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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조선업, 美 '관세 폭탄' 압박 속 '안보 동맹' 핵심 카드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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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조선업, 美 '관세 폭탄' 압박 속 '안보 동맹' 핵심 카드로 부상

中 견제·함정 MRO 수요 맞물려...미국, HD현대·한화오션에 '러브콜'
수주 점유율은 中에 크게 밀려… 인력난·기술격차 등 '산 넘어 산'
2014년 12월 경남 거제 옥포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컨테이너선이 건조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014년 12월 경남 거제 옥포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컨테이너선이 건조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의 고율 관세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이 한·미 무역 협상의 중요한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일본 저팬타임스가 2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매체는 철강·자동차 관세로 이미 타격을 입은 한국이 오는 7월 8일로 유예된 추가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대표 조선사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미국 정부 역시 한국과의 조선 협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조선 협력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면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 조선업도 한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어 이 부문이 무역 협상에서 매우 중요한 협상 카드"라고 밝혔었다.

이러한 관심은 실제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서 열린 APEC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한국 정부 고위 관료들을 만나기 전,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의 정기선 부회장과 먼저 만났다. 그리어 대표는 또한 미국 해군 함정의 건식 도크 유지·보수 사업을 수행하도록 승인받은 첫 비미국계 기업인 한화오션 대표이사도 만났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자국 내 군사·전략 필요성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과 대만 해협의 잠재적 분쟁 우려가 커지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 작전을 지원할 믿을 만한 해외 조선소 확보에 나섰다. 지난해 9월 한화오션에 미 해군 유지·보수·정비(MRO)를 맡긴 것은 미국이 한국을 핵심 국방 거점으로 본다는 중요한 신호로 풀이된다. 한국이 미국의 상업·군함 건조, MRO, 기술 이전 등에서 중요한 협력 상대로 떠오르면서 업계는 세계 선박 MRO 시장 규모를 해마다 600억 달러(약 82조6200억 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 세계 2위 K-조선, 흔들림 없는 경쟁력


한국 조선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공업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성장한 한국 조선업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속에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렸다. 이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 운반선,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하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조선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2024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한국 수출에서 조선업은 약 4%를 차지했으며,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약 20% 증가해 256억 달러(약 35조2512억 원)에 이르렀다. 직접 고용 인원은 약 12만 명으로 전체 노동력의 약 1%이며, 울산 등 산업 거점 도시의 간접 고용 효과는 이를 훨씬 웃돈다. 올해 들어서도 신규 수주액은 13조 원(약 94억 달러)을 넘었으며, 지난 3월 한화오션은 대만 에버그린 마린과 16억 달러(약 2조2032억 원) 규모의 LNG 운반선 건조 계약을 맺는 성과를 냈다.

◇ 중국의 맹추격과 고질적 인력난 '이중고'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세계 조선 수주 점유율은 70%를 넘어섰고, 한국은 17%에 그쳐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중국은 대량생산과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은 LNG·LPG 운반선 같은 첨단·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우위를 지키는 양분화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단일 조선소 기준으로는 한국이 세계 1~4위를 차지하며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신형 교수는 "친환경 선박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차세대 친환경 선박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K-조선 초격차 비전 2040' 같은 산업 지원책을 통해 친환경·스마트 조선소 전환과 기술 혁신을 지원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선박 개발이 시급한 과제다.

고질적인 인력난 또한 문제다.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20~30대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숙련공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교수는 "2025년 수주량이 줄어든 것은 조선업 호황이 시장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올해 1~4월 세계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HD현대중공업 남철 부사장은 조선업계가 '슈퍼사이클'을 누려왔지만 "안타깝게도 과거에 비해 정점은 낮고 호황은 더 짧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