 새로 지출한 금액의 실제 사용 가중치를 반영한다. 예를 들면 쌀값이 올라 소비자들이 쌀 대신 가격이 떨어진 라면으로 모두 소비를 전환했다고 할 때 CPI는 기존 가중치대로 쌀값을 물가지수에 반영하지만, PCE는 쌀값을 가격에 아예 반영하지 않는다. 실제 지출한 라면값으로 물가를 구하는 것이다. 품목별 가격 급변에 따른 소비자의 구매량 변화를 PCE는 가중치에 바로 반영한다. 연준이 CPI보다 PCE를 더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CE는 가격 변동에 따른 소비자의 순간 대응까지 물가지수에 반영한다. 그만큼 실제 물가에 더 가까울 수 있다.
CPI와 PCE의 둘째 차이는 조사의 기준이다. CPI는 '소비자'가 지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반면 PCE는 '개인'을 위해 지출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가 '개인(자기 자신)'을 위해 지출하므로 거의 유사한 개념이지만 여기에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병원 진료 후 진료비가 100이어서 '환자(소비자)'는 10을 지불하고, 의료보험공단에서 90을 지불한 경우다. 소비자물가지수인 CPI는 소비자가 지출한 10의 증감을 대상으로 한다. 개인소비지출인 PCE는 개인을 위해 지출된 비용 100을 대상으로 물가를 측정한다. 만약 보험의 보장비율이 변경돼 10:90이 20:80이 됐다면 CPI는 2배로 오르지만 PCE는 변동이 없다. 진료비가 2배로 올라 200이 됐으나 의료보험공단에서 190을 감당하기로 했다면 CPI는 변동이 없는 반면 PCE는 2배로 오른다. PCE는 CPI와 달리 개인 소비자뿐 아니라 민간 비영리단체가 소비하는 물품 가격도 포함해 범위가 넓다. 또 다른 차이는 정부나 기업의 '간접비용' 포함 여부다. 간접비용은 고용주가 대신 지불하는 직원(소비자)의 의료보험 등으로 개인이 직접 지출하지는 않지만 삶을 영위하는 데 지출되는 비용인 만큼 PCE 항목에 들어간다.
PCE 지수는 소비자들의 지출 패턴을 매번 조사해야 하는 관계로 CPI보다 훨씬 늦게 발표된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조사의 번거로움과 시차 때문에 아예 PCE 물가를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하더라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연준 FOMC의 금리정책이 한국은행보다 더 정교한 셈이다. 올 들어 미국의 물가지수는 CPI보다 PCE의 오름세가 더 두드러진다. 미국 연준 FOMC의 금리인하가 계속 늦어지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