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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새로 생긴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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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새로 생긴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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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취미 / 백승훈 시인
입추가 지나며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는 해도 여전히 덥다. 하늘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준다는 바람에 떠온 말에 기대어 근근이 견디는 중이다. 염천의 하늘 아래서도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환하게 웃을 순 없다 해도 슬기롭게 이 폭염의 계절을 무탈하게 건너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백두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여행지의 인상적인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간직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펜 드로잉이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으면서 뜨거운 여름을 견디게 하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예전에 잠깐 취미로 민화를 그려본 적은 있으나 제대로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내게 펜 드로잉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행히 요즘은 나처럼 그림에 무지한 사람도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독학으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림 공부를 위한 책을 몇 권 사고, 스케치북과 펜과 연필, 붓 등을 준비해 그림을 시작했다. 처음엔 선 하나 똑바로 긋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고 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더위도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오직 그림에만 몰입하게 된다.

‘몰입의 즐거움’을 쓴 철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이 말이 맞다면 그림 그리기야말로 내게 최고의 행복인 셈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밖에 나가면 새로 피어난 꽃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젠 집 밖으로 나가면 모든 풍경이 새롭게 말을 걸어온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좁은 골목길이나 천변의 익숙한 풍경들이 낯선 표정으로 자신을 그려달라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이 풍경을 그린다면 구도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어디를 중심으로 삼고 어디를 덜어내야 할까 생각하며 걷다 보면 일상이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골목에 세워둔 차의 생김새도 찬찬히 살펴보게 되고, 오래된 골목의 상점 간판들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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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림을 그리려니 생각이 많아진다. 소재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구도를 잡고, 스케치하고, 선을 치고 색을 칠하기까지 매 순간 최고의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많은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그림을 잘 그리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가 하는 많은 생각이란 결국은 그림 이외의 모든 생각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무념무상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일상의 걱정이나 근심, 우울과 슬픈 감정의 부스러기 같은 것은 까맣게 잊게 된다.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던가.

인터넷으로 그림을 독학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세상엔 참으로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명성을 얻은 화가가 아니라 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줄은 예전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디에나 무명의 고수들이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마추어라고 말하기에도 쑥스러운 나처럼 소일 삼아 취미로 그림을 시작한 생초보에게는 그들의 재능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네 팔은 네가 흔들고 내 팔은 내가 흔드는 것’. 나는 누구의 그림도 아닌 나만의 그림을 그리면 되니까 말이다.

그림 삼매경에 빠져 더위를 잊기만 해도 내겐 더없는 행복이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가 행복하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림으로 인해 일상의 무료함도 달래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재발견해 가는 재미도 쏠쏠하니 새로 생긴 취미치곤 최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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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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