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는 과거 대한민국 대형 마트 산업의 상징이었다. 전국적인 점포망과 효율적인 물류시스템, 고용 창출 효과는 눈부셨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인수한 이후부터 유통업의 본질은 빠르게 왜곡됐다. 운영이 아니라 부동산 자산 매각으로 수익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투기 자본이 주도한 경영은 본질적으로 지역사회나 장기 투자에 무관심하다. 홈플러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동산 임대업처럼 바뀐 유통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지역경제에 공헌하기보다, 부담만 가중시키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대로 매각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할 것이다.
지금의 글로벌 유통 환경은 과거와 다르다. 온라인 시장의 팽창, 고물가 상황, 소비 패턴의 변화 속에서 자영업자는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대형 자본과의 경쟁은 불가능에 가깝다. 홈플러스가 또 다시, 외국 투기 자본의 손에 넘어간다면 유통 생태계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일본 세이큐나 프랑스 에코마르쉐는 유통기업을 공공성과 협동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경영방식은 지역사회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해 경쟁력을 갖춘 현실적 모델이다. 우리는 왜 이런 성공 사례를 꿈꾸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하는가. 해답은 우리 내부의 의지와 구조에 있다.
필자는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정부가 투자한 민간 중심 공익 SPC가 자율적이면서도 책임 있는 유통 주체가 될 수 있다. 사회적 기업, 중소 유통기업과 협업한다면 공동 물류, 공동 구매, 공동 마케팅으로 효율과 공공성을 모두 실현할 수 있다.
정부·지자체는 단기 예산 투입보다 구멍 난 솥단지에 불을 붙는 모순된 현상을 타파하려는 구조적 혁신에 주목해야 한다. 소비자 만족, 투명한 유통 구조, 지속이 가능한 공급망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세금을 쓰더라도 제대로 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유통 개혁의 출발이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실행이다. 누구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말하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는 이는 드물다. 실행 주체 부재, 책임 회피, 투기 자본에 편승한 관행은 여전히 한국 유통 시장의 고질적 병폐이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개혁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지을 때 온 나라가 반대했다. 정주영 회장만이 이를 도왔고 결국 그 길이 대한민국 경제의 동맥이 되었다. 농협도 김홍태의 제안을 원철희 회장이 수용하면서 유통 혁신을 이뤘다. 결정은 늘 소수의 용기 있는 자가 했다.
필자는 KOSA 전무이사와 체인사업 협동조합 연구소장 시절 중소유통물류센터와 나들가게를 제안했으나 무관심으로 물러났고, 사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 제안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필자의 부덕으로 여긴다. 아무리 좋은 떡도 상전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 맛을 모르는 법이다.
홈플러스 매각은 단순한 자산 이전이 아니라, 국민 자산 재편의 중요한 기회여야 한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유통 개혁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연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유통산업은 다시 공공성과 신뢰성을 회복하며,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필자의 제안은 이재명 정부의 정체성과 일치한다. 공익 유통체계는 정부 통제가 아니라, 시장과 사회가 공존하며 견제하는 구조이다. 홈플러스 매각 논란은 이러한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결정적 계기이다. 우리는 이것을 위기로 만들 것이냐, 기회로 삼을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무관심과 책임 회피가 지배적이다. 정책 아이디어는 넘쳐나지만, 실행은 없다. 실행 없는 구상은 아무리 정교해도 무용지물이다. 말과 행동의 틈새를 좁히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도 공염불로 끝날 뿐이다. 평양의 감사도 본인이 하기 싫으면 그만일 뿐이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