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달러 투입될 AI 군비경쟁…'메타의 실패'는 반면교사
테슬라 수직통합, 엔비디아 기술 초격차, 구글 개방형 협력…승부수 갈렸다
테슬라 수직통합, 엔비디아 기술 초격차, 구글 개방형 협력…승부수 갈렸다

AI 경쟁의 핵심 동력이 연산 능력이라는 점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 미국 투자은행 웨드부시는 앞으로 3년간 AI 기반 시설 관련 자본 지출(CAPEX)이 2조 달러(약 2800조 원)를 웃돌 것으로 내다보며,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는 ‘총성 없는 전쟁’을 예고했다.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Seven)’을 필두로 브로드컴, 오라클, 팔란티어 같은 새로운 반도체·데이터 중심 기업들이 떠오르는 가운데, 일부 기업은 전략적 판단 착오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데이터·칩·생태계’…서로 다른 길 가는 3대 강자
대표적인 사례는 메타다. 다른 경쟁사들이 생성형 AI에 자원을 집중하던 시기, 메타는 ‘메타버스’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 결정은 생성형 AI 개발의 ‘황금 시간’을 놓치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졌다. 메타가 뒤늦게 전담팀을 꾸린 2023년 2월, 경쟁자 오픈AI는 이미 1년 이상 앞서나가고 있었다. 한순간의 선택이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AI 경쟁 구도 속에서 테슬라, 엔비디아, 구글의 전략적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메타의 전략적 방황과 달리, 테슬라는 ‘현실 세계 데이터’라는 명확한 목표에 AI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테슬라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 세계 도로를 누비는 수백만 대의 전기차에서 얻는 ‘실주행 데이터’다. 이 차량들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날마다 방대한 양의 실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첨병 노릇을 한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는 다른 기업들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독보적인 자산으로, 테슬라 자율주행 시스템의 두뇌를 단련하는 핵심적인 양분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한발 더 나아가 “테슬라 미래 가치의 80%는 로봇 옵티머스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현실 세계 학습 데이터를 로봇 지능으로 확장하는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비전을 뒷받침하려고 테슬라는 이전의 ‘도조 초고성능 컴퓨터 사업’을 중단하고, 모든 자원을 차세대 칩 ‘AI5’와 ‘AI6’ 개발에 재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머스크 CEO는 설계 검토를 마친 AI5를 ‘엄청난’ 제품이라 칭하며, 기존 칩보다 40배 높은 성능을 갖출 것이라고 자신했다. 칩 설계부터 차량·로봇·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수직 통합 구조는 테슬라만의 강력한 차별점이다.
‘AI 칩의 제왕’ 엔비디아는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왕좌를 지키는 전략을 택했다. 엔비디아는 최근 수백만 개 토큰 단위의 초장문 추론에 쓰기 위한 칩 ‘루빈 CPX’를 공개하며 다시 한번 시장을 놀라게 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내놓은 혁신은 AI 추론 과정을 ‘문맥 해석’과 ‘생성 단계’로 나누어 연산과 메모리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루빈 CPX는 128GB GDDR7 메모리를 갖추고 NVFP4 정밀도 기준으로 30페타플롭스(PetaFLOPs)라는 막대한 연산 성능을 제공한다. 엔비디아는 고객이 1억 달러(약 1400억 원) 투자 때 최대 50억 달러(약 7조 원)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추산한다. 여기에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체계(CUDA, Triton 등)를 통해 강력한 하드웨어 생태계를 구축해 경쟁사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거대 제국 구글은 자사의 강점인 데이터 생태계와 유연한 동반 관계를 결합한 양동작전을 구사한다. 자체 개발 칩인 7세대 TPU(Tensor Processing Unit) v7 개발을 끝내 기술적 성숙도를 높이는 동시에, 경쟁사인 엔비디아와 손잡고 블랙웰 기반으로 ‘버텍스 AI’와 ‘구글 분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합하는 실용적인 노선을 택했다.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쓰는 검색, 유튜브, 지도, 클라우드 서비스는 구글의 힘의 원천이다. 여기서 쌓이는 방대한 실사용자 데이터는 AI 모델을 훈련하고 최적화하는 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수직통합 vs 수평지배…AI 철학도 갈렸다
세 거인은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AI 시대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테슬라는 현실 데이터에 기반한 ‘자립형 실세계 AI’ 구축에, 엔비디아는 범용 AI 연산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GPU 군림을 이어가는 데, 구글은 클라우드–AI 모델–데이터의 융합으로 AI 연구와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의 서로 다른 전략이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하며 앞으로 AI 시장의 판도를 결정할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