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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정글의 법칙과 에너지 안보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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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정글의 법칙과 에너지 안보의 상관관계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단장(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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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단장(국제정치학박사)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바둑을 잘 모른다. 그저 오목과 바둑의 차이 정도를 구별할 줄 아는 수준이다.

그러나 바둑이란 결국 '판세'를 읽는 게임이라는 사실만은 안다. 눈앞의 돌 몇 개를 따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유혹을 뿌리치고, 전체 판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먼저 읽어내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간다.

하수(下手)는 돌의 생사에 연연하지만, 고수(高手)는 돌과 돌 사이의 흐름을 본다. 국가 간의 관계와 전략적 거래의 본질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국내 정치의 미묘한 파동에 밝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에너지와 기술, 산업과 안보 전략이 융합되어 요동치는 국제정치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은 안다고 자부한다.
정식으로 학위 과정을 거치고 현장에서 단련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수소나 가스 산업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 울산을 찾아오는 외국인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해외 콘퍼런스에서 협력을 요청받을 때면 묘한 책임감을 느낀다.

요즘 내게 가장 자주 드는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세계의 판세는 도대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가?" 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방송 매체를 접하다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유독 변호사들이 자주 출연하여 모든 사회적 현상을 재단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정글 같은 국제정치의 판세를 국내법적 정서와 도덕적 잣대로 해석하려 할 때 발생한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법정이 아니라 야생이다.

굶주린 사자가 다른 짐승의 새끼를 잡아먹는 상황을 국내법의 살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 사자에게 '폭행죄'를 묻는 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국제 사회는 상위의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적 상태에 가깝다.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생을 법과 정의라는 낭만적 틀로만 해석하려 드니,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예측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에네르게이아(energeia)'에서 왔다. '활동하다' 혹은 '일(work)'에서 비롯된 말로, 에너지는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며 국가라는 유기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혈액이다.

역사와 정치의 영역에서 에너지는 '국가 문명을 지탱하는 권력'과 동의어다.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자 군사력의 전제 조건이며, 외교 테이블 위에서 상대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20세기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석유가 뒷받침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질서는 가스와 전력, 핵심 광물, 수소 같은 신에너지 체계가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최근 강대국들의 행보는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여실히 드러낸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이 되어 에너지를 외교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 가스라는 수십 년 된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급망을 전면 재편하며 생존을 건 도박을 벌이고 있으며, 중국은 배터리와 희토류 주도권으로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선점하려 혈안이다.

미국의 그린란드 관심, 베네수엘라와 이란 압박, 북극항로 쟁탈전 등 겉보기에 제각각인 사건들은 결국 '에너지 주도권' 확보라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산업 강국이지만, 에너지의 95%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근간이 되는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릴 만큼 취약하다.

판세를 정확히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남이 짜 놓은 판 위에서 사석이 될 수밖에 없다. 도덕적 정당성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직 차가운 전략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절실한 것이 바로 '판세 읽기 능력'이다. 지금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에너지와 산업의 구조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 그 속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 점유해야 할 '수(手)'는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통찰이다.

판세를 오독(誤讀)한 상태에서 나오는 정책은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 뒷북이 되거나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바둑의 고수들은 “승부는 마지막 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 판을 읽고 첫 돌을 놓는 순간 이미 절반이 결정된다”고 한다. 국가 전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사건에 일희일비하며 반응하는 속도가 아니다.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꿰뚫는 정확하고도 냉철한 판세 읽기다. 판세를 읽는 국가는 기회를 잡고, 보지 못하는 나라는 도태된다. 정글에는 중간이 없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에너지를 공부하고 국제정치를 고민해야 하는 가장 비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