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민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장
이미지 확대보기샌드위치패널로 두 차례 증축된 건물 구조는 불길의 확산을 가속했고, 검은 연기가 공장 일대를 뒤덮었다.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됐고, 장비 100여 대와 인력 250여 명이 투입됐지만 공장 내 보관된 금속 나트륨 101㎏의 폭발 위험 때문에 물을 이용한 진화조차 쉽지 않았다.
10시간 30분 만에 불은 꺼졌다. 그러나 14명은 끝내 공장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60명이 부상했다.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구조를 요청하던 근로자들의 모습이 뉴스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우리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왜 불이 났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이번에 물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사람을 살리지 못했는가." 발화 원인은 관계기관의 합동 조사로 규명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사망자 14명 가운데 9명이 발견된 곳은 공장 내부에 임의로 조성된 복층 형태의 헬스장이었다.
도면에 없는 무허가 증축 공간으로서 경찰은 불법 구조물로 추정하고 있다. 환기와 배연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밀폐 구조, 제한된 대피 동선, 유독가스가 빠져나갈 수 없는 체류 공간. 이 조건들이 하나씩 따로 존재했다면 관리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동시에 작동한 순간,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제조업체 화재에서 인명 피해를 결정짓는 것은 화염 자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망은 연기와 유독가스 그리고 대피 실패에서 비롯된다. 불이 발생한 원인은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한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고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재해는 구조의 결과다.
형식적 점검과 서류 중심의 관리로는 도면에 없는 공간, 임의로 만들어진 휴게시설, 배연이 불가능한 밀폐된 체류 공간의 위험을 잡아낼 수 없다. 이런 곳이야말로 현행 안전관리 체계에서 가장 쉽게 놓치는 사각지대다. '관리'는 존재했지만 '통제'는 부재했다. 그 간극이 14명의 목숨값이었다.
대부분의 중대재해에는 전조가 있다. 환기 불량, 유증기 축적, 집진 설비 오염, 비정상적인 공간 사용. 이번 사고에서도 기름때와 슬러지가 배관과 설비 전반에 광범위하게 쌓여 있었다는 정황이 보도되고 있다.
소방 당국 역시 이를 불길 급속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 신호가 현장에서 보고되지 않거나, 보고되더라도 시정 조치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에 있다. 위험은 발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발견되고도 사라지지 않아서 재해가 된다.
이는 특정 개인의 태만이 아니라 위험 신호를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못하는 조직 구조 자체의 문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관리의 기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첫째, 도면에 없는 공간과 임시 구조물을 전수 조사하고 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공간 기준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소방설비 점검을 넘어 근로자가 실제 비상 상황에서 일정 시간 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피난 중심 안전관리'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초기 화재 대응 체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화재예방덮개나 소화기처럼 초기 화재를 늦출 수 있는 기본 장비가 작업 현장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면, 불길의 급속 확산을 지연하고 대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초기 대응 장비의 배치와 실사용 훈련은 비용이 가장 낮으면서도 효과가 큰 안전 투자다.
넷째, 유증기와 분진, 집진 설비, 배기 덕트 등 화재 발생과 확산의 핵심 요인을 중심으로 관리 체계를 재설계하는 '공정 기반 위험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현장에서 제기된 위험이 빠짐없이 기록하고, 조치하고, 이행 여부까지 추적·확인하는 '위험 제기 반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안전은 서류가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수많은 사고를 겪었고, 매번 같은 다짐을 반복해왔다. "재발 방지하겠다." 그러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고는 이름과 장소만 바뀔 뿐 되풀이된다.
이번 사고는 특정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산업 전반에 깊이 잠복한 구조적 취약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다. 사고의 원인만 찾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사고를 반복시키는 구조 자체를 드러내야 한다.
대전의 불은 꺼졌다. 그러나 이 참사를 만들어낸 구조는 전국의 제조 현장 곳곳에서 여전히 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점검표가 아니라 위험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결단이다. 그것만이 스러져 간 열네 분의 삶을 헛되이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