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장 9개 크기만 한 넓은 땅에 꽃을 가득 피워낸 양주 나리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천일홍 군락지로 꼽힌다. 천일홍 외에도 핑크뮬리·댑싸리·구절초·코스모스·해바라기 등 다채로운 가을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바람에 눈길도 분주해지고 발걸음도 자꾸만 빨라진다. 가족과 친구, 혹은 연인들끼리 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담소를 나누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꽃처럼 환하고 아름답다. 가을꽃을 주제로 한 축제는 시기만 조금씩 다를 뿐 전국 곳곳에서 진한 꽃향기를 내뿜는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 꽃 축제를 통해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방문객들에게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선물하고 있다.
꽃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 중의 하나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 우아하게 피어 있든, 너른 들판 잡초 속에 숨어 피어 있든, 어디서나 꽃이 지닌 밝고 화사한 색깔과 그윽한 향기는 이 세상을 보다 행복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준다. 생물학자들은 꽃을 피우는 식물을 속씨식물이라고 부른다. 지구상 모든 식물의 종의 수가 30만 종 정도인데 속씨식물 종의 수가 대략 26만여 종이라고 하니 우리 주변의 식물 중에 속씨식물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그만큼 다양한 꽃들이 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 수많은 꽃의 이름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꽃 이름을 외우는 데 열심이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꽃 이름을 외워가다가 어느 날 문득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외울 수 없는 꽃 이름을 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꽃 이름을 외우는 데 게으름을 피우긴 했어도 이름을 아는 꽃을 만나면 반가움이 더 크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2’란 시에서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라고 했다. 설령 꽃의 이름을 모르고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만을 탐한다 해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꽃을 보아온 나로서는 꽃구경 나온 사람들이 기왕이면 꽃의 이름만이라도 알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가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가을맞이 이벤트로는 꽃 축제장을 찾아 나들이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지 않나 싶다. 쪽빛 하늘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가고 누구나 시인이 되는 가을, 꽃 축제장을 찾아 느긋하게 꽃향기에 취해보는 여유와 낭만을 즐기다 보면 여름을 견디느라 헛헛해진 마음도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가을은 곱게 물든 오색 단풍과 열매가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피워낸 꽃들의 향기가 한결 짙은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꽃길만 걷길 소망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살다 보면 꽃길 아닌 가시밭길도 걸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꽃길만 걷는 비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시밭길을 걷더라도 꽃을 보며 걷는 것이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꽃은 어디에나 피어 있으니 꽃을 보며 걸으면 그 길이 곧 꽃길이 아니겠는가.
향기로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면 가까운 곳으로 꽃 나들이 떠나보시길 강추한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