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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 해주는 시대,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검증 근육’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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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 해주는 시대,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검증 근육’에 대하여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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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지난 2023년 5월, SNS를 통해 퍼진 '펜타곤 폭발'이라는 조작된 사진 한 장에 뉴욕 증시가 출렁이며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4분 만에 85포인트 하락했다가 반등했다.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 정보가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자극해 발생한 이 해프닝은 우리를 웃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AI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기술을 다루지 못하는 '기술 격차'가 아니라 쏟아지는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지 못하는 '검증 격차(Verification Divide)'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생성형 AI는 콘텐츠의 생산 한계비용(Marginal Cost)을 제로에 가깝게 떨어뜨렸다. 지식과 정보의 대량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에 담긴 정교한 오류와 편향을 걸러내는 사후 검증 비용과 책임 리스크 비용은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될 인적 자본은 '누가 더 화려한 프롬프트를 짜는가'가 아니다. AI가 내놓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단 하나의 치명적인 환각(Hallucination)을 잡아낼 수 있는 '비판적 검증 근육'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생태학자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1992년 그의 저서 《테크노폴리》를 통해 문화의 통제를 벗어난 기술에 대해 경고했다. 기술이 문화의 통제를 벗어날 때 인간이 도구를 맹신하고 심지어 종속된다는 것이다. 이를 교육 현장에 대입해 보면 다소 섬뜩한 결론에 도달한다. 만약 우리 자녀가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답변을 비판 없이 복사해 숙제를 하고 있다면, 아이는 효율 높은 학습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하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 인간이 삶의 주체로 살아남게 하는 경쟁력은 답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의심하고, 집요하게 확인하며, 그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느냐에 있다. 인공으로 만든 지능이 자동화되고 고도로 정교해질수록 인간이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은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 의심을 멈추지 않는 검증 근육인 셈이다. 그리고 이 검증 근육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해서 훈련되고 축적될 때 생겨날 수 있다.
필자는 가정에서 다음과 같은 '검증 근육 키우기 훈련' 세 가지를 먼저 실천해볼 것을 권한다. 거창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의 대화 방식을 조금만 바꾸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첫째, 정보의 뿌리를 캐는 '출처의 가계도' 확인 습관이다. 아이에게 항상 "이 정보는 어디에서 왔니?"라고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성형 AI는 정보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누락하거나 때로는 그럴싸한 가짜 근거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정보의 원천이 공신력 있는 기관의 데이터인지, 아니면 정체 모를 웹상의 파편인지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데이터 문해 근육을 만들 수 있다.

둘째, 오류가 가져올 파장을 가늠하는 '리스크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이 정보가 틀렸다면 누가, 어떤 피해를 보게 될까?'라는 의심을 반복해서 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답 여부를 가리는 문제를 넘어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윤리적 책임과 경제적 손실 가능성을 동시에 성찰하는 것이다. 정보의 오류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치명적인 자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아이는 기술의 소비자가 아닌 책임 있는 '정보의 주권자'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단정적 확신을 경계하는 '확률적 사고'의 체득이다. 이제는 "100% 확실할 수 있어?"라는 이분법 질문 대신 "지금 이 정보는 몇 퍼센트 정도 신뢰할 수 있니?"라고 물으며 오답의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 모든 지식을 가설로 취급하고 70%의 신뢰도와 30%의 의심을 동시에 품는 훈련은 변화무쌍한 AI 알고리즘 생태계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된다. 완벽한 정답이라는 환상을 버릴 때 비로소 아이는 끊임없이 교차 검증하고 수정해 나가는 지적 회복탄력성을 얻게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AI는 정답을 하사하는 만능 교사가 아니라 단지 ‘그럴싸한 초안을 뱉어내는 기계’일 뿐이다. 초안을 손에 넣는 속도 경쟁은 이미 끝났다. 앞으로 승부는 그 초안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오류를 잡아내는 지적 끈기와 체력에서 갈린다. 아이들의 검증 근육을 키워줄 때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