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달러 급락·아시아 통화 급등…'역(逆) 외환위기' 현실화?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달러 급락·아시아 통화 급등…'역(逆) 외환위기' 현실화?

대만달러 이틀새 8% 폭등 '사상 최고'…홍콩도 환율 방어 나서
트럼프發 무역 재편 속 '달러 불신'…美 국채·증시 영향 촉각
2025년 4월 25일 일본 도쿄의 한 건물 안에서 여성이 주식 시세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25년 4월 25일 일본 도쿄의 한 건물 안에서 여성이 주식 시세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달러 가치가 급락하고 대만 달러 같은 아시아 주요 통화 가치가 이례적으로 급등하자 세계 금융시장에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아시아 통화가 약세가 아닌 강세를 보이는 '역(逆)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배런스·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아시아 통화 강세 압력은 홍콩에서도 나타났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6일 홍콩달러의 미국 달러 고정환율제 상단을 지키기 위해 미화 78억 달러(약 10조8303억원) 규모로 시장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DXY)는 올해 들어 8%나 하락했으며, 지난달에는 한 달 기준으로 4.3% 급락해 2년여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6일 아시아 시장에서는 조금 반등해 100.04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관세 부과가 달러 강세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존 통념과 어긋나는 현상이다. 보통 관세는 수입품 가격을 높여 무역 적자를 줄이고 달러 유출을 막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 아시아 통화, 동시다발 급등


가장 안정적인 통화로 꼽히던 아시아 통화들이 이례적인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대만달러(TWDUSD)는 최근 이틀 동안 8% 폭등하며 한때 3년 만의 최고치인 1달러에 29.59대만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30.02 수준에서 거래된다. 이러한 급등은 미국-대만 무역 협상 종료 시점과 맞물리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원화(KRWUSD) 역시 금요일 2.5% 급등한 데 이어 월요일 1.5% 추가 상승했으며, 싱가포르달러(SGDUSD)도 강세를 나타냈다. 중국 위안화도 연휴 뒤 거래가 다시 시작되면서 1달러에 7.23위안까지 올라 지난 3월 20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는 간밤 0.9% 급등한 뒤 1달러에 143.99엔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호주달러도 전날 기록한 5개월 만의 최고치(0.6449달러) 부근에서 거래되면서 다른 통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처음에는 '부처님 오신 날' 연휴 때문에 거래량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으로 꼽혔으나 전문가들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루이 가브 가브칼 리서치 대표는 고객 메모에서 "중요한 정책 변화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옌스 노르드비그 엑산테 데이터 창립자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술적 변화가 아닌 전략적 변화"라면서 위험 관리를 당부했다. 그는 달러 옵션 시장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리스크 리버설(risk reversals)' 지표가 세계 금융위기 뒤 볼 수 없던 수준으로 급변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크리스 웨스턴 페퍼스톤 리서치 책임자는 "생명보험사들의 위험 회피 활동이 영향을 미쳤지만,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통화 가치를 관리해온 이들 국가가 이제 무역 협상의 하나로 통화 절상을 용인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다가서려는 것이 아니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 '단순 해프닝 아니다'…구조적 변화 분석


이러한 아시아 통화 강세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세계 무역 및 동맹 재편 움직임 속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비중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만달러 급등 시점이 미-대만 무역 협상 종료와 겹치면서 이러한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이 말했던 '아시아판 브레턴우즈 협정', 곧 아시아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통화를 평가절상할 가능성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가브 대표는 많은 아시아 통화가 "심각하게 저평가"된 상태여서 이론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관광 부진을 겪는 대만 등이 10% 평가절상을 견디기는 실제로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과 한국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점이 통화 절상 압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중앙은행은 이러한 거래 가능성을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웨스턴 책임자는 "시장은 이를 전적으로 믿지 않으며, 이번 대만달러 급등에 당국의 암묵적 승인이 있었고, 미국 역시 이를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캐럴 콩 호주 코먼웰스은행(CBA) 전략가는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는데도 달러는 여전히 약세"라면서 "시장이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이 달러 투자를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세계 투자자들은 이번 일을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1990년대 외환위기와 비교하고 있다. 다만 가브 대표는 당시와 반대로 아시아 통화 가치가 폭락이 아닌 급등하는 "역(逆) 아시아 위기"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급격한 환율 변동은 달러 자산을 많이 가진 대만 보험사 등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이들의 달러 매도세는 미국 국채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역 외환위기' 가능성과 시장 파장


단기적으로 아시아에서 시작된 환율 불안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일으켜 세계 증시 상승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투자자들은 이번 주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Fed는 금리를 묶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앞으로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중앙은행(BoE) 역시 이번 주 회의에서 트럼프 관세 정책의 영향 등을 생각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나온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중앙은행은 금리를 묶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가브 대표는 아시아 국가들이 저평가된 통화 문제 해결과 생산 중심 경제구조 개편 압력에 놓일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처럼 아시아의 막대한 저축이 미국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상승 동력이 되는 흐름이 약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6일 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가 달러 대비 0.25% 하락한 1.1287달러, 파운드화는 0.24% 내린 1.3265달러, 뉴질랜드달러는 0.3% 하락한 0.594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가브 대표는 이러한 변화 국면에서 아시아 증시가 조정을 받을 때 싸게 살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내수 소비, 금융, 부동산 관련주와 그 지역 실질금리 하락으로 혜택을 볼 기업에 주목하라고 권고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