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AI 투자 1600억 달러 vs 유럽 200억 달러...미국 자본이 유럽 AI 투자 71% 장악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4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간 AI 투자 규모 격차가 8배에 이르면서 유럽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 AI 투자금 8배 많아...유럽 스타트업도 미국 자본에 의존
데이터 제공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미국 AI와 머신러닝 스타트업은 올해 첫 9개월 동안 1600억 달러(약 226조 원) 이상을 모았다. 반면 유럽 스타트업이 모은 돈은 약 200억 달러(약 28조 원)에 머물렀다.
미국 투자자들이 유럽 AI 스타트업에 쏟아붓는 돈도 크게 늘었다. 피치북 자료를 보면, 올해 9월 30일 기준 미국 투자자들은 유럽 내 549건 AI와 머신러닝 벤처캐피털(VC) 투자에 약 142억 달러(약 20조 원)를 썼다. 이는 지난해 한 해 동안 투자한 117억 달러(약 16조 원)를 이미 넘어섰다. 투자 규모로 보면 전체의 71.1%를 차지해 작년 57.5%보다 크게 증가했다.
AI 기반 워크플로 스타트업 스트럭처드AI(Structured AI)를 공동 창업한 브랜든 아브루 스미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50만 달러(약 7억 원) 시드 이전 자금을 확보했다. 그는 "런던에서 몇 달 동안 못 얻었던 것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주일 만에 얻었다"며 "샌프란시스코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WSJ에 말했다. 스미스와 공동 창업자들은 최근 실리콘밸리 유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합류했다.
몇 주 vs 몇 달...빠른 결정과 높은 기업가치 평가가 매력
미국 투자자들의 결정 속도도 유럽을 앞선다. 미국 거래는 몇 주 만에 끝나지만, 유럽에서는 수개월이 걸린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런던 소재 스타트업 컨설턴트 다니엘 존슨은 "유럽 펀드는 더 보수적이고 오랜 실사를 하며 투자 규모도 더 작다"며 "타임라인이 더 느리다"고 WSJ에 전했다. 그는 지역 자금 조달을 문의하는 창업자들에게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AI 교육과 모델 공유 플랫폼 에프락아이오(FLock.io) 창업자 순 지아하오는 "런던에서는 우리 기업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AI 제품 시장 잠재력을 더 공격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에프락아이오는 200만 달러(약 28억 원) 규모 엔젤 투자와 600만 달러(약 84억 원) 규모 시드 투자를 받았고, 이어 미국 투자자들이 주도한 300만 달러(약 42억 원) 규모 전략 투자를 유치했다.
AI 사이버보안 회사 잘리(Zally) 최고경영자(CEO) 패트릭 스미스는 20명 이상 영국 투자자들을 찾아간 뒤 지난 8월 맨체스터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그는 "미국 투자자들은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안다"며 "초기 연구개발(R&D)과 특허 출원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을 유럽에서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U 규제 강화도 미국행 부추겨...인재는 유럽이 우위
유럽에서 강화되는 규제도 스타트업들 미국행을 부추긴다. 유럽연합(EU) AI법은 엄격한 준수 비용을 물릴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 칩 장비 업체 ASML, AI 개발사 미스트랄 등 수십 개 유럽 기업은 올해 초 EU 지도자들에게 AI법 일시 중단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냈다.
다만 인재 측면에서는 유럽이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은 보통 인재 때문이 아니다. 벤처캐피털 회사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 자료를 보면, 유럽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인력 가운데 AI 전문가 비중은 미국보다 30% 높고 중국보다 거의 3배 높다. 엔지니어링 팀은 급여가 낮고 대학에서 컴퓨터 전문가를 꾸준히 배출하는 유럽에 남는 경우가 많다.
AI 테스트 스타트업 트리스믹(Trismic)은 최근 영국에서 300만 달러 이상 시드 라운드 자금을 모았지만, 7개월이 걸렸다. 영국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핀란드인 1명으로 꾸린 트리스믹 팀은 다음 투자 라운드를 미국에서 유치할 계획이다. 공동 창업자 레베카 미콜라는 "쉬운 일이 아니다"며 "모든 유럽 스타트업 창업자는 미국을 AI 왕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