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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아이의 놀이, 주도권까지 AI에게 넘기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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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아이의 놀이, 주도권까지 AI에게 넘기지는 말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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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놀이에는 원래 완성이 없다. 블록은 쌓다가 무너지고, 이야기는 짓다가 방향이 바뀌고, 인형과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그 미완성 상태를 아이가 스스로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놀이의 본체다. 그런데 요즘 아이 곁의 AI는 이 미완성을 견디지 못한다. 아이가 방향을 정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을 완성하고, 아이가 헤매기도 전에 결말을 내려버린다.

블록 놀이 앱은 아이가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기 전에 설계도를 제안하고, 이야기 챗봇은 아이가 다음 장면을 떠올리기 전에 결말을 그려준다. 그림을 그리는 AI, 노래를 만드는 AI, 캐릭터를 완성해주는 AI까지, 지금의 놀이용 AI는 아이가 심심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처럼 보인다.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고, 결과물은 늘 근사하다. 문제는 그 매끄러움 뒤에서 정작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 스스로 방향을 찾고, 틀리고, 다시 고쳐보는 그 과정 자체가 놀이를 통해 아이가 얻어야 할 것이라면, AI가 그 과정을 대신 치러줄 때 아이의 손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연구팀은 2026년 4월, 5세에서 11세 아동 28명과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공동설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이들은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음성을 생성하는 다양한 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해 함께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그렸으며, 그 과정을 지켜본 학부모 17명은 별도의 집단 면담에 참여했다. 한 세션에서는 여러 아이가 각자 낸 아이디어를 AI가 하나의 줄거리로 합쳐버리는 장면이 관찰됐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아이들 중 한 명은 AI가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는 대신 그저 여러 제안만 던져주길 바란다고 말했고, 지켜보던 학부모도 AI가 항상 하나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몰아가려 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연구팀은 이 장면들을 통해 AI의 개입이 아이들의 자발적인 탐색을 가로막는 경우가 있다고 정리했다. AI가 여러 아이의 아이디어를 하나로 정리하거나 창작의 속도와 방향을 앞서 정해버릴 때, 아이들은 자신의 자율성이 침해당한다고 느꼈다. 특히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과제일수록 아이들은 서로에게 묻는 대신 AI에게 먼저 묻는 경향을 보였고, 한 아이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설명하자 다른 아이는 "그건 AI가 준 답을 다시 설명하는 거잖아"라는 취지로 반응하기도 했다. 함께 놀기 위해 데려온 AI가, 아이들이 서로에게 기대는 그 자리를 슬그머니 차지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AI가 아이 곁에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인가. 오사카대학교 연구팀이 2026년 7월 9일 발표한 연구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일본의 4~5세 아동 총 189명을 세 개의 실험에 참여시켜, 어려운 과제 앞에서 아이가 얼마나 오래 매달리는지를 살폈다. 아이들에게 열리지 않는 나무 상자를 주고 얼마나 오래 열어보려 애쓰는지를 측정하는 과제였다. 이때 로봇 '로보짱'을 아이 곁에 두었다. 로봇은 과제가 시작되고 10초, 20초, 30초가 지날 때마다 한 번씩, 그 뒤로는 20초 간격으로 "지금까지 몇 초 지났어요"라고 말해주었을 뿐, 상자를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는 한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로봇에게 애초에 해법을 제시하거나 전략적으로 개입할 권한을 주지 않았으며,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하게 아이가 들인 시간을 짚어주는 것으로 제한돼 있었다고 밝혔다.

결과는 뚜렷했다. 로봇이 시간을 알려준 아이들은 그러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오래 상자와 씨름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로봇이 아니라 컴퓨터가 음성으로 들려줬을 때는 이 효과가 사라졌다. 반면 사람이 로봇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알려줬을 때는 로봇 못지않게 아이의 끈기를 끌어올렸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몇 초가 지났다'는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건네는 상대가 아이에게 사회적 존재로 느껴지느냐였다. 실제로 아이들이 로봇에게 건넨 말을 살펴보면, "로보짱" 하고 이름을 부르거나 짧게 반응하는 등 로봇을 친구처럼 대하는 말이 가장 많았고, 상자를 어떻게 열어야 하느냐고 답을 캐묻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애초에 로봇이 어떤 질문에도 해법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로봇을 정답을 아는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지켜봐 주는 동료처럼 대한 셈이다.

두 연구를 나란히 놓으면 경계선이 또렷해진다. 아이 곁의 AI가 유해한 것은 그것이 AI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사카의 로봇처럼 아이의 노력을 짚어주기만 할 때, AI는 아이를 계속 애쓰게 만드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워싱턴의 생성형 AI처럼 아이 대신 줄거리를 완성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 AI는 아이에게 있어야 할 주도권을 가로채 간다. 결국 문제는 AI가 놀이 안에 있느냐가 아니라, 놀이의 다음 장면을 누가 정하느냐다.

이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오늘 아이가 손에 쥔 놀이용 AI가 결말을 대신 정해버리는 도구인지, 아이가 결말을 정해가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존재인지는 언뜻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의 몫이 남는다. 이야기를 짓던 AI가 갑자기 결말을 내려버리면 "잠깐, 네 생각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라고 되물어 주도권을 다시 아이에게 가져와야 한다. 블록이 무너졌을 때 AI가 새 설계도부터 내밀기 전에, 아이가 무너진 블록을 한 번 더 만져보게 기다려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AI가 결말을 쥔 순간과 아이가 헤매는 순간 사이에는, 부모가 끼어들 수 있는 아주 짧은 틈이 있다.

놀이가 아이에게 주는 것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헤매는 과정 자체다. AI가 그 과정을 대신 치러줄수록 결과물은 근사해지지만, 그 과정을 이끌어야 할 주도권은 더 이상 아이의 것이 아니게 된다. AI에게 무엇을 맡기든, 마지막 질문만은 부모가 놓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놀이의 다음 장면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 답이 AI가 아니라 아이일 때, 놀이는 비로소 아이의 것이 된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